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지역 외 지역에서의 PK로 인해 캐릭터가 사망하였습니다. 한시간동안 접속이 불가능하며...





     "아이고-, 피곤하다..."

     헤드기어를 벗어던진 이는 양 손으로 제 눈가를 꾹 눌렀다. 앞서나가 맞고, 방어하며 반격하는 방패와 같은 일을 하기위해 부러 통각센서를 낮춰두었지만. 그 낮춘 것으로도 죽는다는 감각은 어쩔 수 없는 두통과 고통을 동반했다. 잠시 속이 울렁거려 두 동생들 몰래 화장실 가는 척을 하며 물을 틀고 속을 게웠다. 언제나처럼 투명한 위액만이 좀 나오다 말 뿐이었다.

     다들 감정적이네,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도 피곤함은 가시질 않았다. 이상하다, 게임인데. 저도 모르게 허리춤을 만지작거렸다. 그 자리에는 향낭이 하나 있었다. 붉은 빛깔에, 고운 정자 글씨가 새겨진. 그 안에는 곱게 말라 거의 향이 사라진 유채꽃과, 햇살과, 따스함과. 그리고 고운 보물들. 모아둔게 참 많았지, 생각하며 가만가만 손가락을 꼽았다.

     처음, 고양이 모양 도끼. 둘째, 제 이름이 적힌 명패. 셋째, 쥐 모양으로 조각된 자그마한 나무조각. 넷째, 부적으로 삼은 단단한 붉은 비늘. 다섯째, 붉고 고운 향낭. 여섯째, 언젠가 찾아올 행복을 담은 화관. 일곱째, 수많은 인형들. 여덟째, 친우와 주고받은 일기. 아홉째, 수많은 사람들. 열째, 종이 한 장.

     ......아. 그렇지, 종이. 그것만은 여기에서 볼 수 있었지,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향했다. 첫날부터 곱게 적어 모아둔 기록이 빼곡했다.





    ★즐거운 비무 기록! 

(12/28) 리온, 설원사형
(12/29) 단, 완샤, 도협, 소소
(12/31) 류호
(1/1) 도협, 진세화, 버들
(1/2) 은요사매, 나찰천
(1/4) 완샤, 완샤, 천랑, 천랑
(1/5) 사매, 사매, 호월문
(1/6) 리온, 세화, 흑미, 연화
(1/7) 도협, 류호, 유담, 유담, 연
(1/8) 사형, 사형, 흑미, 이안
(1/9) 도협, 세화, 세화, 연, 태평, 소하, 소하
(1/10) 연화, 연화, 연화, 태평





      1월 10일, 펜을 들어 가만히 완샤. 한 이름을 덧붙여 적는다. 완샤와는 벌써 비무만 네번이었네. 툭툭 수를 세곤 생각하다, 웃다가. 입꼬리를 내렸다가. 결국은 적힌 이름을 가벼이 툭툭 두드릴 뿐이었다.

     이 자가 몸을 사릴 필요가 무엇이 있고, 귀 공이 그리 표정할 것은 또 무언가? 제가 나가지 아니하였거든 이루어지도 아니하였을 비무인데. 그저 이쪽은 가벼이 계산하였을 뿐이었다. 완샤와 하는 비무라면 나쁘지 아니할테고. 죽더라도 만족스러운 싸움이 될 것이라고. 목숨 걸어도, 좋지 않던가. 그렇게 생각했는데.

     "......재미없었어."

     조막만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이름을 두드리며 웃었다. 그 순간만큼은 저는 회색의 소서가 아닌 흰 생쥐였다. 언제나처럼, 큰 도끼를 짊어진 채 즐겁게 웃는 무림인. 항상 즐거웠었는데, 비무. 종이를 쓸어내리는 손길은 꽤 가벼웠다.

     "이제는 더는 즐거운 비무를 할 수 없을터이지. 다시는, 다시는. ......만남도 이별도 언제나 갑작스럽고. 갑작스러워- 내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데. 쌓인 것이 많으니 빠져나가는 것도 많구나. 신기한 일일세."

     할 말이 있던가. 더 있던가? 글쎄. 흰 생쥐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더는 필요없는 이야기였다. 고요히, 은은한 유채꽃밭 사이에 잠겨 휴식이나 좀 취하고 싶을 뿐이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쉬었다 가자. 어느새 봄은 가고, 찬란하던 여름도 지나. 서늘한 가을을 조각내는 비정한 겨울이 왔으니. 겨울잠 자는 생쥐마냥 고요히 몸을 만 채 쉬었다가. 다시 또 이 날선 추위에 맞서 움직여야 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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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왜 소서가 쥐야? 소서가 좋아하는 동물인가?


