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엘레나 로시에 대해 말하자면.

1-1?. 길거리를 걷다보면 화단에는 수많은 꽃이 피어있었다. 어느 꽃은 화려하게 만개해 자신의 삶을 누리고, 어느 꽃은 불운하게도 나무그늘아래 태어나 제 삶을 다 보내지 못한채 시들시들 주저앉았다. 어느 꽃은 그늘을 피해 제 몸을 뻗어 한줌 햇살을 쥐려 안간힘을 다했다. 그리고 여기, 따스한 햇살 아래 태어났으나 저로써는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에 의해 빛을 잃고 천천히 시들어가는 꽃이 있었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이전의 온기를 쥘수는 없고, 다리가 없어 제 자리를 벗어날수조차 없으며. 생기있던 꽃잎은 점차 탁한 빛을 띄었지만 죽지는 않았다. 그저, 그렇게. 죽지도 살지도 않고, 꿈속을 배회하며 제 눈을 가리고 현실을 장막에 덮어 하나의 노래로 위장하던 이.

 

2?. 거짓말이 들통났던 때, 그녀는 생각했다. 이게 당연한 결과일거야. 나는, 죽어 마땅하겠지.

2-1?. 엘레나 로시는 죽었다. 그 날, 그 처형장에서. 당신의 앞에서. 제 죄를 시인하고 조용히 단죄를 받아들였다. 나는 죽었어, 그 고통도, 두려움도. 슬픔도 아직도 선연한데. 제 손 너머로 바닥이 비치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다시 제 목을 졸랐다가 포기했다. 제가 죽은 것은 무엇으로도 덮을 수 없는 사실이었고, 이 삶은- 아니. 이 잔향은. 겨우 제 목숨따위로 죄를 갚고 도망치려 했던 스스로를 비웃는 어느 절대자의 심판이었기에. 어딜 도망가려고, 너 혼자 편해지려고? 아니. 네가 지은 죄는 겨우 그정도로 갚을 수 있는게 아니야. 너는 죽으면 그저 끝나리라 생각했지만, 봐. 네가 죽은 이후의 삶을. 네가 택한 것이 무슨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그래서, 그녀는 지켜보기로 했다. 제 선택을, 그리고 아마노가와 타쿠오. 당신을.

 

3?. 당신은 울었고, 당신은 웃었고. 당신은 잠들었고, 당신은 깨어났고. 당신은 무너졌으며, 당신은 일어섰다. 당신은 과거를 기억해냈으며, 미래를 상상해냈다. 그녀는 그 모든 일을 지켜보고있었다. 타쿠오. 탓쨩. 정말로 장해요, 대단해요. 나는 당신이 정말로 자랑스러워요. 내 소중한 친구, 사랑스런 청중. 너무도 귀한 보석과 같은 당신. 그를 볼수록 제 마음속 한켠에는 울렁거림이 일었다. 먹먹하고, 아릿하고. 고통스러운 기분. 이상하다, 나는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데?

 

?. 나는 당신과 함께 가고싶어요. 당신의 곁에서, 당신의 미래에서. 당신을 지탱해주며 함께 행복해지고싶어요. 당신과 함께 일을 하고싶어요. 같이 강아지를 키우고, 고양이를 키우는거에요. 함께 바다에 가고싶어요. 나를 데려가주세요. 노래를 부를래요. 꿈에 잠기게 해주세요.

 

4. ..............

 

5?. 엘레나 로시는 죽었어요. 그 날, 내 전원은 꺼졌죠. 당신의 앞에서. 나는 작별인사를 하며 미래를 약속했어요. 기약없는 미래였죠, 당신도 나도 알고있었어요. 이 인사는 마지막이고, 더는 없을테고. 커튼콜을 장식한 노래는 또다시 종막에 다다라 절정을 지나. 결국 모든 노래는 끝나기 마련인거에요, 나 또한 그렇고요. 나는 끝이에요. 더는 당신과 만날 수 없어요. 우리는 이제 더이상은.

그러니까, ......내 대답은.

 

0.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

 

        감기처럼 순식간이었지만,
        나를 잊지 말아 주세요.

     -서덕준, 물망초의 비밀

 

1. 엘레나 로시에 대해 말하자면. 

1-1. 하늘을 올려다보면, 수많은 구름들이 제각기의 모양새로 흘러지나간다. 어느 구름은 솜처럼 포근하고, 어느 구름은 잘게 찢어진 종이조각마냥 흩뜨러져있고. 어느 구름은 바람결에 흩트러져 그 모양새를 잃고 찌그러졌다. 엘레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목이 아프고, 눈가가 시리고.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대도 그저 그 구름을 바라보았다. 거센 바람이 불어 제 모습을 잃어도 여전히 제 머리위에서 저를 바라보는 구름이 있었다. 여름날 무더운 태양을 가려주고, 가을날 푸르른 하늘에도 멀어지지 않고. 겨울날 매서운 바람에도 그저 그렇게 함께해주는 존재였다. 당신은 봄까지 내 곁에 있어줄까, 나를 지켜봐줄까. 이 조그마한, 지상에 뿌리내린 볼품없는 나를 기억해줄까. 죽지도 살지도 않고, 끝나지 않는 꿈을 꾸며 현실을 덮은 환상을 노래하는 이.

