To. 부모님께

     어머니, 아버지. 잘 지내고 있으세요? 저 라민이에요! 이걸 보고있으시다는건, 제가 죽었다는 이야기겠죠. 응, 그렇게 되었을거에요. 아직은 죽지 않았고, 무지무지 건강하지만요. 저는 잘 지내요!
     다들 정말 좋은 분들이세요. 어머니가 이야기하셨던것보다 부대는 훨씬 자유롭고, 다들 정말 즐겁게 지내고 있어요. 물론 마물도 물리치고 있고요! 저, 여기에 와서 벌써 열마리도 넘는 마물을 잡았어요. 엄청 건강하게 다치지 않고요!
     ...실은 거짓말이에요. 어제는 마물을 잡다가, 실수해서 큰일날뻔 했어요. 동료분이 와서 구해주시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상상하고싶지 않아요. 너무너무 무서웠어요. 정말 많이요.
     어머니가 오래전에 활을 가르쳐주실때, 생명의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하셨던걸 기억해요. 실은 아직도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어요. 그치만 제 목숨을 건 일이라는거, 이제야 잘 알것같아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또 혼내시겠죠? 이전에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니까요.
     다들 전쟁은 현실이라고 말해요. 이야기가 아니라고. 해피엔딩은 없대요. 누군가 죽을거라고, 다들 가볍게 이야기해요. 저는 아직도 어린가봐요. 얼른 자라고싶은데. 더 강해지고싶은데도 아직 멀었나봐요.
     이 유서가 부모님께 전달될 때에는, 제가 정말 강해졌으면 해요. 전달해주는 분께, 제가 어떤 대원이었는지 물어봐주시겠어요? 엄청 강하고, 금세 성장하고. 훌륭한 공을 세운 멋진 대원이었다는 이야길 들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말했지만 저는 이곳에 온걸 절대 후회하지 않아요! 언젠가 이 유서가 전달되게 되더라도, 저는 절대절대 후회하지 않을거니까요. 정말로 기뻐요. 제가 조금이라도 영웅이 될 수 있는 길을 걸을수 있는게요.
     사랑해요, 두분 다. 정말 많이.

(최근에 새로 덧붙인듯한 선명한 글이 한줄 쓰여있다.)
     항상 두분이 정말 많이 보고싶었어요. 돌아가지 못해서 죄송해요.

From. 라민






To. 모두에게

     안녕하세요, 저 라민이에요! 
     부모님께 유서를 썼는데, 쓰고 나니 여러분에게도 유서를 쓰고싶어서. 여러장을 써도 괜찮다고 하셨으니까... 그래서 적고있어요.
     다들 식사는 잘 하고 있으세요? 많이 강해지셨나요? 마물들을 엄청 많이 물리치고, 매일 밤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아직 웃고 있으신가요?
     유서에서 이런 질문을 드리는거, 무지무지 못된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치만, 그래도 물어보고싶어요. 다들, 아직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나요? 별것아닌 농담에도 웃고, 떠들고... 하면서요.
     저는 여러분들이 그랬으면 좋겠어요. 현실은 동화가 아니라고, 전쟁에서는 누군가 죽을거라고 다들 이야기하시지만. 그래도 저는 모두가 해피엔딩이고. 다같이 진심으로 웃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이 유서를 보신다면요. 저는 아마 무지무지 만족하고 행복할테니까, 저에대해선 절대로 걱정하지 말하주세요! 히히, 저는 괜찮아요. 제 길은, 분명 다른 분들이 제 몫까지 열심히 걸어주실테니까요.
     모두, 사랑해요. 영웅이 되어주세요!

(최근에 새로 덧붙인 듯, 꽤나 단정하게 쓰려 노력한 선명한 글이 덧붙여져 있다.)
     내 빛들, 소중한 동료들. 더는 도움이 되지 못해서 미안해요. 계속 함께하고 싶었는데. 바다에 가기로 한거, 전쟁이 끝나고 만나기로 한거. 살겠다고, 오래 살아남아 영웅이 되겠다고 한거. 약속들이 정말 많았는데, 지키지 못하게 되었네요. 그냥 이것만 알아주세요. 정말 많이 사랑하고... 여러분은 하나하나가 다 제겐 정말 소중해요. 모두의 앞날에 항상 빛이 함께하기를. 나는 분명 괜찮을거에요, 걱정마세요. 그럼 꼭 승리해주세요.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끝내고 영웅으로... 희망으로 남아주세요.