     아이는 새빨간 눈을 꿈뻑였다. 제 지금의 모습이 아이라서였을까? 당하의 물음은 이전에도 자주 들었던 것이었지만, 평소의 것과는 다른 기분을 속에서 끌어냈다. 바로 답하지 않고 가만히 제 흰 머리칼을 잡아당겨 괜시리 그 색만을 바라본 것은 그 이유에서였다. 언젠가, 쥐새끼들이라 불리던 그 곳의 작고 작던 아이가 보았던 머리칼은 이리 희고 깨끗한 빛이 아닌 탁한 회색빛이었고. 그때의 저는 그저 그 호칭을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어느 이가 쥐새끼라 부르며 지나갔다. 어린 아이들은 쥐가 뭔지도 몰랐다. 다만, 상대가 모욕과 경멸을 한껏 담았음만을 간신히 짐작했다. 쥐가 뭐야? 작고, 소란스럽고. 더러운 곳에 우글우글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것들이래. 쥐가 어떻게 생긴건데? 다함께 모여 검색해보니 조막만하고 둥그런 생명체가 나왔다. 하얗고, 깨끗한 것. 혹은 탁한 회색에 더러운 것. 아이는 가만히 제 머리칼을 잡아당겼고, 탁한 회색. 신경쓰지 않았지만.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지만.


     ...정말로?


     상처받지 않는 존재라는 건 없었다. 아무리 강인한 이라도 타격을 받지 않을 수는 없었고, 당연히 아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이는 쥐에 대한 것을 찾고 또 찾았다. 그랬더니, 천년도 넘는 과거의 이야기에서. 열 두 동물의 으뜸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더라. 날쌘 토끼, 독을 지닌 뱀. 거대한 호랑이. 빠른 말. 강한 소. 전설에서나 존재했다는 용을 제치고 승리한 것은 쥐였다. 어느날부터인가 아이는 스스로를 쥐라 칭하고 다녔다. 작은 생쥐, 생쥐. 쥐새끼. 비웃는 이들에게 아이는 되려 물었다. 쥐가 왜? 사람도 이기지 못한 수많은 동물들을 이긴게 쥐야. 더러운게 아니라, 그 환경 속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아 생을 이어가는게 쥐고. 그 말을 이해못할 사람들은 어짜피 그것밖에 안되는 사람들이었던거지. 제가 상처받을 일이 아니었다.

     제 이름을 걸고, 쥐를 자처하고. 새하얀 머리칼에 붉은 눈. 생원, 서생원. 생의 으뜸. 소서. 작은 쥐. 누군가는 웃지만, 누군가는 언젠가는 깨달을테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누구도 비웃지 못할거라고.


     ......아. 사념이 길었다. 아이는 머리칼을 쥐고있던 손을 놓았다. 제 앞의 이는 그저 대답을 기다리고있었다. 다정하고 당당한 이, 저처럼 흰 빛에 붉은 눈을 한. 손을 뻗어 눈처럼 맑은 은회색빛 머리를 슥슥 쓸어주었다. 그러니까, 무얼 물었더라. 왜 쥐냐고 물었지. 왜 자신이 쥐인가, 언제나 그 답은 같았고. 저는 그 답을 내놓는데엔 한치의 망설임이 없었다.

     
     "쥐란 가장 뛰어나고, 영리하고. 어느 존재보다 으뜸이 될 존재니까. 그러니 소서는 쥐일세, 소서도 언젠가 분명 그리 될테니까. 아주 깊은 소망을 담은게야, 그래서 좋아하고. 소서가 쥐란 이야길 되풀이할적마다 다짐이 서니까. 별 이유는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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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는 참으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였으이, 해서 붓을 놀릴 틈도 없이 쉬고자 엎어져버렸구만. 이 자의 일기가 늦어서 미안하이, 해서 오늘은 어제와 오늘의 일을 쓸 까 하네.

     나찰천과의 비무는 참으로 짜릿하였지. 그리 무시무시한 권격을 상대하는 일은 참으로 등골이 오싹해지는 듯 하였어. 머지않아 또 비무를 청할 생각이네. 이번에는 좀 더 같은 조건, 같은 위치로 올라서. 그 새 이 자도 그만큼 성장한것일테지, 하여 패하더라도 그 도전 자체가 기쁠터이고. 소소도 나찰천과 비무를 해보지 아니하였는가? 언뜻 나찰천을 부르는 것을 본 듯도 한데. 결과가 어찌 되었는지 참으로 궁금하네.

     모른 척 할 리 있겠는가, 이 자와 소소는 친우인것을. 보니 누군가가 함께 하거든 소소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였는데, 어찌 생각하는가? 어느 곳이건 홀로 다니는 일은 스스로의 성장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모함을 겨루는 일임에도 틀림 없으니 말일세. 난신을 상대하다 해를 입었던 이들도 있고. 하니 항상 조심하여야 할게야. 소소는 아픈 것도, 싸움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듯 하니 말일세. 이 곳의 죽음이 현실과는 다른 것이고, 아픔 또한 같지 아니하다 하여도 어쨌거나 아픈 것은 아픈 것이 아니던가.
     할만 한 일인가? 허어, 나쁘지 않구만. 아니, 외려 꽤 좋은 듯도 하네. 이리 무림에서 생활을 하며 일을 병행하는 것도 꽤나 피곤한 일이었는데, 그리 된다면 무림에서 조금 더 일하거든 도움이 될 수 있을테고. 이따 자기 전에 한번 보아야겠구만.

