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제가 불렀던 그의 이름에는 무엇들이 있더라.


     첫번째, 손님. 그를 갓 처음만났던 날, 그는 붉디 붉은 색을 휘감은- 모르는 꽃이었다. 아니, 심지어 그가 아니라 그녀였지. 숙박 장부에서 간신히 아사율, 그 석자 이름을 외고 혹여나 손께서 저를 부르거든 이름으로 답하여야지 하고 속으로 다짐하였던. 처음 보는 이, 동경하는 꽃. 그저 제가 사랑해 마지 않는, 제 매화를 수호하는 이라고 하여서 호감이 조금 더 쌓였을 뿐인 이. 아, 그분과 옷깃이라도 닿으면 좋겠지. 말이라도 섞게 된다면 숨결에 꽃향이 섞이게 될게야. 첫사랑에 빠진 아해마냥 두근거리며, 그럼에도 혹여 제가 말 한마디 섞지 못하게 된다 하여도 금세 잊어버렸을. 그런 타인이 있었다.


     두번째, 아사율. 간밤엔 평안하시었는가, 그 한마디로 섞인 말은 참으로 달디 달았다. 제 주제넘은 위로와, 그럼에도 기뻐하던 이. 선물받은 매화꽃. 그 밤 사이에는 수많은 것이 오가, 저는 감히 그녀의 친우가 되었다. 따스하며 향기롭던 동백차, 함께 주고받은 여러 문장들. 바람이 한번 불면 바닥에 매화꽃잎이 흐드러졌다. 꽃길을 밟던 제 걸음은 점차 빨라져 춤을 추었다. 어두운 밤에도 그 색과 향은 그대로라, 참으로 행복하여. 가만, 바닥에 이리 꽃잎이 흐드러졌다면 나무는 어찌 되었을것인가? 어느순간 떨어지던 꽃잎이 멈추었다.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세번째, 무명. 올려다본 곳에는 나무 그림자만 선하였다. 아, 이를 어찌해야 할것인가. 내려다본 바닥은 꽃잎이 다 희게 변하여. 손으로 쥐어보니 그것은 흰 매화잎이 아니라 눈송이였음을. 찬 기운에 저도 모르게 한발자국 물러섰었다. 그럼에도 내리는 눈이 희고 사랑스러워 다시금 손을 뻗고, 그림자를 위로하고. 그리 하였더니 손에 닿는것이 있었다. 이리 닿은것이 있으니 그대와 친우가 된 것이 허상이 아니지 않겠냐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무명, 명, 친우, 소중한 이. 눈꽃은 참으로 사랑스레 피었다. 처음 보는 꽃이었지, 처음 마주하는 향이었다. 따스하기도 하여라. 그 향이 퍼져버릴까 두려워 기나긴 밤이 끝난 후, 마침내 제 품에 그 모든것을 끌어안고자 하였을 때에. 명이 제게 손을 내밀어준것은 어쩌면 기적과도 같은 일이 아니었을까.



     제 앞의 이는 참으로 많은 이름으로 불리었지. 저는 가만히 그의 이름을 하나하나 생각했다. 명, 그것은 가장 익숙한 이름이었다. 허나 저도 그 이름은 그에게 맞지 않는다 생각하곤 하였다. 무명. 이름이 없다. 어찌 그런것을 이름이라 할까. 부러 한자를 떼어 명이라 불러 존재를 매어보았으나, 그것은 별개의 문제인것을. 어쩌면 그가 무명이라는 이름을 두고 새 이름을 얻고자 한다는 이야기를 하였을적에 저는 아주 많이 기뻤던 것 같다. 검고 희던 모습과 다르게 색을 띄게 된 모습 또한 비슷한 의미로 제게 다가왔다.-물론, 이리 생각한다 하여 정인이 이전 색을 지니지 않던 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한들 전혀 신경쓰지 않았을 터였지만.-


"그대의 이름을… 그 귀한것을 소녀가 드릴수 있다면 참으로- 무엇에도 비하지 못할 기쁜 일이 되옵겠지요."