From. 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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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앞에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아마도 제 소중한 동료일 사람. 누구지?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아주 많이 소중한 사람.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대화를 하고. 밥을 먹고 웃었을테지. 함께 마물을 잡으러 갔을테고, 혹은 던전을 다녔을지도 모르고. 거대 마물이나 마족을 함께 상대했을지도 모른다.

     저는 그 사람과 대화를 한다. 무슨 대화? 그것조차 모른다. 실없는 농담. 오고가는 안부. 임무에 대한것. 진지한 이야기. 속마음. 제가 부대에서 지내며 나누었을 대화, 나누지 않았을 대화들이 스쳐지나간다. 그 이야기들 사이에 제게 남는 감정은 안도감, 따스함. 내 소중한 사람들, 아끼는 이들. 내 희망. 빛. 내가 다시 일어날수 있는 이유. 이야기하다 문득 별 의미없이 손을 뻗어 상대를 잡고,


     파스스- 하고. 모래가 쌓여 이루어진 인형은 가루가 되어 흩날린다. 

     ...어라?

     시야 가득 퍼진다. 가루가, 시체가, 내 소중한 사람, 내가, 내가 구하지 못한거야?

     내동료가소중한사람이사라졌어죽었어아파해괴로워해비명을질러비명조차지르지못해내손에남은건뭐에요이건뭐지내손에무언가들려있긴한건가요내가잡고있던사람이날잡고있던사람이더이상날잡지못해안되는데나는언젠가모두를구하고아니그런건이미글렀어나는약해빠져서그런행동은흉내조차낼수없으니까적어도손에닿는사람만이라도이사람만이라도제발내가조금이라도할수있게해줘나는영웅이아니야나한테망토같은건어울리지않는데사실아직도무거워요그치만포기하면안돼우리가마지막희망이라고했는걸아무리보잘것없어도반드시해보여야만제발제발내가더열심히할게요뭐든어떻게든힘을내보일테니까내사람을더데려가지마내거야내사람이야빼앗기고싶지않아전쟁따위에게죽음따위에게넘겨주지않을거에요돌려줘돌려줘돌려줘돌려줘돌려줘돌¿줘내●내#람들아아&?아아





     불길이 치솟는 막사, 널부러진 인형들. 홀로 남은 아이는 제 목을 움켜쥐고 비명을 질렀다. 꾸역꾸역 흘러나오는 붉은 소리를 토하며 울고 또 울었다. 손톱을 세워 제 목을 긁고 또 긁었다. 손가락을 타고 흐르는 피가 저를 비웃었다. 너는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앞으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겠지. 포기하지도 못하고, 두 다리가 부러져도 걸어나가야할테니까. 그렇게 다짐했으니까. 저를 태우는 불길은 저를 달콤한 고통으로 이끌고, 그대로 눈을 감아.

 
..
....
......-?

     
     아주 작은 소리가 있었다. 제 귀에 들리는 것이 있었다. 눈앞의 지옥에 비하면, 그건 꼭 환청과도 같은 것이었다. 다정하고 따스한 환청. 소근소근, 속삭이는 소리들. 그리고 제 볼에 닿는 느낌. 아냐, 이건 고통스러운게 아니라. 나를 이끌어주는 내 빛. 내 봄. 봄에 핀 가장 예쁜 생명, 꽃. 내 사랑스러운 가족. 아이는 손을 뻗어 제 뺨을 만졌다. 손에 닿는것이 있었다. 소중히 제 꽃을 쥐고, 라민은 드디어.





     눈을 떴다. 어느새 잠들었는지, 막사 한구석에서 활을 꼭 안은채 잠들어있었다. 제 뺨을 눌러대던 베르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제 품으로 파고들었다. ...아.. 미안해, 베르야. 많이 놀랐어? 위로하려 낸 목소리가 꽤 탁했다. 혹시 잠꼬대로 소리지르거나 한건 아니겠지. 불안한 표정으로 눈을 데굴 굴리며 베르를 그저 쓰다듬어주었다. 훌쩍이던 베르는 이내 제 품에 솜방망이 주먹을 마구 날리기 시작했다.
     