     주홍빛 꽃도 있고, 자색이나 분홍빛도 있었네. 알록달록한 꽃들을 잔뜩 모아 한명한명 손발을 물들여주는게야. 다 함께 앉아 손에 물을 들인답시고 양 손을 꽁꽁 싸맨채로 줄지어 앉아있는 모습을 상상해보게, 참으로 귀엽고 우습지 아니한가? 꼭 그리 하여주고싶구만.
     이 곳의 모든 것은 꿈같다고, 언제나 생각하네. 처음에는 부질없다 생각하여 즐거운 꿈이라 여겼고, 지금은 어찌 이런 것을 얻었을까 참으로 기쁘어 꿈같다 생각하이. 같은 꿈이라 생각하여도 둘은 분명 다른게지. 그리고 이 자는 지금 이리 생각하는 것이 아주 좋네. 어찌 되었건, 소소와 다른 모든 이들은 꿈 속의 인물이 아닌 존재하는 이들이 아니던가.

     소소가 좋아하는 것을 더 알았구만. 사랑하고, 귀여워하고, 끌어안고, 뽀뽀하는 것 말일세. 매일 만날적마다 하여줄까. 이 자 또한, 그리 다독여주는 것이 좋네. 쓰다듬어주거나 포옹해줄 적마다 소소가 웃는 것이 보기 좋다 생각하고, 소소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 또한 참으로 좋아. 어린 애라기 보다는, 분명 소중히 여기는 것일테지. 그리 생각하면 더 기쁘지 않은가.

     언제고 일기는 소중히 보관하고 있네. 이 자가 좋아하는 노래는 별 다른 것이 없고...... 그저 자장가들 뿐이라. 보고 웃으면 어쩌나 싶지만 해도 가장 좋아하는 것이니 아래에 적겠네.

     소소의 오늘이 부디 언제나의 매일처럼 소소에게 다정하기를.





     자장자장 우리아가 자장자장 잘도 잔다
     금자동아 은자동아 우리 아기 잘도 잔다
     
     금을 주면 너를 사며 은을 주면 너를 사랴
     금도 싫고 은도 싫네 우리 아기 재워 주소

     우리 아기 예쁜 아기 우리 아기 착한 아기
     자장자장 잘자거라 소록소록 잘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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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뚝 서있는 이는 저였다.  도끼를 막아내다 그 충격을 다 흡수하지 못한 제 사매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고. 튀는 피, 퍼지는 붉은 빛깔. 그 모든 것은 시간을 되감듯 천천히, 그리고 빠르게. 몇 마디의 생각이 스치기도 전에 금세 이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아와있었다.
     
     아니, 돌아와있지는 아니하였다. 주고받은 말, 손에 남은 감촉, 비무중의 떨림. 수많은 감정들이 휘몰아치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네 답지 않구나, 생쥐야. 정말로 네 답지 않아. 온통 드는 착잡한 감정에 비무 후의 의례인 포권지례도 취하지 아니하고, 그저 도끼를 든 채로 맹꽁이마냥 눈만 꿈뻑이며 생각을 반복했다. 이 자가- 무언가를 실수하였나? 모르겠구만, 비무 도중에 정말 아무 말을 다 하였던 듯 한데. 꿈뻑이는 시선 너머로 누운 이가 있었다. 그렇지, 일단은 인사를 하여야. 어설픈 웃음을 지으려다 생각이 멎었다. 무언가를 더 깊이 생각하기에는, 그 쥐는 어리석었고. 단순하였으며 지쳐있었으므로.

     "사매."

     하여서 그 쥐는, 언제나처럼 종종 작은 걸음으로 제 사매의 곁에 가 쭈그리고 앉았다. 누운 이를 내려다보다, 상대가 무어라 말을 꺼내기전에 제 초라한 손들로 상대의 눈을 폭 가리고는. 언제나처럼 히죽히죽 웃는 소리를 내었다.

