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그곳에서 만난 친우.
헤르베르트 바이스는 본래부터 사교적인 이가 아니었다. 천성이 그러한 이였고, 군의관이 된 후에는 군대라는 위계질서의 공간에서 거진 8년을 살았다. 사교성이란 것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고, 그다지 필요도 없었다. 그가 아끼는 동료는 그와 함께 최전방의 환자를 지키던 군의관들이 전부였고, 그들은 그 끔찍한 지옥에서도 사람을 살리고자 발버둥쳤다.
전쟁의 막바지에 이르던 어느 날 상부로부터 중환자는 버리고 즉각 퇴각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헤르베르트는 제가 돌보던 이들을- 아직 살아있는 이들을 차마 두고갈수가 없었다. 그는 제 친구들을 설득했다. 중환자는 그리 많지 않아. 우리가 조금만 준비하면 그들을 데려갈 수 있을걸세. 아직 살아있는 자들이야. 우리가 살려야지 않겠나. 그들은 하나같이 동의했다. 중환자들은 전부 몇년을 함께한 제 동료들이었으니까. 그들은 상부의 명령을 어기고, 남아 환자들의 이송을 준비했다. 이쪽, 다리를 들어! 빨리. 시간이 없어. 얼른 이들을, ...잠깐. 무슨 굉음같은 것이 들려. 누군가 말했다. 상부에서 말한 시간보다 한나절은 빠른 때였다. 그들은 그것이 후에 폭격기라 불리게 될, 폭탄을 투하하는 비행기가 상공을 스치는 소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야전병원은 이내 폭발에 휘말렸다. 헤르베르트는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났을 때엔 그 혼자였다.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후방 병원. 그때로부터 몇개월이 지났다고 했다. 전쟁은 끝나버렸고. 그는 의병 제대와 유사한 형태로 군의관의 지위를 박탈당한 상태였다. 알량한 공훈 뱃지 하나. 전보다 나빠진 시력. 목 뒤와 손등의 화상 흉터. 전쟁이 끝난 사회에 내던져진 그에게 남은 것은 그정도였다. 그는 어느 병원의 외과의로 취직했다.
목숨을 건 유대관계가 있는것도 아니고, 사회성도 없고. 말투는 무뚝뚝한데다 종종 사람을 볼때 미간을 찌뿌리는 버릇이 있는 의사는 그다지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동료들은 오래 지나서야 그가 퍽 나쁜 사람은 아니구나를 깨달았을 테고, 그럼에도 어쩐지 다가가기 힘든 사람이란 느낌은 남았을테지. 헌데 그렇지 않은 이가 있었다.
그녀를 처음 보았을때의 감상을 이야기하자면, 글쎄. 새하얀 사람이었다. 노블바이스 폰 그레이슬린. 새하얀 가면에, 장미 장식. 온통 새하얗고 내내 당당한 미소를 머금은 이. 그녀는 어느새 제게 다가와 저를 친우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다가오는 사람을 밀어내지는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친우가 되었다. 가끔 그녀를 보며, 왜 저런이가 저를 친우라 불러주는가?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체링겐가의 편지를 받았을 때에, 그는 정말로 돈을 벌 목적으로 휴가를 냈었다. 체링겐가에 대한 소문은 군대에서 몇번 들어본 적이 있었다. 뭐, 어느 전투에서 공을 세운 귀족가라느니. 헌데 갑자기 나타났다지. 참 이상해. 전부 뜬구름 잡는 이야기였다. 그런 체링겐가에서 저에게 편지를? 잠시 고민하기도 했으나- 뭐. 거짓이라면 휴가낸 셈 치고 돌아오면 될테고. 진실이라면 그들이 말한대로 돈은 넉넉히 줄 테지. 그는 체링겐가로 향했다. 로비에 도착해, 복작복작한 사람들 사이에서 익숙한 흰 색을 발견했다. 언제나와 같은 흰 장미의 가면. 더욱 화려한 옷차림. 그녀는 저를 보곤 언제나처럼 친우여, 하고 인사할 뿐이었다. 왜 네가 이곳에 있을까. 주위의 이들은 온통 귀족이나- 그에 준하는 격식있는 이들만이 모인것 같았다. 제가 입은 정장은 제게 어울리지 않는것도 같아, 몇번이나 소매를 고쳤다.