     아, 아야. 아파, 미안하다니까, 베르야. 악, 잠, 잠깐, 거기 명치, 억, 큽... 몸을 웅크린채 나지막히 신음소리를 내던 라민은 이내 웃으며 베르를 꼭 안고 얼굴을 부빗거렸다. 켜두었던 뱃지에서는 여전히 도란도란 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얼마나 잠들었던거지? 중얼거리며 막사 밖을 힐끔 바라보았다. 여전히 밖은 어두워 시간을 알기 힘들었다. 어쩌면 긴 밤을 내내, 어쩌면 찰나의 악몽을 꾸었을지도 모르지. 매번 꾸는 악몽에는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만 매 악몽마다 저를 감싸는 기분은 비참하기 그지없어서-

     ......비참해? 무엇이?

     뭐가 비참했더라. 악몽을 꿨던것같은데. 악몽이니까, 뭐. 꿈은 금방 잊혀지겠지. 눈을 꿈뻑이다가 뱃지나 들었다. 금세 많은 것이 잊혀졌다. 어느것이든 금세 제게는 별것이 아닌 일이 되겠지. 고통을 제거할수 없다면 최소한 무뎌지는 수밖에. 아, 아. 다시 목소리를 냈다. 그새 평소와 같은 목소리가 나왔다. 아무에게나 말을 걸까. 생각하다가 문득 뱃지를 내려놓았다. 노래를 부르고싶은 기분. 뱃지는 치워두고 노래나 부르기로 했다. 노래를 타고, 남은 찌꺼기마저 섞여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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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변의 물소리는 그저 고요했다. 간간히 물이 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중 하나는 아방크이거나, 크랩이거나. 어, 저건 물고기겠다. 가벼운 파문이 이는 수면을 바라보며 나지막히 미소지었다.

      이곳은 참 오랜만이었다. 여전히 마물이 나올까 싶어 가까이에 제 활을 두고 경계중이었지만, 마음은 상당히 편했다. 아주 오래전에 라그나 형과 같이 이곳에 왔던 때를 떠올리면 상상도 할수 없을 정도였다. 강변에 올수 있게 되었던 때, 함께 가자는 약속에 형은 언제나와 같이 저를 불렀다. 라민. 저는 언제나처럼 답했다. 네, 형. 그런 즐거운 호명을 반복하다보면, 어느새 강변이었다. 강변을 걷던때에 물속에서 마물이 튀어나왔다.

     그때의 마물이 물슬라임이었는지, 아방크였는지. 크랩이었는지. 아니면 피쉬맨이었는지. 지금의 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그 마물은 그때의 제게는 아주 강했다. 세번을 얻어맞으면 바로 빈사상태가 될만큼, 상대하기가 까다로웠다. 동시에 제 공격도 그와 비슷했다. 상대를 세번, 네번정도 맞추면 아슬아슬하게 잡을수 있을까? 저는 조금 걱정했던것도 같다.

      하지만 제게 같이 가자고 한 이는 달랐다. 라그나형은 제자신도 불안해하는 제 화살을 믿고, 저와 마물 사이에서 마물을 도발하며 자신을 응원해주었다. 제게 활약할 기회를 주겠다고. 라민, 저녀석이 날 공격해서 버틸 수 있으면, 그 다음엔 같이 공격하는거야. 그럼 끝낼수 있어. 형, 무리하는거 아니에요? 괜찮겠어요? 제 불안한 물음에도 그는 당당히 웃으며 앞에 나설 뿐이었다.

       마물의 공격에도 아슬아슬, 쓰러지지 않은 라그나는 저를 불렀다. 그 부름에 호응해, 화살을 쏘고. 날아간 화살은 명중. 쿵, 쓰러진 마물을 보며 저들은 물론 뱃지 너머의 이들까지 환호성을 질렀었다. 아, 그때는 정말 짜릿했었지.