     "무어라 말 말고 들어보시게, 사매. 이 자는 그저 다른것은 잘 모르겠으이. 이 자는 욕심을 내겠다 하였어, 그건 이 자가 사매를 생각하는 방식을 달리 한다는 것이지- 사매에게 이 자를 달리 생각해달라 한 의미는 아니었던게고. 물론 사매가 이 자를 어찌 생각하여도 상관없단 이야긴 아닐세. 이 자는 아주 욕심많은 이라. 하날 얻으면 둘을 얻고싶어지는게지.
     이 자는, 사매. 이 자의 가족을 이리 만들었네. 가족이 대체 무엇인가? 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이들이 가족이 아닌가? 태어날적부터 사랑받지 못한 이들, 그 이들이 모여 이 자의 가족이 되어주었네. 그네들은 마땅히 사랑받을 이들이나, 그저 그 사랑을 해줄 대상을 늦게 찾은게지. 아니그러한가? 적어도 이 자는 그리 생각해.
     내 사매의 말은 이해하였네. 허니 별다른 말은 더 하지는 아니하겠어. 다만 사매, 이 자는 이제 좀 더 다가가볼까 생각하이. 이 선택이 득일지 실일지는 모르겠으나, 우선 하는 만큼은 해보려 해. 내 앞에 보이는 것은 이리 든든하고 강인한 사매이니, 더 다가가 그 모습이 참인지 보려 하네. 싫다면 언제고 밀어내시게. 내 비록 단단한 바위이나, 사매가 밀어내는 것을 거절할 일 있겠는가. 해도 마음을 주는 일은 관두지 않을게야. 이 자가 바라는 것은 그저 이 자 욕심대로 행동하고싶은 것 뿐이니."

     그러니, 저가 마음을 주는 일은 당신과는 별개의 일일테고. 저는 이보다 더 귀찮게 할거라고. 속살거리는 소리는 퍽 짖궂었다. 말을 마치고 나서야 눈을 가린 손을 치웠다. 평소처럼 당신과 시선을 마주하고. 평소처럼 웃었다. 그 새빨간 눈에는 단 한 점 거짓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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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적 다음은 해적인가? 아니지, 하적이라 하여야하나.  제 앞의 푸른 옷에 푸른 두건을 한 이는 품에 낀 주머니에서 뚝뚝, 돈을 한푼 두푼 떨구고 있었다. 저한테 칼을 겨눈 자세는 좋게 보아도 이류 고수로도 보기 힘들었으나, 실제로 그 검이 휘둘리는 소리는 전혀 달랐다. 초보자가 휘두르는 고수의 검이라, 심지어 그 초보자는 악인이고. 이보다 무시무시한 조합이 있을까. 한 합 한 합, 도끼날로 빗겨낼때마다 야옹이가 딸랑딸랑, 아프다 비명을 내질렀다.
     참아, 네 죽거든 이 주인도 죽는단다. 아무런 생각을 하며 때를 기다렸다. 이내 수로채는 저보다 상대가 무공은 더 배운 듯 해도 약한 이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검을 크게 휘둘렀다.

     네 지닌 것은 단도이지, 장검이 아니거늘. 빈틈을 놓치지 않고 도끼가 크게 호를 그렸다. 억, 단말마의 비명이 터진 후에 쓰러진 이는 당연하게도 상대였다. 두울. 읊조리며 깃발을 줍는 이의 손도 너덜너덜, 낡았다. 그마저도 금창약이 지나가자 본래의 투박하고 자그마한 손으로 돌아왔다. 피곤하구만, 쉬어야지- 느릿느릿, 품에서 산딸기를 꺼내 우물거리는 모습은 평소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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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으로 아름다운 꽃이야, 그렇지?

     제 곁에 앉힌 나무쥐가 신이 나 꽃향을 맡았다. 기실은 꽃이 나무쥐의 향을 맡고있는걸게지. 느긋한 기색으로 백옥만큼 흰 꽃 하나를 따 쥐의 머리에 얹었다. 해바라기 씨앗을 우물거리던 쥐는 또다시 꽃향에 둘러싸였다.

     절경이로고. 실은 그보다 더 나은 찬사가 있을 터이지만, 학식이 짧은 저로서는 생각나는 것이 달리 없었다. 절경이로고, 이 모든 것이. 난신하나 보이지 않는 서늘한 산맥은 그저 아득한 따스함을 자랑했다. 동생들이 본다면 참으로 좋아할터인데. 밤톨이는 온 사방을 데굴데굴 굴러다닐테고, 매미는 신이 나 맴맴 노래를 부를테지.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절로 웃음꽃이 피어 몇번이고 실없는 웃음소리를 흘렸다. 몸도, 정신도 온통 다른 꽃밭에 가있었지만 손만은 부지런히 움직여 세개째이자 첫째의 화관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 것이 왜 세개째이자 첫 째이냐 하면, 그 쥐는 어마어마하게 미적 재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첫번째 화관. 꽃을 엮어 만들면 되겠지, 그 단순한 생각으로 아무 꽃을 마구 따다가 줄처럼 꼬아보았다. 결론은 비틀어진 줄기들이 사방으로 흩뜨러지고. 그 가여운 꽃의 잔해는 지금 나무쥐의 둥지로 쓰이고있었다. 두번째 화관, 꽃이란 것은 생각보다 연약하구만. 이제껏 보아온 꽃은 죄다 뜯어 입에 넣어보기만 한 사람이 알 리 없었던 깨달음이었다. 새로운 지식을 얻은 이는 이 전보다 조심조심 꽃을 엮어 화관을 완성했다. 그러니까, 자기 손바닥보다 좀 더 큰 정도로. ...아니, 이정도 크기가 아닐터인데? 꽃이 아주 많이 필요하구나. 이번에는 성공하세. 목소리는 여전히 느긋하고도 경쾌했다. 흥얼흥얼, 꼭 노래를 부르는 듯도 했다.