그래도, 익숙한 이가 있어서 다행이군.
그는 노블바이스와 시덥잖은 이야기와 약속을 나누었다. 그녀는 이곳의 것만큼이나 좋은 레드 와인을 선물하겠다 했고, 그 보답으로 소풍을 가자고 했다. 간다면 어디로? 실은 어디든 좋았다. 사랑하는 친우와 함께 하는 식사가 아닌가. 원장실에서 잔소리를 들으며 식사를 하더라도 즐거울테지. 점심 약속에 슬쩍 저녁 약속을 끼워넣었다. 그녀는 제 요리가 먹고싶다고 말했다. 그때의 그는, 제가 할줄 아는 요리중 가장 자신있는 것을 떠올리려 애쓰며 눈을 굴렸다. 그녀에게 줄 수 있는것은 언제나 미미한 것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최상을 주고싶어서.
자네와의 인연과 요리와의 인연의 길이가 같군 그래.
앗 왠지 질투나는군.
.......요리에???
요리에.
질투할 필요가 무어가 있을까, 쏟는 마음이 다르거늘. 쏟는 마음이 달라? 어떻게? 얼마나? .........요리를, 쓰다듬지는 않지. 재미없는 대답이군. 그 답은 맞지만 정답은 아닐텐데. 그는 모른척 했다. 그녀는 내게 과해. 항상 과분하다. 저는 그녀를 항상 제게 과분한 이라고 생각했다. 친우로서도, 그 이상으로서도. 그녀는 언제나 차고 넘쳤다.
두번째, 그곳은 파티가 아니었지.
실은 저들이 체링겐의 군대에 다시 속하게 된 이들이고-이 때에 그가 얼마나 피곤한 기분이 들었는가는, 굳이 서술하지 않아도 될 터이지- 그들의, 그 웃기지도 않는 연구를 진행하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에. 그는 속으로 실소를 감추지 못했다. 그에게 있어서 죽은 자는 죽은 것이고, 사후세계나 유령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으므로. 동료는 죽은 순간 시체가 되어 가치를 잃고, 그를 구하려 손을 뻗다가는 제 손- 혹은 다른 동료를 잃는게 당연한 일이었다. 영혼도, 신도 존재하지만. 한번 몸을 떠난 영혼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고 신은 저 위에서 저들로 체스를 두느라 바쁜 이라. 그는 자신을 체스말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체스말의 생각이 영향을 미치나? 아니지. 거, 지지 않도록 잘좀 두게나. 그는 플레이어의 시선으로 판을 보지 않았다. 그저 포기한 방관자에 가까운 시선이었을 뿐이었다.
어쨌든, 다음날부터 시체를 꿰매서 그 괴상한 기계에 넣고는 작동시켜- 병사를 만들어낸다? 아무래도 체링겐가에 미신에 가까운 망령이라도 씌인 모양이지. 성공을 하긴 할까. 적당히 시도하다 포기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로비로 올라오니 온통 시체의 산이었다. 그는 아주 많이 피로감을 느꼈다. 제 친우의 이름을 부른것은 그래서였다. 노블바이스. 대답은 금방 돌아왔다. 사실 붉은것을 보니 흰 것이 보고싶단 말은 적당히 둘러댄 이야기였을 터였다. 노블바이스가 붉은 이였다 한들, 저는 그녀를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을 테니.
자네도 흰 색의 매력을 아는가보군
시선을 끄는 색채에, 보고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 말인가?
! 그렇지! 분명 그렇지!
좋지.
좋고 말고. 언제나 제 시선을 끌고, 보고있으면 차분해지는. ...나는 흰 색과 노블바이스를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 생에 이리도 하얀것은 노블바이스가 처음이었다. 장미가 이리 아름다운지도 처음 알았다. 그 색을 계속 곁에서 보고싶어. 내가 자네의 친우라 다행이지. 친우가 아니었다면 이 거리마저 볼 수 없는 광경이었을게야. ...가까워 다행이야.