       아방크가 튀어나왔다. 한 점, 급소를 노린 화살이 바람을 갈랐다. 순식간에 아방크는 쓰러졌다. 아방크의 미간에 꽂힌 화살을 회수하며 생각했다. 저는 이정도로 성장했구나. 아방크에게서 회수할 화살의 갯수만큼. 네개에서 한개. 문득 기분이 좋았다. 이 화살은 간직할까. 화살깃 끝을 조금 잘라냈다. 성장의 증거. 언젠가는 빅풋에게서도 성장의 증거를 회수하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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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 long and goodnight
               그럼 안녕, 그리고 좋은 밤이 되기를



      죽은것에서는 끔찍한 냄새가 났다. 죽은 사념들이 엉겨붙어 형체를 이룬 검은 액체, 시체가 한데 모여 일그러진 거대한 언데드. 그것들을 보고있으면 황천을 들여다보면 이런 모습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옥중에서도 가장 낮은 곳,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나쁜 일을 한 자들이 떨어져 벌을 받는 곳이, 어쩌면 이런 상태일까. 제 눈앞의 광경들이 하도 끔찍해서 그 상상은 자연스레 수긍이 갔다. 어쩌면 지옥조차도 이것보다는 덜 잔혹하지 않을까? 지옥이 반쯤 열려서, 그 안에서도 무시무시한것만이 기어나와버렸다던가. 그 거대한 언데드를 처음 만났던 때에 생각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마치 산 사람처럼. 멀쩡히 일상을 살던 이들처럼. 귓가로 파고드는 소리는 달콤한 독이었다. 아파, 살려줘. 영웅이랬잖아. 왜 우리를 구해주지 않아? 그만해주세요, 동생이 아파요. 소리를 듣고있으면, 꼭 그 안에 아직 살아있는 이들이 있어서 저에게 손이라도 뻗고 있는것처럼. 죽은 이들의 영혼이 아직 묶여있어 그때문에 저렇게 고통받는거라면. 이상하다? 지옥에는 가장 나쁜 이들이 가는건데. 이곳에 살던 이들이 전부 나쁜 이들일리가 없잖아. 그럼 이들은 왜 고통받고있는거지? 하지만 눈앞의 존재들을 사람으로 생각하는것은, 차라리 사람이 아닌 존재로 생각하는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사람의 형태조차 갖추지 못한 검은 것들을 보면서 저 안에 영혼이 있을까 생각하는 것. 시체가 엉겨붙어 뭉친 좀비 안에 혹시 아직 구할수 있는 존재가 있을까 생각하는 것. 상대에게 화살을 겨누며 하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들. 그래서 차라리 눈을 돌려 외면해버렸다.

     산사람이라도 구하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택했다. 부상자들에게 손을 내미는 일은 수도 없이 해왔던 일이었기에 일말의 의심조차 하지 않았던것같다. 적어도 다친 사람을 구할수 있잖아.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아픈 이를 구하는것은 우리가- 내가 해야하는 일이니까. 전쟁에서 사람을 구하는 일이 꼭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였다. 구하자는 결론이 나왔을때는 조금 기쁘기까지 했다. 기뻤을까? 자신은 분명 중얼거렸다. 사람을 구하는 일이, 후회로 남지 않게 해달라고. 그 기도는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부상병의 피가 묻은 망토는 버렸다. 망토를 여러개 사두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너무 많이 다쳐서 고통과 공포에 정신을 놓았을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착각해서 그랬을거라고. 망토를 버리기 전에 아주 잠깐 생각했다. 그렇게 착각해서, 제 몸조차 살피지 못할정도로 날뛰다가 죽을 정도라면 차라리 그 힘으로 살아남지. 조금은 원망도 섞였을것이다. 후회도 했다. 조금 더 다치더라도 다가가서 상대의 공격을 막았다면? 움직이지 못하게 막았다면 살았을까? 어느 생각이든 부질없었다. 후회하지 않기로 약속했으면서 항상 후회는 저를 물고 늘어졌다. 후회하지 않고, 자책하지 않기로 했지만 저는 아마 평생 발에 달린것을 떨칠수 없겠구나 생각했다. 떨칠수 없다면 그저 잊고 걸어가야겠지. 돌아보지 않고. 결심한 저는 이전보다 훨씬 간단히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쉬운 길이었다. 후회를 딛고 일어서는것보다 훨씬. 이게 더 성장한걸까, 조금 더 어른이 된걸까. 그런 생각도 조금 했다.