     꽃 한송이 피지 않은 매끈한 줄기 몇개를 둥글게 엮어 태를 잡았다. 어린 애의 머리통에 씌울 크기정도가 되자, 둥그렇고 작은 흰 꽃들-토끼풀이라 이름붙여진 것이었으나, 역시나 학식 짧은 쥐로서는 떠올리지 못한 이름이었다-을 한톨한톨 관에 묶어 한껏 모양새를 냈다. 세번째 만드는 것 치곤 잘 하는게지. 자화자찬은 끊이지 않았다. 예쁘기도 하지, 어여쁘기도 하지. 중얼거리는 목소리에는 누군가의 다정한 음색이 섞였다. 예쁘다. 참 예쁜 아이야, □□. 너희는 사랑받아 마땅하단다. 그 목소리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핑 돌 정도로 따스하여서.

     새하얀 구름을 만들고는 제 눈가를 슥슥 닦았다. 주책이지, 이젠 다시 못볼 사이도 아닌데. 새하얀 화관은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수수하고 부족한 기운이 들었다. 내 이 것에는, 뛰어난 해결책을 알고있지. 품에서 노오란 햇볕을 한아름 꺼내들었다. 흰 구름 새로 햇볕을 엮어내자 가품이라도 그럴싸한 하늘이 되었다. 그 모양새가 꽤나 마음에 들어 몇번이고 모습을 살폈다. 우리 유채에게도 같은 것을 만들어다줄까. 조막만한 아이 머리통 크기를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작은 유채, 그리고 동생들. 구해낸 아이들을 머릿속으로나마 상상하며 한올한올 따스한 것들을 엮어냈다.

     한 송이, 네들은 행복해질게야. 한 송이, 네 들은 울지 않을게란다. 한 송이, 네 들은 혼자가 되지 않을게야. 한 송이, 사랑받는 아이들. 그리고 한 송이.

     유채향이 아득했다. 그저, 만발한 들판이었다.  겨울 속 만발한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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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구구, 낡은 신음을 내며 본성 구석에 아무렇게나 드러누웠다. 거지꼴을 한 채 본성 구석에 당당히 자리잡고있는 무뢰배를 보는 이들의 시선은 꽤 곱지는 않았다. 누군가는 본체만체 신경도 쓰지 아니하고 걸음을 옮기고, 누군가는 정파의 무림인이 체신머리 없다며 혀를 끌끌 차고 지나갔다. 또 누군가는, 제가 덮은 붉은 빛깔에 금실로 正자가 새겨진 담요를 보곤 어디서 얻었냐며 물음을 건네고 가기도 했다. 내쫓지 않는게 어딘가, 되려 이정도로 말이나 시선만 던지고 지나칠 정도면 참으로 배려심 넘치는게지. 잠시 눈을 감고 잠들듯 고요해졌다.


.
.
.


     -□□언니, 언니!

     멀리서 들리는 카랑카랑하고 고운 목소리에 그녀는 눈을 떴다. ...매미야? 중얼거림에 또 빼액, 매미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더 가까이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또 버릇처럼 불러버렸더니. 난리 치겠구만. 느긋한 표정으로 헤드기어를 벗자 눈앞의 조막만한 여자아이가 잔뜩 뿔이 나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매미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언니는 책도 안봤어? 매미는 완전 징그럽고, 벌레에다가 시끄럽다고 했단말야! 앞으론 선이라고 불러준다며!"
     "아이고, 그래, 언니가 미안해. 응? 우리 귀여운 선이를 누가 매미라고 불렀을까. 종이접기 해줄게, 화 풀자."
     "다음에는 절대로절대로 용서 안할거야, 그리고 난 토끼 접어줘! 학도! 기린도!"

     저번에도 다음에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단 말을 들은듯 한데. 그 다음이란 것이 참으로 길구만. 생각하며 쿡쿡 웃다 문득, 아직도 남은 롤플레잉 말투에 고개를 휘휘 저었다. 익숙해지기도 어려웠지만, 익숙해지고나니 오히려 떼어놓기가 더 어려웠다. 이러다 아르바이트중에 말투가 나오면 좀 웃길텐데.

     "-니, 언니. 무슨 생각해?"
     