 

2. 나는, 당신에게 말하고 싶었어요.

2-1. 엘레나는 죽었어요. 그녀에게 더이상 미래는 없었을거에요. 그렇다면, 여기 존재하는 나는 뭐죠? 홀로그램은 누가 만든건가요? 나는 프로그래밍 된 존재인가요? 내가 느끼는 감정, 생각. 지식. 경험. 그 모든건 다른 존재에게 주어진건가요? 그렇다면, 내가 당신과 마주하며 새로이 겪는 이 모든 미래들은 대체 무엇인가요? 나는 살았나요, 죽었나요? 나는 만들어졌나요, 실존하나요? 내가 엘레나의 경험을 잇는 존재이고, 엘레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그녀의 미래였을지 모르는 이라면, 그렇다면. 그럼 홀로그램인 나는 엘레나 로시라 할 수 있겠죠?

 

3. 그렇다면 나는, 감히 당신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3-1. 나는 당신과 함께 가고싶어요. 당신의 곁에서, 당신의 미래에서. 당신을 지탱해주며 함께 행복해지고싶어요. 당신과 함께 일을 하고싶어요. 같이 강아지를 키우고, 고양이를 키우는거에요. 함께 바다에 가고싶어요. 나를 데려가주세요. 노래를 부를래요. 꿈에 잠기게 해주세요.

 

4.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5. 내가 당신을 사랑하니까, 죽지 않았을 어느 세상의 엘레나 로시도 당신을 사랑할거라고. 당신과 함께 바다로 향했을 어느 세상의 엘레나 로시도 당신을 사랑할거라고. 당신을 지탱하며, 당신과 함께 일하고. 함께 동물을 키우고. 노래를 부르는 엘레나도 당신을 사랑할거라고. 그 모든 엘레나 로시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나는 단연코 말할 수 있어요.

있잖아요, 탓쨩. 나는 종종 내 머리위로 편지가 쏟아져내리는 꿈을 꿔요. 그 편지를 받아들고 읽으면, 그 안에선 달콤한 봄 냄새가 나요. 아주 따뜻하고 다정한 향이에요. 그럼 나는 깨닫는거죠. 아, 탓쨩이 편지를 썼구나. 아직 나를 생각해주는구나. 나를 위해 시간을 내주었구나. 당신은 아직, 내 오르골을 가지고있구나. 당신은 감기에 걸렸고, 아팠고. 식물도감을 읽으며 수많은 꽃들을 알게 되었고. 그 중 나와 가장 닮은건 벚꽃이라 생각하며, 당신이 내게 꽃을 보냈다고. 이 봄 내음은, 당신이 보내준 꽃이라고. 당신이 보낸 사랑이라고. 나는. 당신에게 사랑받고있다고.

언젠가 내가 죽을만큼 노력한 끝에 단 한번의 기회를 얻게 된다면, 나는 기꺼이 마녀에게 내 목소리를 바치고 두 다리를 얻어 당신에게 걸어가고 싶어요. 걸음마다 발바닥에 유리조각이 박히는 듯한 감각이 느껴지더라도 나는 행복할거에요. 내 양 팔로 당신을 포옹하는 순간 물거품이 된다고 해도 웃을 수 있겠죠. ...아니다, 그럼 당신이 울테니까. 역시 물거품은 되지 않을래요. 영영 노래를 부를 수 없대도 좋아요, 당신을 사랑할 수 있다면. 당신의 곁에 함께할 수 있다면.

사랑받으니까 좋은게 아니에요, 당신에게 사랑을 받기 때문에 좋은거죠. 이 감정은 아주 많이 달라요. 이제는 알 수 있어요. 사랑받는건, 불안하지 않고. 속일 필요가 없으며. 이렇게나 따뜻하고 포근해지는 감정이라는걸. 모두에게 사랑받지 않아도 좋아요. 당신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세상이 떠나가라 다정한 아리아를 부를 수 있어요. 나는 행복한 사랑을 하고있다고, 모두 내 사랑을 보아달라고. 가장 사랑스런 노래를 부를 수 있어요.

탓쨩. 내 사랑하는 청중, 당신. 당신을 위해서라면 나는 끝나지 않는 노래가 되어, 영원히 당신 곁에서 당신을 기다릴거에요.

 

그러니까, 계절을 지나.

다시 만나게 된다면.

내 이름을 불러줄래요?

 

 

 


 

 

안녕하세요 리프님 제가 피곤한것과 답록을 파는것은 정말로! 결단코! 일절! 전혀!! 관계가 없는고로 저는 그러니까 제가.... 이상하다 이거 조금 데쟈뷰같은 기분이 조금 드는데요 리프님 당신 대체 어떻게 저한테 이럴수가? ? ?? ???

