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뚝 서있는 이는 저였다. 도끼를 막아내다 그 충격을 다 흡수하지 못한 제 사매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고. 튀는 피, 퍼지는 붉은 빛깔. 그 모든 것은 시간을 되감듯 천천히, 그리고 빠르게. 몇 마디의 생각이 스치기도 전에 금세 이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아와있었다.
아니, 돌아와있지는 아니하였다. 주고받은 말, 손에 남은 감촉, 비무중의 떨림. 수많은 감정들이 휘몰아치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네 답지 않구나, 생쥐야. 정말로 네 답지 않아. 온통 드는 착잡한 감정에 비무 후의 의례인 포권지례도 취하지 아니하고, 그저 도끼를 든 채로 맹꽁이마냥 눈만 꿈뻑이며 생각을 반복했다. 이 자가- 무언가를 실수하였나? 모르겠구만, 비무 도중에 정말 아무 말을 다 하였던 듯 한데. 꿈뻑이는 시선 너머로 누운 이가 있었다. 그렇지, 일단은 인사를 하여야. 어설픈 웃음을 지으려다 생각이 멎었다. 무언가를 더 깊이 생각하기에는, 그 쥐는 어리석었고. 단순하였으며 지쳐있었으므로.
"사매."
하여서 그 쥐는, 언제나처럼 종종 작은 걸음으로 제 사매의 곁에 가 쭈그리고 앉았다. 누운 이를 내려다보다, 상대가 무어라 말을 꺼내기전에 제 초라한 손들로 상대의 눈을 폭 가리고는. 언제나처럼 히죽히죽 웃는 소리를 내었다.
"무어라 말 말고 들어보시게, 사매. 이 자는 그저 다른것은 잘 모르겠으이. 이 자는 욕심을 내겠다 하였어, 그건 이 자가 사매를 생각하는 방식을 달리 한다는 것이지- 사매에게 이 자를 달리 생각해달라 한 의미는 아니었던게고. 물론 사매가 이 자를 어찌 생각하여도 상관없단 이야긴 아닐세. 이 자는 아주 욕심많은 이라. 하날 얻으면 둘을 얻고싶어지는게지.
이 자는, 사매. 이 자의 가족을 이리 만들었네. 가족이 대체 무엇인가? 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이들이 가족이 아닌가? 태어날적부터 사랑받지 못한 이들, 그 이들이 모여 이 자의 가족이 되어주었네. 그네들은 마땅히 사랑받을 이들이나, 그저 그 사랑을 해줄 대상을 늦게 찾은게지. 아니그러한가? 적어도 이 자는 그리 생각해.
내 사매의 말은 이해하였네. 허니 별다른 말은 더 하지는 아니하겠어. 다만 사매, 이 자는 이제 좀 더 다가가볼까 생각하이. 이 선택이 득일지 실일지는 모르겠으나, 우선 하는 만큼은 해보려 해. 내 앞에 보이는 것은 이리 든든하고 강인한 사매이니, 더 다가가 그 모습이 참인지 보려 하네. 싫다면 언제고 밀어내시게. 내 비록 단단한 바위이나, 사매가 밀어내는 것을 거절할 일 있겠는가. 해도 마음을 주는 일은 관두지 않을게야. 이 자가 바라는 것은 그저 이 자 욕심대로 행동하고싶은 것 뿐이니."
그러니, 저가 마음을 주는 일은 당신과는 별개의 일일테고. 저는 이보다 더 귀찮게 할거라고. 속살거리는 소리는 퍽 짖궂었다. 말을 마치고 나서야 눈을 가린 손을 치웠다. 평소처럼 당신과 시선을 마주하고. 평소처럼 웃었다. 그 새빨간 눈에는 단 한 점 거짓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