     제 손을 잡아당기는 기분에 내려다보니, 아이는 눈을 꿈뻑이고있었다. 아, 미안. 짧은 사과에도 어쩐지 아이는 뚱한 표정을 짓다가 툭, 말을 뱉었다.

     "또 그 게임 생각해? 사... 사... 사전... 신? 그거."
     "사신전기-."
     "그래, 사신정기! 언니 맨날 그것만 해! 아르바이트 갔다오면 그거 하거나, 아니면 책보거나. 옛날에는 맨날 나랑 놀아줬는데. 율이오빠도 학교간다고 맨날 바쁘고. 옛날에는 양이랑 유랑, 다들 맨날 놀아줬는데..."

     어느새 시무룩한 표정이 된 아이가 중얼거리는 소리에, 끙 소리를 내며 아이를 안아들었다. 언니오빠들 이야기해서 화났어...? 하고 눈치를 살피는 아이의 이마에 쪽, 뽀뽀해주고는 기분좋게 미소지어보였다. 많이 외로웠구나, 내 동생. 외로웠지. 언니가 항상 미안해. 제 목에 박힌 응어리 대신 입밖으로 낸 것은 언제나와 같이 장난으로 포장한 말 뿐이었다.

     "정기가 아니라 전기. 우리 선이, 벌써 초등학교도 다니는데 자꾸 햇갈리면 어쩌지? 경찰 되려면 그런 시험도 본대. 사신전기 라고 말해보세요~ 했는데 사신정기, 라고 해서 떨어지면 어쩌지? 안되겠다, 우리 선이 앞으로도 숙제 검사 언니한테 맡아야겠다."
     
     금세 또 아이는 빼앵 매미처럼 울음소리를 냈다. 아이고, 시끄럽기도 하지. 종이 학 열개쯤은 접어줘야겠다. 문득 나찰천의 말이 떠올랐다. 일상을 소중히. 일상이 뭐 별거 있나? 그냥 사는게 다 일상인 것을. 호북 본성 구석에 담요를 덮은채 잠들어있을 이도, 제 집에서 동생을 보듬보듬 해주는 이도. 언제나처럼 참으로 보잘것 없고 작은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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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여관 한켠은 종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로 분주했다. 다만 이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바닥을 구르던 종이의 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것. 종이 위를 거닐던 붓은 점차 그 속도가 붙어,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나갔다.






     오늘의 하루, 잘 보내었는가. 이 자는 맹주와의 비무가 아직도 눈에 선하여 자려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리더구만. 하여 잠을 조금 설치기는 하였으나, 그저 기쁘기만 하네.

     선계에까지 이 자의 이름이 들어간다면 참으로 기쁠테야. 이 자가 바라는 것은 언제고 그것이니. 나찰천들처럼, 이 무림에 발을 들이는 누구나 그 이름을 알게된다면 좋겠어. 동생들도 알 수 있을정도로 말이야. 소소는 지금도 충분히 강하다 생각하지만, 이 자의 미궁걸음이 하도 노가다에 특화되어서 말일세. 미궁이 뱉을때까지 피조물을 찾아 헤매는 일은 꽤 피곤하기도 하고. 소소도 돈을 벌고싶다면 모를까, 아니라면 그리 추천할 일은 아니야.
      그렇지, 이 전에도 선계의 돈을 무림의 돈으로 매매하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네. 이 자도 팔아본 일도 있고. 하여도 제대로 기반이 잡혀야겠다싶어 보류하였지만 말일세. 돈은 어디에서건 기반이 튼튼하여야 잘 벌리는 법이지. 돈이 돈을 부른다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니 말일세.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 인가? 참으로 크나큰 소원이로고. 이 자는 그저 이 자와 가족들의 행복 외에는 생각하지 못하였는데 말일세. 소소의 소원대로 모두가 웃게 되거든 소소도 내 동생들도 웃게될테지. 꽃이라, 꽃- 함께 꽃밭에 가실텐가? 저번에 주었던 봉숭아 꽃잎 말일세. 어여쁜 봉숭아 꽃밭이 있어. 소소도 좋아할테지.

     무림에서의 즐거웠던 기억 말인가? 예선에 오기 이전이라면 역시 무림에 처음 들어왔던 그 날일까. 이 맑은 공기와, 푸른 녹림을 볼 때의 전율 말일세. 무림에 어울릴만한 말투와 지식을 배운 시간들이 조금도 헛되지 않았으이. 되려, 더 공부하지 못한것을 아쉬워하였지. 그리고 팽가의 제자가 되어 걸음할 수 있게 되었을때에도, 이 자의 무기인 야옹이를 처음 마주하였을때에도. 이곳에서의 만남은 어느하나 덜 귀한것이 없었네. 하여 언제고 새로운 일이 일어날적마다 기뻤지. 이 곳의 모든 것들이 사랑스럽기 그지없으니 말일세. 