아니 리프님을 탓하는게 정말로 전혀 아니구요 이거는 그러니까 굳이 따지자면 제가 제 멱살잡고 짤짤흔드는 그런 느낌인데 제가 지금 정신이 멍해서 뭐가 안돌아가거든요 아니............................ 탓쨩이.................................. 아니............................ 저는........................... 정말로...........................................................

리프님,,,,,,,,,,,,, 이제 우리 계연 끝내고,,,,,,,,,,,,, 쨩쨩 진짜 연애를 시켜볼까요,,,,,,,,,,,,,,,,,,,,,,,,,,,,,,,,,,,,,,

저 쨩쨩 계연기간 끝날때마다,,,,,, 고민하고 또 고민했어요,,,, 100일 기념으로 고록을 팔까? 기간 끝내자고 하시면 네 그래요! 하고 고록을 들고올까? 근데 엘레나는,,,, 죽엇고(진짜과거의에르나가죽어) 너무,,, 제가,,, 염치가,,, 없어서,,,,,,,,,,,,,,,,,, 제가 뭘 하려니까.............. 죽겠는거에요..................... 게다가 그 사이에 시간이 지났고,,,,, 제가 계연기간동안 뭘 잘 챙겨드린것도 없고,,,,,,,,,,,, 대체,,,,,,,,,,,, 이게 뭐지,,,,,,,,,,,,,? 아,,,,,,,,,,,, 하고 그냥,,,,,,,,,, 까짓거 이렇게 된거 확 무기한 계연이라도 질러봐?^_ㅠ 하고 갔던거였거든요,,,,,,,,,,,,,,,,,,,,

저 그때 리프님이 계연 연장해주자고 하셔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요........................(자아2 : 님 이제 큰일남 ㅎㅎ)

미치겟네 거두절미하고 사심있이 귀댁의 아마노가와 타쿠오군을 저희 엘레나 로시가 사랑합니다................ 주죽고싶다 아니 지금 축하로.............그 다시 읽고왔거든요 탓쨩,,, 탓쨩,,,,,,,,,,,,,,,,,, 탓쨩,,,,,,,,,,,,,,,,,,,(드러누움) 엘레나 그냥 까짓거 유령돼서 와라 찐한 사랑 함 하자(벌떡)

너무,,,,,,, 너무 죄송합니다 제가 답록으로 이것밖에 해드릴 수 없는 사람이라 그치만.... 리프님... 언제나 이런 사람을 곁에 둬줘서 감사합니다...... 우리 애들 사랑을 해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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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피엔딩 au, 엘레나는 제 가슴까지 닿는 머리를 항상 하나로 묶고 다님.

     "머리가 길어서 불편하진 않아? 자르면 어때?" 누군가 물어보면 "그럴까요?" 하고 답하지만 정작 머리를 자르진 않음. 다들 본인은 저게 편한가보다- 하고 별로 신경 안쓰게 됨.

     어느날은 엘레나가 덫을 확인하러 나갔다옴. "오늘은 수확이 있었어요!" 라던가, "오늘은 아무것도 없네요…" 라며 들어오던게 보통이었는데, 그 날은 들어오자마자 "니니나 카케라 있어요?" 라는 물음을 먼저 던짐. 머리카락이 반은 단발이 되어 어깨 위에 닿을락말락 흔들거리고, 나머지 반은 이전처럼 풀린채로.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음.

     덫에 토끼가 걸려있었다. 적당히 잡아오려고 했는데, 생각외로 힘이 너무 강하더라. 이리저리 도망치려고하길래 잡던중에, 머리카락이 덤불에 걸려서 놓쳐버렸다. 아무리 해도 풀리질 않길래 그냥 잘라버렸다. 엘레나는 괜시리 웃으며 제 잘린 머리를 몇번이고 만지작거렸음. 이럴줄 알았으면 미리 잘라둘걸 그랬다, 그쵸? 그랬으면 토끼도 놓치지 않고 잡아왔을텐데.

    아직 긴 머리쪽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비슷한 길이로 자름. 길이는 어깨보다 조금 위에 닿을정도. 거울을 보면서 엘레나는 몇번이고 제 머리를 만지작거렸음. "왜그래?" "이렇게 짧은 머리는 너무 오랜만이라 어색해서요." 잘린 머리카락도 긴것만 모아서 끈으로 묶고, 엘레나는 그것도 꼭 쥔채로 한참 내려다봤음. "이것도 어딘가에 쓸 수 있을까요? 잘은 모르겠지만, 버리는것보다야 낫다고 생각하는데."

    만일 누군가 "머리가 잘려서 아쉬워?" 라고 묻는다면, 엘레나는 그렇다고 대답할 것 같음. 사랑스런 프리마돈나, 그녀에 대한 이미지는 항상 비슷한 종류의 것이 따라붙었으니까. 봄꽃처럼 밝고 긴 머리카락, 꿈꾸는듯한 흐린 녹색 눈. 여린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드레스형식의 레이스달린 원피스까지. 눈에 대한 사실을 밝히면서 더이상 렌즈는 끼지 않게 되었고, 이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옷또한 편한 바지와 티, 패딩등으로 갈아입은지 오래. 그러니까, 이전의 거짓말쟁이 소프라노와 엘레나에게 엮인 것은 이젠 머리카락 뿐이라고 해도 무방했음.