     좀비가 빛무리가 되어 사라졌다. 많은 이들이 추모의 행동을 보였다. 레와르님의 곁으로 떠난 이들을 위로하고싶다는 마음은 진짜였다. 꽃대신 제 날갯깃을 들었다. 색이 안예뻐. 깃털은 탁하고 검은 빛이 돌았다. 이런 것으로 죽은 이들을 위로할수나 있나? 이런 탁한 마음으로? 이런걸론 안돼. 레와르님을 향한 가벼운 소망 외에, 별다른 기원은 바치지 않았다. 그럼 안녕, 그리고 좋은 밤이 되기를. 작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밤이 깊었다. 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보다가 뱃지의 소리를 켰다. 고요한 주위는 어느새 도란도란한 이야기소리로 가득찼다. 잠깐 쉴까. 내일이면 또 마물을 잡으러 이동해야겠지. 중얼거렸다. 그럼 안녕, 라민. 그리고 좋은 밤이 되기를.









     이런게 어른이 되어가는거라면, 어른은 되고싶지 않다고 누군가 외쳤던것도 같다. 외침은 너무나 미약해서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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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피… 에 대해서는. 저는 좋은 기억이라곤 통 찾기 힘들었다. 한번은 렐 누나와 회피 대련을 한적이 있었다. 약 두시간 반에 걸쳐 대련이 이루어졌는데, 렐이 회피에 실패한 횟수와 자신이 회피에 성공한 횟수가 거의 동일했다. 정말정말 즐거운 대련이었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음. 다음엔 방어 대련으로 해야지.
     하지만 제가 회피에 재능이 없다해서, 그대로 안되나보다- 하고 둘 수는 없지 않은가. 연병장을 구르고 또 굴렀다. 회피에 성공할때까지. 성공했을때의 감각을 눈과 몸에 익혔다. 공격을 끝까지 보고, 정확한 순간에. 몸을 날려 회피하는것. 몸놀림이 점점 날렵해지자 그런 행동을 취하기 조금 더 쉬워진것 또한 한몫 했다. 언젠가 더 익숙해지게 된다면, 제 몸 뿐 아니라 다른이들 또한 위험에서 구해낼 수 있으리라. ………그렇다면 지금은 그저 몸을 던져 피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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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살로 최대한의 급소를 노려 일격에 상대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 이전에도 항상 해왔던 일이었지만 이번의 기술은 특히나 정확성을 크게 요구했다. 샌드백같은 것이 아닌, 움직이는 마물을 상대로. 정확히 급소를 노리는것.
      무슨일이 있어도 맞춘다, 와는 달랐다. 오러를 감싼 화살이 상대를 반드시 추격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급소에 꽂히지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오러가 화살에 제대로 감싸인다면 방어도, 회피도 소용없었다. 하지만 이것은 명확한 급소를 노린다. 단 한발로 생사를 가를 수 있는 궤적을 그려낼 것이었다. 잘만 하면 상대가 피하거나, 어느정도 막을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게 가능하다면. 활을 들었다. 표적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날아간 화살은 제가 과녁 중앙에 다시 그려낸 작고 작은 원 한가운데를 명확히 꿰뚫었다. ……이걸로도 부족해. 활쏘기는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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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와 블루베리, 설탕으로 만드는 애플베리차]

1. 사과를 작게 썬다
2. 사과와 블루베리, 설탕, 물을 냄비에 넣고 끓여 달큰하게 조린다.
3. 물을 더 많이 넣고 끓인다.
4. 10분후에 예쁜 잔에 담아낸다.
5. 달콤하고 따스한 애플베리차 완성!