     소소의 즐거웠던 기억은 어느때일까, 참으로 궁굼하이. 하고 다음 일기는 이전에 소소가 말하였던대로 좋아하는 노래구절이나, 자주 부르는 노래구절은 어떠한가?

     오늘도 소소의 하루가 따스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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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환일기와 서신친우가 같은 것일까? 그렇구만. 다른 사람에게 답장을 바라고 편지를 쓰는것도, 실제로 답장이 오는것도 이렇게나 간질거리는 기분일줄은 몰랐네. 꼭 무림에 와서, 달콤한 당과를 처음 베어물었을때와 같은 기분이야.

     그렇지, 무언가를 생각하는것과 입밖으로 꺼내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의 크나큰 차이가 있고. 이 자는 소소가 소소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이들에게도 나쁜 마음이 든다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네. 그리고 소소를 진실로 걱정해주는 이들이라면, 분명 소소가 그리 말하여도 곡해하지 않고 잘 이해하리라 생각해. 아무리 상대를 아끼더라도 걱정에는 꼭 소량의 동정이 생기기 마련이라 생각하이. 동정받고싶지 않다 하는것이 어찌 잘못일텐가?
     무례한 이라. 이 자도 무례한 이는 싫네. 상대에게 비수를 꽂고는 제가 꽂은 것이 비수인지도 모르는 이들, 혹은 부러 날을 잘 간 것을 꽂아대는 이들 말일세. 그런 이들은 꼭 상대가 자신보다 약자의 위치일때만 횡포를 부리지. 나는 그래서 강자가 되고싶어. 무림에서도, 선계에서도 말일세.

      이번의 이야기는 원하는 것이었던가? 벌써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참으로 많이도 적었구만. 잘 정리하여 보내고싶은데, 어째 소소에게 줄 생각을 하니 잘 정리가 되질 않아. 이 자는 다른 것은 다 뛰어난데, 글만 이리 부족하구만. 아쉬울 따름이야.

      이 자는 아주아주 강해지고 유명해졌으면 하네. 무림 전역에 이름을 알리고싶어. 그 이름이 선계까지 흘러들어갈 정도로 말일세. 세계를 다급히 즐기는 것은 취향이 아니나… 부끄럽게도 미궁에 매달려있던것은 그러한 이유도 있었네. 동행했던 나루에게 참으로 고생을 시키었어, 거의 반나절은 잡아두고있었으니.
     그리고 이 자는 또한 아주 많이 돈을 벌고싶네! 무림에서 번 돈을 온전히 그 가치대로 선계에 가져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미궁에 한번 다녀올때마다 우리 밤톨이도, 매미도 배터지게 먹일 수 있을터인데. 다다익선이란 말은 실로 돈에 어울리는 것이지. 그렇지 않은가? 누군가는 돈 주고도 살수없는 가치에 대해 이야길 하곤하지. 아무것도 모르는 소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없으이. 우리가 무림에서 마시는 공기도, 먹는 음식도. 보는 모든 것. 그건 다 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던가. 이리 적고보니 참으로 속물적이구만. 하여도 이 자는 본래 이런 이일세. 혹 실망하였는가?

      나는 사람이 욕심을 지니는 것은 전혀 나쁜것이 아니라 생각하네. 부족하게 지니고있는 것이 문제이지, 그걸 채우려는 마음이 문제인가? 그러니 소소가 한명의 어른으로서, 무림인으로서 인정을 받고 걱정받지 않고 싶어하는 것도. 사랑받으면서도 아이취급은 받고싶지 않아하는것도 당연한 소망이라 생각해. 나쁜 소소가 든 것이 아니라고. 그걸 나쁜 소소라 부르는 이가 있거든 이 자에게 데려오시게나. 전부 혼쭐을 내줄테니.
      일기의 처음에도 말하였지만, 나는 소소와 이리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 좋네. 어제는 종일 미궁을 돌면서 이 것에 무얼 적을까 고민하였어. 그래도 나름 장황하게 쓰지는 않으려 노력하였는데, 어떤가? 언제고 마음에 들었으면 하네.

      이 일기를 읽는 오늘도 좋은 날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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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과 종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흰 것마다 어설피 눌러쓴 글씨가 완연하다. 끄응, 앓는 소리를 내던 이는 마침내 제 성에 조금 차는 종이를 손에 들고는 팔랑거리며 흔들었다.

"차라리 비무를 세번 하겠구만~ ……좋아하려나."

      



      첫 일기.