    엘레나는 짧아진 머리의 자신을 봤다가, 잘린 머리카락을 내려다봄. "머리카락 필요해? 아니면 ~~~에 쓸수 있을거야." 누군가 말한다면, 엘레나는 기분좋게 웃으며 고개를 저을것. "필요 없어요, 마음대로 써주세요." 더이상 무대에 오르지 않을 소프라노에게는 필요 없는 거니까. 그렇게 빠이빠이 하고나면, 엘레나도 더 다양한 바리에이션의 차림새를 하고 다닐듯..: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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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은 스스로를 연소하며 찬란한 빛을 낸다. 밤하늘, 수 많은 점들은 각각의 삶을 태우는 흔적들이었다. 간혹 어느 별은 멀리, 우주 저 끝의 이들에게도 제 빛을 보내곤 했다. 아름다운 생의 흔적을 좇아 별의 주인을 찾으면, 그는 이미 까마득한 세월 이전에 삶을 마치곤 한줌 재로 돌아간지 오래인 것이다. ■■■또한 그러했다. 외로움을 잘타고, 사랑을 갈구하던 노래는 막이 내린 후에도 청중들의 곁에 남아 여운이 되기를 소망했다.

     오래전에 재가 되었으면서, 별이 너무 열심히 빛난 모양이지. 노래는 생각했다. 조금만 덜 빛날걸 그랬다. 누가 보기에도 가짜처럼 탁한 빛을 냈다면, 남은 이들도 깨닫고는 더 마음편하게 보내줄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면 제가 가짜라는걸 몇번이고 알렸더라면. 적어도 제 소중한 이들은 지금 덜 힘들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별 수 있나, ■■■는 웃었다. 이제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는 노릇이고. 그 이전에 그때로 돌아갈 수 있더라도, 자신은 또다시 소중한 이들을 응원하고 위로하고싶어 안달날텐데. 해가 지면 밤이 찾아오고, 달이 지면 낮이 되는것처럼 당연한 일일텐데. 어떻게 그들을 내버려둘 수 있을까. 내게 박수를 보낸 청중들. 가장 소중한 찬사. 우스운 극이었음에도, 혀를 차고 욕하지 않고 커튼콜에 박수쳐준 이들. 이정도면 아주 졸작은 아니었나봐. 나도 나름 노래라고 불릴 순 있던 모양이지. 생각은 점점 느려졌다.


     ㅡㅡㅡㅡ, 당신의 봄에 먼저 가있을게요. 보랏빛 아네모네를 심어둘게요. 길을 따라오세요.
     ㅡㅡ, 당신에겐 항상 미안했어요. 더는 믿음을 줄 순 없을테지만... 적어도. 공주님은 잘 모시고 있을게. 걱정하지 말아요.
     ㅡㅡㅡ, 사랑스런 달님이 될거라고 믿어요. 앞으로는 부디 당신이 원하는대로 행복하게 살길.
     ㅡㅡㅡ, 언젠가 다시 티파티를 즐겨요. 그때엔 제가 밀크티를 끓일게요. 다과대신 당신의 이야기를 가져와줘요.
     ㅡㅡ, 보이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노래는 항상 당신 곁에 있어요. 그 사실을 의심하진 말아요.
     ㅡㅡ, 언제나 무모한짓은 하지 말고... 건강한 만큼 더 조심했으면 해요. 강한 사람도 다칠 수 있는 법이니까.
     ㅡㅡㅡ, 언젠가 다시 만나도 나랑 또 나쁜 친구 해줄래요?
     ㅡㅡ, 당신의 악몽은 오늘도 제가 가져갈게요. 부디 사랑스럽고 다정한 꿈을 꾸길.
     ㅡㅡㅡ, 다시 만났을때엔 진통제의 효과가 다 사라졌으면 좋겠네요. 울지말아요, 아프지도 말고.
     


     피곤하네요. 저는 이만 좀 잘게요. 걱정하지 말아요, 언제나 당신들의 곁에 있을테니까. 잠들어있어도 소리는 듣고있어요. 여러분의 노래들, 전부 듣고있어요. 여전히 사랑스런 공연이네요. 조금 불안하고 걱정도 되지만. 여러분이라면 분명 잘 해낼수 있을거라고 믿어요. 내 소중한 빛들이니까.




     다시 만날 날까지,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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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음파일이 재생된다. 당신에 대한 사실을 알기 이전인지, 모든 호칭은 레나로 저장되어있다.)

     레나, 내 친구. 당신이 나를 위한 인형을 만들어준다는 이야길 듣고, 정말 많이 기뻤어요. 음, 레나에게 불러주고싶은 노래는 다음 파일에 저장해둘게요. 잘 아는 노래는 아니지만, 그래도 즐겁게 들어줄래요? 여기엔 레나에게 하고싶은 말을 담았어요. 무슨 말을 해야할지… 엄청 고민했지만. 역시 레나에게 해주고싶은 말은 정해져있는것같아.