     정말로 그러했다. 제 정인의- 제 신의 이름을. 존재를 붙잡아둘 수 있는 유일한 이가 제가 된다는 것이 행복했다. 그대의 이름에는 어떤 빛나는 단어도 견주지 못할것을. 그 말에 제가 걱정한 것이 있다면, 그저 제 지혜가 부족하여 그 소중한 이에게 더 어울릴만한- 사랑스러운 이름을 짓지 못할것, 그 뿐이었다. 어찌 하여야 한단말인가. 그에게는 모든 소중한 것이 어울리면서도 부족한 것을.



     제 앞의 이를 보았다.
     맑고 희고, 제게는 누구보다도 밝은 이. 허나 더이상 밝다는 칭호로 그를 불러서는 아니될 것이었다. 제가 새로 건네는 의미가 이전의 것과 같아서는 의미가 없으리라. 그리하여 명을 제하였다.
     고요하고, 잔잔하며 따스한 이. 저는 그의 손을 잡고 함께 겨울에 있었다. 그는 제 겨울의 신이자, 따스한 눈이었고. 제게는 봄보다 소중한 이였다. 허나 지금은 그에게 그림자가 아닌 흰 매화가 자라났기에. 겨울과 눈을 제하였다.

     가만, 이리 생각하면 어떨 것인가. 그는 아주 오랜 삶을 산 매화나무가 달빛을 받아 생겨난 그림자였으나, 그 반반이 다시 나뉘어 새로 나무가 되었지. 나무로서의 삶은 오래 지니었을 터였으나- 어쩌면 그 자신이 실제로 그 자신만의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리라 다짐한것은 제게 한 이 말이 처음이리라고. 그리 생각하며 제 앞에 온통 붉어진 이를 보았다. 저도 모르게 답하는 소리에 웃음이 새었다. 제 기쁨, 행복함. 환희. 애정. 수많은 감정이 새어나왔다.


"그대가 소녀에게서 이름을 받아. 오로지 소녀에게서 뿌리내리고 자라나길 바라옵니다. 그리하여 거대한 나무가 되어, 소녀의 곁에 영영 머무르는 이가 되옵기를요. 이전의 그대의 존재가 깊은 겨울을 지나 다시금 싹을 틔웠으니. 소녀는 감히 그대의 이름을, 신아(新芽)라 불러도 되올까 여쭙사옵니다. 바라건대 이 이름이- 그대의 존재가 그대와 소녀의 봄을 알리는 증명이 되어, 어느 것보다도 맑은 향을 퍼트리기를 바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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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캐를_살리기_위해_시간을_되돌릴수록_안_좋게_흘러간다면_자캐는

결국, 결국은 또 이리 되고 말았다. 매는 눈앞에 스러진 채 조각나버린 제 연인을 망연자실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제게 주어진 기회가 축복인줄로만 알았다. 기나긴 백귀야행의 밤에도 살아남았지만, 결국 그리도 허망하게 제 소중한 이가 쓰러져 숨을 거두었을때. 매는 밤낮을 울고 또 운 끝에 순리를 거스르기로 마음먹었다. 제 소중한 연인을 잃고싶지 않아 세상의 온갖 요괴와 신들을 찾아 방법을 물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낸, 북쪽 모래사막 너머의 동굴 끝에 자리잡은 한 늙은 요괴가 알려준 방법은.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방법이었으나- 의외로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허나 명심하십쇼. 한번에 성공 못하면, 그 다음 제물은 둘입니다. 그다음은 셋, 넷... 킬킬킬, 모쪼록 적을때 성공하는게 좋을겝니다...

요괴는 가래섞인 목소리로 나지막히 웃음소리를 내었다. 매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나. 단 하나로 구해낼 자신이 있다고. 이미 전부 겪었던 일들이었으니 더 나은 길을 찾아낼거라고. 제 소중한 이와 둘이, 함께 살 수 있을거라고.


첫번째 되돌림. 매는 연인의 건강을 살폈다.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있었지만, 방법을 찾지 못했다. 매는 연인과 함께 연인의 누이를 찾았다. 그녀 또한 방법을 알지 못했다. ...연인이 죽었다.