그녀가 무엇이 되더라도 친우라 여겨주겠냐고 물었을 때에, 그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녀가 대체 무엇이 된단 말인가? 저를 떠나거나, 변하거나. 달라져? 이 흰 빛이? 그는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아, 되려 노블바이스가 그럼 무엇이 되겠냐고 물었다. 네가 어떤 모습이건, 무엇이건 상관없어. 내가 부르면 답하는 이, 그가 노블바이스지. 그때의 그는 그저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세번째, 그리고 15일 후에.
15일간 지하실에 틀어박혀 시체를 꿰매고- 실험을 반복하는 일을 하고 나왔을 때엔 모두가 지쳐있었다. 그또한 마찬가지였다. 그저 피로한 기분을 쉬고싶어, 저도모르게 부른것은 제 친우의 이름이었다.
노블바이스.
응, 여기 있네.
그녀는 제 부름에 답했다. 쇼파에 앉아 그녀에게 제 허벅지를 베도록 내어주고. 저는 그녀의 머리를 매만졌다. 시체는 시체. 내 앞의 살아있는 친우에게나 신경쓰자고. 그는 그저 그녀가 걱정일 뿐이었다. 자신은 그저 그 흰 빛을 보는것만으로도 좋았다. 하지만 그녀는? 혹시 지쳐있지는 않을까. 제가 걱정할까 내색하지 않는것은 아닐까. 원하는 것, 마음대로. 적당히 이유를 둘러대며 그녀에게 도움이 되려 애썼다. 그녀는 제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답했지만. 나는 네게 부족한 이이고, 너는 내게 과분한 이인데. 그저 제 존재만이 도움이 될리가 있을까?
무언가가 두려웠던것도 같다. 내가 부르면 언제든 답한다 했지, 그것만 지키게나. 천천히 가게. 고목은 느리네. 돌고 돌아 제 입으로 빠져나온 두려움은 그런 모양새를 띄었다. 두고 가지마. 내 말이 들리고, 네 답이 들릴정도로 가까이에 있어. 함께 있어. 그 말을 꺼내지 못해 말은 빙글빙글 돌았다. 너는 새하얀 빛이었다. 새하얀 색이 쉽게 다른 빛에 물들어 사라져버릴까 두려워. 아니, 다른 색이면 무슨 상관인가. 그녀가 노블바이스야. 아니, 노블바이스는 항상 하얗지 않나. 죽은이를 꿰매다가 망령이라도 붙은게 분명했다. 네가 혹시라도 죽는다면, 나는 너를 죽은 이로 생각해버릴테지. 그러고싶지 않네. 부디 죽지마. ...죽지마, 내 가장 소중한 이. 어쩌면 그런 바람은, 빌어먹을 예감과도 같은 것이었으리라.
네번째, 너는 끌려갔고.
반이 넘는 이들이 끌려갔다. 그 속에는 제 소중한 이가 들어있었다. 그는 할수만 있다면, 제 눈앞에서 그 흰 빛을 데려가는 것을 막고만 싶었다. 이곳은 지옥이고 어둠이야. 너는 흰 빛이고. 네가 없으면, 나는 다시 눈이 멀텐데. 그는 두려웠다. 제 시야를 벗어난 빛이, 어떻게 될지가 너무도 두려웠다. 숲길을 걷다보면 감옥이 나와. 그곳에 있으니 면회를 가도 좋다고 이야길 들었다. 밖은 추울테지. 그는 아무 방을 뒤져 가장 새하얀 모포를 찾았다. 그와중에도 필사적으로 흰 것을 찾고 있었다.
네 손은 찼다. 너는 웃었지만. 자네는 괜찮지 않아. 그렇지? 하고 물었다. 너는 내게 거짓을 말한적이 없었다. 이리 말하면 솔직하게 대답해줄 터였다. 무섭네, 하고 대답했을때 저는 차라리 제가 그 목록에 이름이 들어가있었어서, 네 곁에 들어가 있었기를 소망했다. 그녀가 두려워하고있질 않나. 나는 너를 지탱해주고싶어. 실은 담배따윈 별것도 아니었다. 그저 제대 후에 아주 조금 스스로를 학대하는 버릇이 생겨- 부러 나쁜것을 좀 찾다보니 생겨버린 습관이었다. 그때 끊겠다 말할걸 그랬어. 그랬다면 자네는 내게 그 환한 미소를 지어줬을테지. 네가 그 공간에서 나오기 전까지는 볼수없을 그 미소. 내게 평온을 주는.