     나랑 친구하겠다고 약속해줘서 고마워요. 내가 어떤 모습이라도 괜찮다고 해줘서. 그리고 나도 레나에게 그만큼 보답해주고싶어요. 레나가 어떤 사람이더라도, 새로운 사실을 알게되어도. 레나는 내 나쁜 친구고- 좋은 친구니까. 그런 약속을 했어도 항상 무서웠어요. 혹시 레나가, 약속을 후회하고있진 않을까? 나한테 질렸으면 어쩌지? 하고. 그래도 레나는 내게 괜찮다고 해줬으니까. 언젠가 레나에 대해 더 알게 되었을때에…… 그 말을 꼭 돌려줄게요. 얼마든지 괜찮다고요. 걱정하지 말아요, 레나. 아무것도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요.

     실은, 레나가… 이 녹음을 듣게 될 즈음에. 그때에도 내가 함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 같이 듣고있다면 진짜 부끄럽겠다. 안녕, 미래의 엘레나? 잘 살고있어요?(쿡쿡 소리내 웃는 소리) ……이곳을 나갈 수 있을지도 걱정이에요. 그리고 계속 함께할수있을지도. 음- 그렇지만요, 레나.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는 역시 당신들을 떠나고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아마 내가 사라지더라도, 이번에는 진짜 유령같은걸로라도. 당신들의 곁에 있을게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닿지 않아도, 곁에 있는 그런거. 예전에 레나가 말해줬던- 인형에 혼이 깃든다는 그런것처럼요. 나를 만들어주면 그 안에 들어갈지도? ……좀 이상한 이야기인가?

     아무튼, 음. 내 친구. 나는 항상 당신의 행복을 바라고있어요. 언제나 당신의 밤이 평온하길, 낮이 빛나길. 여름 햇살같은 당신이 그늘지지 않고, 따갑지도 않고. 마냥 따스하길. 오늘도 힘내요, 레나. 당신을 아주아주 좋아하는 당신의 친구, 엘레나가 응원할게요!(말갛게 웃는 소리가 이어진다. 녹음은 거기까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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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없는 말투였지만, 당신은 분명 절규하고있었지. 당신의 고요한 비명은 스스로를 잘게 찢고있었다. 그 칼날 앞에, 저는 그저 아직도 차가운 빗방울만 주륵주륵 떨굴 뿐이었다.
    
     "알아요. 당신 약해빠진거, 여기서 모르는 사람이 어디있어요. 꽃한송이에 기뻐하고, 봄이란 단어 하나에 즐거워하고. 주기라는 얄팍한 단어에 정신건강을 감추려고해도 너무 얇아서 다 보였어."

     누가 이 사람을 강하다고 할까. 누가 이 사람을 그냥 둘 수 있을까. 이렇게나 약한 사람을, 내놓으면 한숨에도 찢겨져나갈것같은 사람을.

    "그래서 그냥 둘 수 없었던거에요. 당신이 그저 강하고 든든한 벽이 아니라, 그 뒤가 다 무너져보이고 위태로워서. 금방이라도 와르르 무너져버릴것만 같았어요. 그래서 당신을 잡겠다고 한거에요. 당신이 무너질까봐 걱정돼서. 그건 히가시나리 아키츠구, 오로지 당신을 걱정해서 한 말이었어요. 당신에게 기대는 다른 사람들, 그런걸 고려한 말이 아니었어요. 그냥 당신이 무너져버릴까봐 걱정이었다고. 힘든거 알아요, 왜 모르겠어. 가장 소중한 자랑, 기쁨. 보물이 순식간에 무너져버린거- 그거. 내가 어떻게 모르겠어요. 내... 내가, 그런것때문에 영영 멍청한 선택을 해버렸는데ㅡ"

    최대한 든든한 모습으로 당신을 위로해주고싶었는데. 차츰 목소리가 떨렸다. 제 말과 함께 흘러나오는 온갖 사념들에 저도 모르게 양손으로 제 눈을 눌렀다. 들어가, 너희들을 떠올리며 내 목을 조를 시간따윈 없어. 난 말을 해야해. 이 사람에게 말해야한다고.

    "지옥에 있어도 괜찮아요, 그럴 수 있어요. 당신이 너무너무 힘들어서, 죽어버리고싶다고. 다 외면하고싶다고 생각해도 좋아요. 그래도 정말로 죽지는 말아줘요. 제발, 제발 지옥에서도 호흡해주세요. 숨을 들이쉴때마다 연기가 밀려들어오고 열기가 괴롭혀도. 곁에서 잡아줄게요, 그러니까... 제발 영영 가라앉아버리려는 행동만은. 그것만은 참아주세요. 내가 잡아줄테니까. 당신 지옥, 그 곁에서 같이 불타다가 나가는 길을 찾아줄테니까... 내가 잡을 수 없는곳으로만은 가지 말아주세요."

     말뿐인 위로, 텅 빈 부탁. 쓸모없는 진심. 아무리 사랑스런 봄의 색깔이더라도 제가 두르면 회색에 지나지 않았다. 모조는 결국 진짜가 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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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송합니다.
     