[장어와 소고기와 파와 설탕과 치즈로 스태미나포션]

1. 장어를 손질한다.
2. 프라이팬에 소고기를 통째로 넣고 약불에 굽는다.
3. 소고기의 한면에 설탕을 뿌리고 뒤집는다. 캐러멜 층을 만든다.
4. 파를 반만 부러뜨려 소고기를 굽고있는 프라이팬 구석에서 함께 굽는다.
5. 그릇에 담기 직전, 치즈 이불을 덮어준다.
6. 장어 또한 프라이팬에 굽는다. 남은 파를 잘라 단면을 조금 문질러준다.
7. 장어도 그릇에 한입크기로 잘라 정렬한다.
8. 남은 치즈는 달궈진 그릇에 녹여 담는다.
9. 이름만 포션인 치즈스테이크&장어구이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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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수를 하는것은 괜찮았다. 실수를 하더라도 그걸로 더 배워 다음에는 더 성장하자고 생각했다. 같은 실수를 두번 반복하지 않는게 훌륭한 이가 될수있는 방법일거라고. 그런데 이곳에서의 실수는, 그저 자신의 실수로 끝나는게 아니었다. 그래서 무서웠다.

      어떤 실수는, 한번 하면 영영 되돌릴수가 없었다. 단 한번의 선택값이 너무도 비쌌다. 제 목숨이 걸려있거나, 다른이들의 목숨까지 걸려있거나. 그랬더니 실수하는 것이 두려워졌다. 하루하루마다 던전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왼쪽길, 오른쪽길. 하나는 함정이고 하나는 평범한 길이야. 어느쪽으로 갈래? 함정으로 가면 누군가 죽고 평범한 길로 가면 다시 갈래길이 나온단다. 갈수록 제가 실수하진 않을지가 무서웠다. 길을 잘못 선택할까 두려워졌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저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리도 큰 실패를 경험해본 일이 없었으므로.

     이전의 제가 실수한것이라고는 지금 생각해보면 별것도 아닌 일들이었다. 저녁식사, 활쏘기, 그물 찢어먹기, 물건 판매중 계산 실수. 그런것들은 간단하게 회복이 가능했다. 웃으며 불조절을 잘못했어요, 다시 할게요 라고 이야기하거나. 화살을 뽑아와 다시 쏘거나. 수선하거나. 고치거나. 이곳에서는? 괜한 객기로 혼자 길을 나섰다가, 저를 구하러 온 이마저 위험을 감수하게 되거나. 던전에서 길을 잘못 인도해, 동료들이 전부 위험해질뻔 하거나. 제대로 싸우지 못하면- 죽지. 죽는다. 너무나 슬프고 끔찍한 결말이었다.

     제가 죽을뻔 한 일은 정말로 무서운 경험이었다. 끔찍한 고통이나, 과거의 일들이 스쳐지나가는 모습. 그런데 죽게될까, 문득 생각한 순간에 저와 함께 쓰러지는 이를 봤더니. 다른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혹시, 내가 좀 더 떨어져있었다면 엔비스 형은 공격을 무사히 피할수있지는 않았을까?

      그 생각이 상처에 들러붙었더니, 어두운 흉터로 자리잡았다. 제대로 회복이 끝나고나서 자리를 피해, 저혼자 탁해진 깃을 뜯어보려 한것은 그런 이유였다. 내가 눈치채지 못해서. 내가 짐이 되어서. 내가 거기에 있어서. 나때문에. 계속계속 뜯었다. 그러고도 남았다. 그래서 결국은 이도저도 정리하지 못한채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돌아와서.

      당신의 앞에 서서 이야기를 듣고있으면, 문득 제 깃이 하나둘 떨어져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말을 최대한 아끼려고해요. 위험할때에 쓸수 없을지 모르니까. 글로 전해지던 이야기를 기억한다. 하지만 당신은, 말이 나오지 않게 되더라도 저를 위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내 속도, 내 길. 당신의 품에 안긴채 생각했다. 나다운, 나밖에 할수 없는 영웅. 예전에는 맑았다가, 지금은 탁하게 흐려졌다가. 당신의 말이 닿자 조금씩 색이 옅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이제는 정말로 괜찮다고 말할수 있을것같았다. 넘어진채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던 자신이 있었다. 다시 일어나면 또 넘어지지 않겠냐고 투정을 부리고있었다. 그런 이에게도 손을 내밀어주었다. 자신만이 빛이 보이지 않는다고 웅크리고 눈을 감고있었을 뿐이지, 실은 사방에 빛이 있었다. 그리고 당신도 빛을 보여주었다. 결국에는 제 눈꺼풀 너머로도 빛이 스며들어, 눈을 뜨게 했다.