나는 자네를 구하는 존재인가?
그래. 자네의 존재는 내게 그러해. 내 소중한 벗, 나의 친우. 어제는 육신을 구했고, 앞으로는 영혼을 구할걸세. 내가 자네를 보고 똑바로 걸을 수 있도록.
나는 욕심이 많네. 자네의 육신과 영혼 모두를 구할것이네.
문득, 두려움이 다시 치솟았다. 로위어는 그녀가 이틀후면 풀려날것이라 했지만, 단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가정하에 목숨은 포함되어있지 않았다. 감옥, 군법 재판. 두려운 것들이 떠올랐다. 부러 말을 뱉었다. 죽은 자는 존재따위 지니지 못해. 네가 죽으면 네 존재도 사라질테지. 그러니 죽지마. 그러자 그녀는 되려, 구할것이라 중얼거리고.
그가 그때 그녀에게 말한 것은, 자신을 향한 다짐이었고 그녀를 향한 맹세였다. 실은 노블바이스가 할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는데도. 네가 죽으면, 나또한 영혼도 육신도 죽음을 찾아 고통받을 것이라고. 그건 사실 자신을 향한 채찍질이나 다름없었다. 소중한 이를 구하지도 못한 자가 감히 삶을 살고, 영혼이 무사하리란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말라고. 구해, 헤르베르트. 못구하거든 차라리 죽어. 소중한 이가 끝이 나버렸는데 네가 살아있으면 안되지 않나. 그는 당연히 그런 생각을 했고.
다섯번째, 단두대가 자른 것은 누구의 목이었을까.
그 밤은. 글쎄.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제 죽음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서도 그녀는 평소처럼 웃었다. 아니, 자네는 지금 웃고싶지 않잖아. 웃지마. 노블바이스. 울어야 하는 이는 울어. 제발, 울어줘. 내게 보이는 마지막 얼굴을 거짓으로 보내지 마. 그는 애원했지만, 그와 같은 비겁한 이의 말은 닿지 않았던 듯 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 단두대 앞에서, 그는 분명 몸을 던져 군인들에게 달려들었다가 총알을 맞고 죽거나- 제압당했을 터였다. 같지만 다른 세계의, 어느 시간에서는 분명 그리 행했을 터였다. 하지만 헤르베르트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외치다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아니? 하지 않고. 그는 그저 절망에 잠겨갈 뿐이었다.
내 영혼은 이제 갈기갈기 찢긴채 지옥 깊은 곳에 불타고, 육신은 가장 짙은 죽음을 찾아 헤맬테지.
중얼거리는 그는 이미 죽은자나 다름없었다. 명령이니 수레를 끌고, 약속이니 반지를 챙기고. 실험. 그래. 이 시체들을 꿰매야지. 맞는 짝을 나열했지만 차마 바느질만은 할 수 없었다. 그레텔이 저를 불렀다. 노블바이스의 시신을 꿰매달라는 이야기인가? 생각이 꽤 느리게 흘러, 이상하다. 마음대로 하게. 그건 그녀가 아니야. 죽은자는 죽은자. 시체는 시체. 죽은 이가 살아날 수 있다면, 그간 제가 떠나보낸 그 많은 죽은 이들의 목숨은 어찌 보상해야 하고. 그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게 된다면, 그는 살리지 못한 이들에게 짓눌려 그 죄책감만큼 산산조각이 날 터였으니.