     엘레나 로시는 몇번이고 조금 전 얻은 정보를 정리했다.
     죄송합니다. 
     2917년. 본래의 시간에서, 900년이나 지나버린 숫자. 차라리 오류인게 당연할 그 숫자에도 바로 어처구니없다는 웃음을 지으며 넘겨버리지 못한 이유는 그간의 기시감들 때문이었겠지. 깨어났을 때 유달리 춥고 무겁던 몸. 이상하리만치 발달된 기술들. 영상의 건물들. 2xxx년- 조부모의 사망년도. 모든 조각들은 기분나쁠정도로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너무도 간단히 짜맞추고도, 이 모양이 맞을까 몇번이고 의심하게 되는 퍼즐이었다.
     거짓말해서 죄송합니다.
     약속을 어겨서 죄송합니다.
     호흡이 점차 가빠졌다. 기실 저는 호흡하지 않는 존재이니 생각이 멈췄다는 표현이 적절하리라. 저는 이제는 영영 사과조차 건넬 수 없다. 제 거짓말들, 그 멍청한 치부를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고, 용서를 구할수도 없다. 그녀는 생각한다. 이게 전부 진짜라면. 이미 나를 기억하는 이들이 저 밖에 아무도 없다면. 내게 실망하거나, 나를 받아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내 비밀을 지키려 들었던 게 이미 의미없는 일이었던거라면-
     균형을 깨트려서 죄송합니다.
     시작을 끊어버려 죄송합니다.
     믿음을 저버려 죄송합니다.
     ......난 뭘 위■서 죽이고, 죽&거지?
     당신을 찔러서 죄송합니다.
     당신을 죽여서 죄송합니다.
     죽어버려서 죄송합니다.
     그 모든게 쓸모없는 일이었어서 죄송합니다.
     #책감이 그녀를 짓눌※다. 아그작, ?리부터 씹●는 소리□ 귓*¿ %#다.








*조금,,, 고장났습니다. 겉으로는 큰 변화를 보이지 않지만, 자학하거나 땅 파는 모습이 심해집니다...
*불편하시면 언제든 디엠 부탁드려요,,, 아 900년이 무슨소리냐 우리애들 너무 장수했다 나모사,,ㅠㅠ)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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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손을 내려다본다. 피가 묻었고, 반투명하고. 아무것도 쥐지 못한 멍청한 손이다. 회색의 차가운 빛이었다. 아무것도 닿지도 못하고, 온기도 지니지 못하고. 보이고 들리기만 할뿐인 존재. 설령 당신이 힘들다 말하며 운다 한들, 저는 눈물을 닦아줄수조차 없지. 허탈한 웃음이 새어나왔다.

     당신은 자신을 이해는 하나 용서는 하지 못할거라고 단언했다. 그 말은 자신에게 남아 당신을 볼적마다 현실을 상기시켰다. 저는 당신을 죄책감처럼 대했다. 싫어하지만 싫어하지 않고, 좋아하지만 좋아하지 않고. 눈앞에서 치우려다가도 떨어지지 않고 가까이 붙었다. 날선 말로 답하면서도 그 안에서 안도감을 찾고 별것아닌 농담으로 덮으려다가도 결국은 현실을 마주해 움츠러들었다. 당신의 앞에서는 저는 여전히 그날밤의 엘레나였다. 제가 저질러버린 죄에 파묻힌 채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전부 끌어안고 도피했다가 그마저도 다시 현실에 끌려나와 차라리 죽게 해달라고 속삭이던 멍청한 노래.

    아니, 정말로 그런가? 생각은 이어졌다. 지하 4층, 당신은 제게 말했었다. 다른 이들이 정신을 차릴 수 있게 잘 살펴보라고. 지하 3층, 당신은 제게 말했었다. 제정신을 차리고 오지 않으면 상대해주지 않겠다고. 그래서 저는 그대로 따랐다. 의무실로 오세요. 따랐다. 선생님은 나 싫다는 사람 안좋아하는데. 정말로 싫습니까? 그러길래 왜 선생님의 사람이 되었어요. 물음에는 답하지 못했다. 내가 알아요? 답은 퉁명스러웠다. 실은 저도 당혹스러워, 한참을 망설였다. 왜 나같은게 선생님의 사람이에요? 당신은 나 아니더라도 짊어질 사람이 많잖아. 그렇게 한가해요? 나같은 사람에게까지 손을 뻗을 정도로? 묻고싶었지만 대답이 두려웠다.

    두려웠다. 뭐가? 당신이 저를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사람에게 미움받는건 두렵다. 언제나 두려웠다. 애정이 줄어드는것만큼이나, 미움이 늘어나는건 무서웠다. 나는 당신이 싫어요. 그런 말은 해본적 없었다. 미움받는건 무서워. 그러니까, 기분 상하게하지 말자. 좋은 말만 하자. 여전히 남은 엘레나는 제 발목을 붙잡고 속삭였다. 너같은걸 받아준건 이 사람들 뿐일거야. 그러니 밉보이면 안되지. 안그래? 선생님한테 말하자. 괜찮다니 다행이에요. 괜히 불안을 키우게 해서 미안해요. 선생님이 멀쩡하실거라고 믿고, 둘게요-


    다시 내려다본 손은 바닥이 그대로 비쳐보였다.