      응. 대답은 아주 작게 나왔다. 부끄러워서 시선도 제대로 맞추지 못한채 웅얼거렸다. 아직도 저를 탓하는 제자신이 발목을 잡고있었지만, 그걸 매달고라도 걸어보겠다고. 언젠가는 발목잡던 이도 지쳐서 나가떨어지지 않겠냐고.

"내가 할수있는거. 그걸, 해낼게요. 조금 느리더라도, 쉬지 않고 한걸음씩이요. …다시는 이런 어리광 부리지 않고, 정말로 어른이 되어보일게요.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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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 너무 아프다. 제가 처음 든 생각이었다. 그저 그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그저, 자신은 교관님들과. 다른 분들과 함께 막사에서 이야길 듣다가… 갑작스런 소란과. 나가보니, 에드워드 교관님이. 빨리 피해, 소리치고.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지? 그냥 아주 아프고, 아주 소란스럽고. 공격이- …어? 이상하네. 누가 한 공격이었더라? 타는것같은 고통과, 소란스러운 주위.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제게 스며들던 따스한 기운에 정신을 차렸었다. 그럼에도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눈앞의 '적'을 향해 공격을 했다. 손이 떨리는 이유가 아직도 남은 고통으로 인해서인지, 제대로 돌아오진 정신으로 인해서인지. 아니면 상대의 모습때문인지. 쓰러진 이는 검게 녹아내렸다. 주위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주저앉은채, 잔기침을 몇번 했던것같다. 시선을 떨구자 무언가 이상했다. 어. 황급히 일어나 비틀거리며 사람이 없는 곳으로 향했다.

      간신히 한적한 곳에 도착하자마자 토악질이 밀려나왔다. 한참을 게워냈다. 그리고나서야 제 몸을 확인할수가 있었다.

     찢어진 옷, 상처하나 없는 몸. 아니. 주저앉아 시선을 떨구자 제 날개가 내려다보였다. 끝이 너덜너덜 찢어진채- 아마 마기에 직접 영향을 받아서겠지. 끝이 까매. 색이 탁해졌어. 어쩌지? 제 등을 만져도 더이상 아프지는 않았다. 하지만 손이 닿을때마다 덜덜 떨려서.

      이건 다 네가 멍청해서야.

      그렇구나. 진짜가 아님을 알아챘어야 했는데. 저는 또다시 멍청해서, 이제는 엔비스 교관님에게까지. 아. 어떻게 하지? 저를 회복시키려고, 들어간 이들의 고생이. 내가 더 강해졌어야 했는데. 차라리 날 회복시키느니, …………

     뚝, 손을 뻗어 변색된 깃털을 잡아 뜯었다. 너무너무 아팠다. 몇번을 더 뜯자, 바닥에 탁해진 깃털들이 쌓였다. 그러고도 날개는 여전히 더러웠다. 내가 바보같고, 약해서그래. 어머니, 아버지. 저는 영웅이 되려면 아직도 멀었나봐요. 멀기는 커녕, 어쩌면 무리였던건 아닐까 하고.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나봐요. 이렇게나 실수하고서야 깨달았어요. 나는 아직도 약하고, 아무것도 아니고.

      희망은 꺾일때 가장 빛난다고 하지.

      저는, 심지어 빛나지도 못하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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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명한 유리병이 하나있었다. 어찌나 물이 가득 꼭꼭 담겼는지, 들고 흔들어도 미동하나 드러내지 않았다. 안에 공기 한점 들어가지 않은것처럼, 구르고 던져도 병은 그 얼굴에 파문 하나 비치지 않았다. 저는 그것을 엄마라 불렀다.