그런데
시체가
움직였고
너는
살아났지
아니야, 살아났을 리 없어. 움직이는 그녀를 보며 그는 두려움에 떨었다. 아니, 살아났을지도 모르잖아. 아니야. 죽은자가 어찌 살아. 저건- 저건, 그냥 시체가 움직이는 것이지. 저 속에는 영혼이 없어. 있더라도 그녀의 것은 아닐거야. 그래. 그녀는 이미 사라졌어. 그렇지? 너는 그녀를 죽게 내버려뒀잖아. 다른 이들 모두가 되살아난 이들을 살피는 동안, 그는 차마 누구에게도- 그녀에게도. 무언가 말을 건네는 것이 두려웠다. 그녀가 나를 잊었으면 어떻게 하지. 그녀가 나를 기억하면 어쩌지. 살리겠다 약속해놓고, 죽게 내버려둔 이 자를. 원망하면 어쩌지. 너같은 위선자와 친우따윌 하는게 아니었다고, 저 입으로 제게 분노라도 뱉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것이다. 나의 이러한 시간, 이러한 사유, 이러한 행적은 언젠가 나에게 흑백사진처럼 색채를 알 수 없는 환상으로서만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기억들은 언제나 그림자처럼 나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기형도
그래. 그녀는 영영 돌아오지 않을 터였다. 그는 올라가 술을 마셨다. 제정신으로는 현실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저 도피했을 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꽤나 취했을 때에. 어느새 그는 그녀를 찾아 돌아 내려왔다. 내려와서도 그녀에게 모진말을 내뱉고. 그랬다가.
...안불러, 안부를걸세. 자네를 절대 노블바이스라고, ......
응. 나 여기써?
그때 잠깐이나마 품었던 기대는, 저를 아주 높은 허공 끝까지 들어올렸다. 어쩌면 천국의 근처까지. 하지만 너는 제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아. 내 이름을 모르는 이가 노블바이스일리 없어. 그래, 죽은 자가 살아돌아올리가 없지 않나. 그는 끝도 없이 추락했다. 그러면서도, 차오르는 슬픔과 분노와- 모든 것을 차마 어찌하질 못해서. 눈앞의 그녀에게 온통 퍼부어버렸다. 그녀는 내내 답하며 웃었다. 네게 말해둘까. 이 비겁한 자는 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곳에서 나가 병원으로 가면 우리 둘의 사표를 내고. 와인을 사서 집에 갈거라고. 2인분의 저녁을 차려, 배부르게 먹고. 그리고- 죽을거라고. 너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 ...이곳에 있는 것은, 네가 아닐테니까.
그럼 나. 치, 친우? 할래!
왜, 네가? 아니. 너만은 안돼. 네가 내 친우가 되면, 그 자리는 노블바이스의 자리이고. 네가 노블바이스라면. 내가 너를 내버려둔 행동은 어떤 면죄부라도 얻어버릴것 같아서. 안돼. 그래서 계속 밀어냈었다. 그래도 너는 웃더라. 그래서 이름을 바이스라 지었다. 노블바이스가 흰 빛이라면, 되살아난 그녀는 흰 어둠이었다. 여전히 흰 것이었다. 제 삶의 유일한 흰 존재. 네가 여전히 제게 남아 무엇이라도 될것만 같았다. 자신은 이럴 자격이 없었음에도, 너는 여전히 소중하고. 함께 있으면 저가 위로가 되는 기분이라서. 어쩌면 너를 소중하게 돌보면-
그녀가 돌연 비명을 지르다 멈춰버렸을 때에. 미동조차 보이지 않고, 소리를 내지 않을 때. 그는 지옥에서도 더 깊은 곳으로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실험에 문제가 있었을까. 혼이 떠나거나, 다시 기절했거나. 죽어? 죽었어? 바이스가? 내 흰 것이? 또다시? 너는 그저 쉿, 하고 웃을 뿐이었다. 안도하는 순간, 그는 깨달았다. 나는 지금 네게 노블바이스를 비춰보며, 너를 돌보면 마치 내 소중했던 이를 살린 것에 대해 용서받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어. 안돼. 알잖아. 죽은 자는 죽은 자야. 네 소중한 이는 죽었어. 죽었어? 네가 죽게 내버려두었어. 네가 죽였지.
그가 다시 담배를 피우고 온 것은, 노블바이스와의 약속조차 잊고 모든것을 끝낼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바이스를 노블바이스라 생각하지 않고- 아니. 바이스를 바이스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그냥 모르는 상대로. 연구원과 실험 대상으로 돌아가자고. 하지만 이미 내어준 정을, 그렇게 끊어내는 것이 가능할리가 있을까.
그는 또다시 약속을 했다. 그녀를 옷장에서 꺼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정도는 상관없겠지. 그녀의 찬 손을 주물러주었다. 이정도는 괜찮겠지. 어둠 속, 그녀를 위로해주고. 이정도는.