    고개를 들어 당신을 응시했다.


    "네. 힘드니까 도와달라고 하세요. 선생님한테만 기대게하지 말고, 나한테도 기대요. 선생님 벽 안으로 날 넣어줬잖아. 선생님의 사람이라면서요. 그럼 들여보내줘요. 힘들다고 하고, 이런 일들 다 이제는 싫다고. 푸념도 하고 짜증도 내고. 눈물은 닦아주지 못하겠지만. 가짜 봄이 여기 있으니까, 마음껏 이용해먹어요. 봄이 올때까지 따뜻한 척 해볼게요. 바람불고 추우면 날 방패로 삼아요. 그게 싫다면 날 밀어내요. 밀어내질 생각도 없지만. 선생님 곁에 봄이 되다만 겨울이 있으니까, 쓰고싶으면 마음껏 써요. 선생님 덕분에 그나마 되다말기라도 한거에요. 그러겠다고 할때까지 계속. 신경쓸거에요."


    추위에 떠는 가여운 여우를 위해서 맞지도 않는 분홍 숄쯤 덮고 봄인 척 해보겠다고. 회색 겨울 부스러기는 웃었다. 이 흰 조각이 눈송이일지 꽃잎일지는 손으로 안아봐야 아는거 아니겠냐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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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ㅡ후회할 일은 남기지 말아요. 아픔은 살아있을때만 느낄 수 있는거니까.



     "이젠 아프지 않아요, 데네브?"

     물음을 건넸다. 당신은 답하지 않았다. 축 늘어진 채 매달려있던 당신은 꽤 평온한 얼굴이었던것도 같다. 아니, 누구보다 고통스러웠던 얼굴이었던것도 같다. 진실은 아프지만 마주해야만 한다고, 언젠가 들은 적 있었지만. 하지만 당신에겐 너무도 괴로웠나보다. 차라리 손목을 긋고 죽는게 나을정도로, 그게 더 나은 길이라고 생각했을정도로. 당신을 태우던 빛이 너무 강렬했나봐요.
    
     별이 떨어지는건 처음 봤어요. 별이 떨어지는 소리도 처음 들었어요. 나는 당신이 괜찮을줄만 알았어요. 우리가 대화하던 그 때, 당신은 정말  평온하게 웃고있었죠. 별빛이 유달리 밝고 강하기에, 아. 어쩌면 기억을 되찾더라도 괜찮지 않을까. 그 빛이 무얼 태우며 나는 거였는지를 깨달았어야 했는데.

     당신은 달이라고 생각했는데. 달은 스스로를 태우지 않고, 그저 주위의 빛을 반사해 고요하게 그 자리를 지키죠. 별도, 달도. 밤하늘 한자락도 허용되지 않는 이 곳에서 당신은 우리의 밤이었어요. 유하고 다정한 사람. 황소자리에요, 무드등을 짚어주던 손. 창문이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그저 괜찮을거라고.

     "괜찮을거라고 생각해서 미안해요."

     그 별이 떨어지고있는줄 어느 누가 알았을까. 그 빛이, 수백수천년전 이미 연소해버린 별의 비명이었다는걸 누가 들었을까. 별똥별을 보고 소원을 빌었어요, 추락하는 별을 보며. 당신이 그저 이 모든걸 언젠가 받아들이고, 다시 웃을 수 있게 된다면. 어제의 당신을 보며 그런 소원을 비는게 아니었는데.