      이 자가 이리 일기를 쓰는 일은 까마득한 어릴적 이후로 처음이구만. 학교에서 방학동안 내오라 한, 그런 숙제들을 통틀어서 말일세. 그때엔 참으로도 쓸 일이 없어 하루를 날씨가 좋았다, 빨래를 도왔다. 동생들을 돌봤다 하는 두어줄로 일기를 채웠건만, 소소에게 보내는 교환 일기는 그리 가벼이 내용을 채울 수 있을까. 허니 내용이 혹 두서없이 뵈더라도 이해해주시게, 소소가 기뻐하여주었으면 하는 일 만은 그 어느 것보다 명확한 생각이니.
       꼭 서신친구가 된 기분이 들어. 실은 별 차이가 없는듯도 하고. 이전에 현운도 서신친구를 구하지 아니하였던가? 그때엔 어쩐지 쑥스러운 기분이 들어 선뜻 하겠다 나서지 아니하였는데, 생각해보니 쑥스러움이란 쥐에겐 어울리지 않는 일이구만. 다음번에 기회가 또 오거든 그때엔 놓치지 말아야겠네.
       그래서, 이번의 주제란 것은 싫어하는 것이었지? 그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생각하였네. 어쩐지 생각들이 마구 나면서도, 너무 당연한것들인가? 싶어 망설여지네만. 그래도 전부 적어주겠네!
      이 자는 쓸데없는 낭비가 싫네. 아무 의미없이 돈을 바닥에 버리는 행위가 싫어. 하지만 기부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야. 기부란 것은 사람을 살리는 귀한 행동일테지. 이를테면 거지와 상인, 둘이 있다면 이 자는 거지에게 말을 걸어 돈을 주겠네. 이미 있는 자의 상술에 넘어가는 일은 그 무엇보다 싫으니.
      그런 의미에서 음식을 낭비하는것도 싫어. 무림의, 식재료란 것들 말일세. 음식도. 간혹 들렀던 주점에서는, 이 것이 사람이 먹는 것인가 싶을정도로 맛이 끔찍한 것들을 터무니없는 가격에 팔더구만. 어찌 맛이 있는 것들을 가지고 그런 것을 만들 수 있는게지? 나라면 분명 세상에서 제일가는 것을 만들고싶어 안달이 날텐데.
      그리고 그때문에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음식도 싫네. 무엇이더라, 투명하고 탱탱한 음식을 보았었네. 사각으로 썰었는데, 먹으니 정말로 아무 맛도 없더구만. 그것 또한 음식이란 것의 수치라 생각해. 선계의 약도 아니고, 어찌 그런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단말인가? 아무 맛 없는 음식에 비하면 차라리 맛없는 것을 먹겠어. 아, 소소가 주었던 여지가 생각나는구만. 여지를 좀 사야겠어. 가장 알이 좋은 것으로 골라, 소소에게도 나누어주고. 다른이들에게도 나눠주고. 배 곯고 다니면 안되니까.
      다리 많은 벌레도 싫네. 그런 것은 이곳에 와 제대로 보기 시작하였지만… 아니, 그런것이 난신이 아니라는게 말이 되는가? 솔직히 가뭄이나 태세같은 것은 무섭지도 않네. 지네니 돈벌레니 하는 것들이 더 무서워서 말일세. 어찌 털많은 짐승은 그리도 귀여운데 다리많은 벌레들은 아니 그럴까.
     이 후에는 생각나는게 없구만. 유령, 배고픔. 무어, 그런 것일까? 하지만 그런 것은 소소도 그렇고, 다른 이들도 다 싫어할테니. 그렇네, 이 일기를 쓰며 깨달았구만. 이 자는 생각보다 좋아하는 것이 아주 많은 모양이야.
      소소는 어떠한가? 이 자보다 싫어하는 것이 많은가? 아니면 적은가. 어떤 것이 싫은가? 다른 이들이 싫어하는 것을 알거든 이 자도 쉬이 신경써줄 수 있을테지. 그러니, 소소가 싫어하는 것을 알게되는 것 또한 기쁜일일게야. 벌써부터 소소의 답일기가 기다려지는구만. 이런 기분으로 주고받는것이구나.
      귀한 내 친우, 이 일기를 보는 오늘도 부디 빛나는 하루가 되기를.





     아무리 보아도 성에 차진 않는데. 느릿하게 시선을 굴리다 마른 세수를 했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글 짓는 법이라도 제대로 배웠다면 모를까. 쓰기라도 제대로 쓰면 다행인게지. 제대로 썼나? 아~ 모르겠구만. 쥐 하나가 속에서 계속 웅성거렸다. 아, 아. 몰라, 모르겠어. 툭툭 털어내곤 종이를 곱게 접었다. 그 중앙을 끈으로 묶고, 새하얀 이름모를 들꽃 하나를 꽂았다. 꽤 그럴듯해졌네. 만족스런 표정으로 이리저리 살피다 고개를 끄덕였다.

      음, 마음이 담기면 된게지, 마음이 담기면.
   
      아까 전부터 있었지만, 마치 방금 들어온것마냥. 쥐는 호다닥 밖으로 걸음을 했다. 남겨진 방에는 종이 십수개만이 뒹굴뒹굴, 어수선하게 어질러져 그 방 안에서 벌어졌던 스스로와의 비무를 간신히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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