괜찮나?
여섯번째, 떠나. 아니. 기다려줘.
바이스가 고통스러워했다. 신경 자극제를 넣었다고. 그들은 온전히 고통을 느끼는 이들이었다. 그 고통을, 더 높인다면. ....나는, 또 속았지. 멍청하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차라리 제가 아프면 좋을것을. 왜 항상 아픈것은 너고, 이리 멀쩡히 지켜보는 것은 나일까.
족쇄가 풀렸을 때에, 그는 생각했다. 일은 이미 끝났고. 자신은 더는 군인이 아니야. 명령을 따를 필요가 없다. 저들을 폐기한다고. 그건 안돼. 바이스를 바라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는 그녀를 잡을 자격도 없지 않은가. 그보다 그녀에게 이런 지하실은 어울리지 않아.
네가 나가고 나면, 금세 쫓아갈 생각이었다. 어쩌면 네가 가고싶은 곳은 제 곁일지 모른다고, 그런 웃기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너를 찾아낼 수 있을거라는 어떤 확신이 있던것도 같았다. 그래서 서둘러 저택을 나왔다. 숲을 헤맸지만 그들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이러면 안되는데. 나는 전해야 하는 물건과, 전할 것이 있는데. 그녀를 만나야 하는데. 자신의 어리석음을 사과하고, 그녀가 원하는 곳으로 갈수 있도록. 안전한 곳으로. 이번에야말로 함께.
...네게, 원하는 곳으로 가라고 말하지 말고. 밖에서 기다려달라고 할걸 그랬다고. 내 걸음이 너무 느려. 언제나 그랬듯이.
제 후회는 언제나 늦었다.
일곱번째,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드디어 겨울.
봄. 숲을 며칠을 헤맸지만, 아무 소득이 없었다. 그는 죽을것 같을 때에서야 마을로 향했다. 그는 제가 누군가를 찾는데에 소질이 없었음을 인정할수밖에 없었다. ...아, 약속을 지켜야지. 집으로 돌아왔다. 일을 마치고, 빈 방에 앉아서. 칼을 보고.
이상하다. 분명 자신은 바로 죽어, 노블바이스를 따라가려 했는데? 아니. 아니야. 이대로 죽으면 안돼. 그는 중얼거렸다. 이대로 죽으면, 그냥 끝이 아닌가. 자신은 만나고 싶은 이가 있었다. 약속을 하지 않았던가. 꺼내주겠다고.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겠다고. 곁에 있겠다고. 죽게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기억은 끝도 없이 과거로 흘렀다. 그는 그녀를 찾아 헤맸다. 다른 이름을 지어줄걸 그랬다고도 생각했다. 내가 너를 곁에 얽매어버렸던게, 사실 너는 싫었던건 아닐까. 그 숲을 뒤져도 흰 것을 찾을수가 없었지. 너는 도망간게 아니었을까? 내가 너를 또다시 배신해서. ...희지만, 흰것이라고 이름지어주지 말걸 그랬나. 생각했지만 결론은 같았다. 그것 외에는 도무지 그녀에게 어울리는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여름. 그는 누군가에게는 위선자라 불렸다. 어느 꿈은, 그에게 떠난 이들에 대한 행복한 악몽을 보여주었다. 홀로 여행을 하며, 아무런 소득이 없는 것은 꽤나 지치는 일이었다. 이곳에서 괴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아무것도 없고, 저곳에서 소문이 들려 가보면 또다시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제 시력은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빌어먹을 후유증. 피로가 쉽게 회복되질 않았다. 그는 여전히 그녀를 찾아 헤맸다.
가을. 문득, 그들은 이미 사라져버린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죽었을까가 아니라, 저들의 존재를 지워버린게 아닐까 하고. 그럼 자신이 찾을수나 있을까? 어쩌면 그녀가, 내가 저를 찾길 바라지 않는것일지도 모르지. 봄부터 이어진 생각이었다. 답하는 이가 없으니, 피로가 붙어 생각은 겉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그녀가 기다리고 있어. 아니, 기다리고 있을까? 실은 저를 피하는게 아닐까. 그는 어쩌면, 자신이 망령과 같은 존재이리라도 생각했다.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그녀에게 오래전부터 하고싶던 말이 있었어.