      애초에 별것도 아닌데서 흘러나온 호칭이었다. 깊은 밤, 고요한 야영지. 뱃지로 다른이들과 이야기하는게 좋았다. 이야길 하다보니 제게 상대가 말했던것같다. 조심히 돌아와, 몸조심하고. 참 엄마같네. 장난스레 답했던것같다. 네, 엄마. 아들이 돈 많이많이 벌어갈게요. 그 실없던 대화가 그저 이어졌다. 엄마, 아들. 유리병을 꾹 누르면 지문이 남는것처럼, 당신을 꾹 누르고 있었다. 언제든 천으로 닦아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었지만, 그 자국이 지워질라 매일 누르고 또 눌렀던것 같다.

      딱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나… 그런건 아니었다. 자신의 어머니는 누구보다 훌륭한 분이시고, 정말 많이 사랑하고 존경하고 있다. 그냥 호칭을 부르는 그 자체에 의미가 있었다. 파씨와 라민이 아닌, 엄마와 아들로 서로를 칭하면서. 어쩌면 관심이나 애정이 섞였을 무언가를 받으면서. 그게 그냥 기뻤던거겠지. 당신은 제 어리광을 항상 받아주었으니까. 물처럼, 참 고요하게. 물수제비를 던져도 파문이 일지 않는 강이었다. 그게 참 이상해서 손을 담그면, 고요하게 물속으로 손이 잠겨들어갔다. 그러나 어느정도 이상은 절대 들어가지 않았다. 똑똑, 손으로 두드리면 유리같은것이 가로막고있었다. 깨질까? 제 손을 벨지도 모르지. 저는 그게 두려워 손을 떼었다.

      병에 담긴 물은 천천히 탁해지고 있었다. 모를리가 없었다. 투명하니까. 정말 모두가 알았다. 누군가는 포기해버리고, 누군가는 병을 두드리고. 저는 어땠냐면, 보고도 모른척 했다. 아들 실격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싫어할까봐, 물들어가는걸 그냥 보고만 있었다. 그러다가도 진짜 물들어버리면 어쩌지, 두려워지면 주위를 맴돌 뿐이었다. 톡톡, 손끝으로 두드리다가도 무서워 금세 손을 뗄 뿐이었다.

      그러니까 자신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사람도 있는거야, 세상에는 그런 일도 있는거야. 물이 했던 이야기를 되뇌였다. 그러고도 남은 것이 발길을 잡았다. 약속한 것이 조금 있었다. 약속? 일방적인 농담도 약속이 될까. 어쩌면 그냥 죄책감이 그럴듯하게 포장해 모습을 드러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렇게 하면 자신의 부작위에 대한 뭔가의 용서라도 될것처럼. 

      막사로 오는길에, 눈에 띄는 꽃을 이것저것 꺾었다. 이름도 모르는 들꽃들이었다. 그마저도 크기가 달라, 끈으로 돌돌 묶자 꽃으로 만든 둔기같은 모양새마저 띄었다. 가장 가운데에는, 우습게도. 니노 하나. 다음에 얻으면 꼭 드릴게요, 약속했던 것. 제가 직접 얻은것조차 아니었지만. 니노 꽃다발이라니, 교관님이 진짜 좋아하시겠다. 아무 천으로 둘둘 말면서도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니노 한송이를 꽃다발 사이에 끼워 선물한다니. 다른 분들이 보면 진짜 이상하다고 생각할텐데.

      지금 당신은 무얼 하고있을까. 아플까? 많이 아플텐데. 마기의 영향으로, 많이 변하진 않았을까. 저녁 식사는 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막사앞에 도착했다. 잠시 망설였다. 내가, 이제와서… 두드려도 되는건가? 정말로 이제와서야?

      그래서 메모를 남기기로 했다. 양피지를 꺼냈는데, 한글자도 적지 못했다. 무슨 말을 써야하지? 하고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막상 손끝은 고요했다.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라 한참을 그저 종이만 내려다보았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텅 빈 메모, 니노 꽃다발 한송이. 막사 앞에 두고온것. 수면을 두드리긴 커녕, 저는 또 도망쳐버렸다. 엄마, 어서 돌아와요. 벌써 보고싶어요. 속삭임도 그저 고요할 뿐이었다. 저는 오늘도 살아있어요. 엄마는 어떤가요? 물음은 돌아가는 제 발자국에 짓눌려 사라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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