     별이라면 백년은 더 살아야죠. 이곳에서 돌아가서, 동생에게 물어보기로. 우리 약속했잖아요. 탓하는 소리를 내봐도 모두가 떠난 복도는 고요했다. 어둠으로 가득 찬 밤하늘아래서 저혼자 방황했다. 두드려도 소리내지 않는 구름을 걷어내지 못해 비가 내렸다. 비도 구름을 쓸어내지 못했다. 더는 유성우를 보고 소원을 빌지 않기로 했다. 그저, 별의 추락을 애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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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레나는 종종, 이 모든것이 실은 한 겨울밤의 꿈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현실도피, 비단 그러한 종류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기나긴 밤, 그리고 낮. 시간이 흐르지만 하늘조차 볼 수 없는 곳에 멍하니 앉아, 오가는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도 피곤하지도 졸립지도 않은 제자신. 때려도 아픔이 없고, 다른 존재들과 닿지도 못하고. 먹지도, 잠들지도 않는 것은 삶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자신은 죽은 존재일진대. 아니, 이미 죽었잖아. 그날, 그 밤. 만장일치. 자신마저 제 이름을 속삭였다. 나, 엘레나 로시. 내가 검정이에요. 처형당하던 순간에는 스스로에 대한 애증과 두려움, 일말의 안도감. 그러한 것들에 휩싸인채 영영 어둠속에 떨어졌었다. 그랬을거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더이상 볼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영영 만날 수 없겠지만, 그래서 너무나도 죄스럽고. 부디 너는 살았으면.
       너.
       너만은.
       제가 방금 본것이 현실이 맞는가? 엘레나는 그저 느릿하게, 아주 느릿하게. 눈을 꿈뻑였다. 종종, 이유도 없이 시야가 흐릿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스트레스, 오류. 트라우마. 혹은 다른 무엇일지도 모르지. 그때마다 아, 눈을 깜빡여야지 하고 의식적으로 하던 행동이었다. 실은 필요도 없지. 눈이 마를 일도 없는걸. 그런게 의미있는 이야기일까. 의미없었지만, 그래도. 그래도 나는 나가서 살거니까. 사람사이에 섞여서 살거니까.
        살아?
        죽은 사람이?
        제 방이 이렇게나 넓어보인 일은 오랜만이었다. 그날밤, 이 방 구석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있던 자신이 그러했다. 눈뜬 어둠속에 둘러쌓인채 몇번이고 제 죄와 마주하고있었다. 돌이킬수 없는 잘못을 끌어안은채로 아래로, 아래로. 비참하게 가라앉고있었다.
        ........그냥 눈을 감자.
        항상 잘 했잖아, 그런거.
        이런게 현실일 리 없잖아, 그렇지? 무릎을 끌어안고 속삭였다. 약속했잖아요. 우린 나가서. 나가서, 다시. 나. 내 가족도 생겼고. 친구도 생겼으니까. 바다에 가자고. 그렇지? 다같이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기로 했잖아. 그러니까 괜찮아. 괜찮을거야.



         조각난 파편이 발아래 깔렸다. 걸음마다 꽃이 피었다. 꽃밭이 한가득이었다. 봄일거야. 제 품 한가득 안긴 빛을 삼켰다.

         남은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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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레나도 알고있잖아요, 저는 제 몸을. 여기에 있는 그 누구보다 가장 아낀다고요!"




       당신은 웃는다. 저도 웃었다. 그럼. 정말로 잘 알고있었다. 제 눈앞의 이는, 이곳의 그 누구보다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고. 이런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정말로 노력했으니까. 당신은 현실적이고, 약삭빠르고. 어쩌면 이곳의 모든 이들중에 제일 살고싶은 욕심이 강하리라고도 생각했다.

       세계 정복, 누구보다 위에 있는 권력자. 그런 이야기는 하나도 우습지 않았다. 욕망을 가진 사람일수록 삶에 집착하니까. 그러니까, 그런 의미에서는 저는 되려 당신의 소원을 듣고 안심했었다.

       "응, 타쿠오를 항상 봐왔는걸요. 알아요, 타쿠오가 얼마나 살고싶어하는지. 그러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그래서, 그러니까 더 걱정이 되는거에요. 중얼거리는 소리는 꽤 작았다. 마치 이야기를 한게 아니라, 속의 걱정이 흘러나와 뭉쳐 소리의 형태가 된것처럼. 유난스럽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말과 생각. 그런 것이었으므로.

        이곳의 사람은 누구라도 죽을 수 있었다. 강하고 약하고, 그런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모두를 경계하며 틀어박히거나, 모두를 믿고 함께하거나. 어느쪽이든 리스크가 있었다. 이곳에서 가장 안전한 방에 틀어박혀있거나, 되려 모두와 함께 해 목격자를 확보하거나. 고립되어 조용히 죽거나, 믿고있던 이에게 죽거나. 자신은 더이상 누군가가 죽지 않을거라고 온전히 믿기를 포기했다.

        걱정은 그 뿐이 아니었다. 간밤의 샤메쿤이 눈앞에 흔들고 간 것. 달콤해보이는 당근. 우리는 분명 독이 들어있는걸 알지만, 그럼에도 혹시나 하게 되는것이었다. 각 분야의 최고들인 더 퍼스트. 그들을 가둬놓고도 몇주째 아무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 샤메쿤. 그러면 정말로, 가능한 것은 뭐든 들어주지 않을까? 욕심은 삶의 원동력이지만, 동시에 눈을 가리는 것이니까. 당신의 소망이 강한만큼 저는 더 걱정하게 된다.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것은 무리더라도, 만약 누구보다 위에 서고싶다는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할래요? -그 질문은 떠올리는것만으로도 당신을 의심하는게 되어버리니까. 자신이 당신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언제나처럼의 진심, 그 한 귀퉁이를 깎고 잘라 만든 말이었다.

       "타쿠오는 정말로 현명하니까. 지금까지 봐온 모습을 믿을게요. 후회할 일을 하지 않을거라고."

      제가 하는 말은 차라리 신에게 바치는 기도에 가까웠다. 눈앞의 이가 후회에 잠기지 않기를. 힘든것은 하나도 모르고 그저 무사히 살아남기를. 금방이라도 시들어 사라질것만같은 기도를 엮어 만든 반지를 당신의 손에 걸어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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