말로 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아.
네가 그리 말하며 웃었었지. 나는 네게 말을 전하기 위해, 이리 떠돌고 있었지만. 혹여라도 네가 싫다면 어쩌지. 그래, 겨울까지만 찾아보자. 1년을 찾아도 흔적조차 잡을 수 없다면, 그건 영영 못찾을 것일테지. 그 후에는 차라리 죽어 유령으로라도 떠돌자. 네가 곁에 없는 내 삶을 이리 연명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
자신은 사라져버린 별을 너무 오래 바라보고 있었다. 사라진 것은 완결된 것이며 완결된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죽은 것이다.
/은희경, 태연한 인생
그리고 겨울. 그는 편지를 받았다. 첫번째, 초대장을 받았을 때 갔던 곳에는 네가 있었다. 이 초대장을 따라가면 다시 네가 있을까? 없다면 그 근처에서 죽는 것도 나쁘지 않을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꽤나 들떠있었다.
마지막. 사랑하는 너를 다시 만나.
결국, 마지막까지 나를 먼저 찾은것은 너였다. 너를 그동안 안아주고싶었어. 네 목소리를 듣고싶었어. 네 흰 빛을 다시 보고싶었어. 나는 이곳이 내 마지막이리라 생각했지만, 그리고 지옥의 끝 치고는 꽤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네가 있는것만으로도 지옥은 순식간에 천국이 되었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내가 네게 전하고싶던 말. 일년간의 목적. 너를, ...나는. 나는 너를 사랑해. 노블바이스. 바이스. 무엇이라고 불러도 상관없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권총을 지니고 다녔던 것을 그때만큼 기뻐한 일이 없었다. 나는 너를 구할수 있을까? 혹은 너를 구하고 죽을수 있을까. 이미 나는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어. 다만 그 방식이 달라졌을 뿐. 나는 언제나 너를 구하고 싶었다. 그날, 그 단두대 앞에서부터 쭉. 이러기를 꿈꾸고 있었다. 일년이 지나서야 이룰 수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네가 내 곁에 있기를 바랐다. 나는 죽었으니, 차라리 너도 죽기를 바란것도 같다. 혹은 저를 되살려도 상관없었다. 저는 언제나 지옥에 있었지만, 흰 너를 끌어내려 제 곁에 두고싶었다. 그러고도 네게서는, 이곳이 좋다는 답을 기어이 듣고싶었다.
이름을 부를때마다, 너는. 응, 나 여기있어. 답을 한다. 그 대답이 너무도 소중해. 이제는 이름을 불렀을때 그 답이 오지 않는 공허를 상상도 하고싶지 않아. 소중함은 잃었을때야 느낄 수 있다 했는가. 허면 나는 영영 너를 놓지 않을 셈이다. 나는 비겁한 이. 너와의 모든 약속을 어기고도, 자신은 네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심술을 부리는 제멋대로인 이. 이기적이고, 항상 네가 먼저 찾아오게 만드는. 걸을줄 모르는 나무.
하지만 가능하다면, 언제고 네 그늘이 되어주고 싶다. 네가 항상 지탱할 수 있도록 곁에 있고싶어.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 내 모든것. 영혼의 마지막 조각까지도 네게 바치고. 그리고 마지막 남은 밑동마저 네 의자가 되어주고 싶네. 그러기를 바라고 있어.
사랑하는 노블바이스. 네게 내 모든 사랑에 대한 기억을 바친다.
아안녕하세요 후기 쓰는거 까먹어서 급히 글을 남깁니다 사실 남길것도 없어요 저 너무 노블바이스 사랑하고
이미 성사되긴 했지만 제대로 고백이나... 혹은 제대로 정리된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요! 그냥 바치는 글입니다!!
아 저 노블바이스 정말 사랑해요 내 사랑 저 대화 되찾아보다가 머리 깼구요 헤르베르트 못된자식이 저렇게 막 굴었는데도 받아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진짜 다시는 울일 없게 행복하게 보살펴줄거래요 울리면 제가 먼저 총들고 헤르베르트 찾아갑니다 내자식이지만 죽일거야(살벌
정말 다시 생각해도 꿈같다... 노블바이스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