두번째 되돌림. 다른 방법을 궁리했다. 모란각의 주인어르신과 전 부주어르신을 찾아 물었다. 악화를 지연시킬 방법이 나왔다. 제 연인또한 이미 해본적 있고, 알고있던 방법. 타인을 삼키는 것. ...연인은 거부했다. 다시, 그의 영혼이 사자에 의해 끌려갔다.

세번째 되돌림. 주인어르신과 전 부주어르신 외에도, 나이가 많은 신이나 요괴들은 많았다. 그들은 혹시 방법을 알지 않을까? 사방을 헤맸다. 방법을 묻고, 답을 듣기위한 방법을 전부 썼다. ...답은 나오지 않았다.

네번째 되돌림. 기록된 방법들이 있을까? 수많은 기록들을 찾아헤맸다. 기록들을 얻기 위한 방법도 전부 사용했다. 누군가가 제 정기의 일부를 요구하기에 그마저도 내어주었다. ...타자를 삼키는 방법 외에는. 여전히 소식이 없었다.

다섯번째 되돌림. 어쩌면 위험하더라도, 죽음과 가까운 곳에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연인은 제가 모란각을 그만두고 사방을 돌아다니는 것을 의아해했다. 하지만 어찌 연유를 말할 수 있을까. 사실을 숨겼다. 연인은 함께 가자고 했다. 함께 세상의 모든 위험한 곳을 돌았다. 어느 명계와 가까운 곳, 위험이 닥쳤다. ...저를 구하고, 연인은 산산조각이 났다.

여섯번째 되돌림. 다시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연인은 또다시 함께 가자고 했다. 제가 더 힘을 내서 연인을 지키자고 마음먹었다. 힘을 무리해서 사용하니 구미호의 원천인 정기가 빠른 속도로 소모되었다. 그리고, 정기의 수급이 힘들어진 채 무리하던 어느 날, 쓰러졌다 정신차렸던 제 앞에 있던 것은. 쓰러진 연인과- 어느 이름모를 요괴들의 시체. 제게 정기를 구해다 준 연인은, 결국 제 몸을 돌보지 못하여. 바스라진 매화꽃만이 남아있었다.

일곱번째 되돌림. 휴가를 내러 가자, 저를 물끄러미 보던 주인어르신이 툭 말을 뱉었다. ...공녀, 공녀의 주위에 어찌 죽음이 그리 가득하시오? -그렇사옵니까? 소녀는 모르는 일이옵니다만, 하고 내뱉는 제 목소리가 평소와 다름은 저도 알 수 있었다. ...아. 이를 어찌해야할까. 그곳에마저 답이 없다면 정말로 끝인데. 아니, 있을것이었다. 있어야만 했다. 연인에게는 잠시 떠난다는 말조차 남기지 않았다. 그가 묻는다면, 거짓을 고할수는 없었지만 진실 또한 고할 수 없었기에. 차라리 아무 대답도 하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떠나기 전, 연인을 바라보는 마음 한구석에 날카로운 비수가 박혔다. 사과의 말조차 건네지 못하고 가슴 속 깊은곳에 묻었다. 다시 그곳으로 향했다. 정기가 부족해지면 사냥을 했다. 이곳에는, 있을거라고. 조각나는 제 연인을 다시 붙일 방법이. 마침내 도달한 마지막, 지옥불의 신이 말했다. 어린아이의 영혼들을 가져오면 방법이 적힌 책을 내어주마. ...아무리 제 연인의 목숨이 걸렸다 한들, 어찌 그런짓을. 무력으로 책을 빼앗으려 덤볐다. 제 팔 한짝이 타버리고, 구슬에 금이 갔다. 죽기 직전, 신은 책을 태워버렸다. 괜찮사옵니다, 다시 돌아오지요. 매는 웃었다.

여덟번째 되돌림. 팔은 멀쩡히 돌아왔지만, 이상하다. 금이 간 구슬은 그대로였다. 삐걱삐걱, 어긋나는 소리가 들렸다. 어긋남을 제일 먼저 알아챈것은 제 연인이었다. 대체 무엇을 하고계십니까. 그는 휴가를 내고 모란각을 나서는 저를 붙잡았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옵니까? -왜 그리 지친 기색을 하고계시옵니까. 매는 웃었다. 소녀는 괜찮사옵니다.

거짓을 고하지 않겠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
아니면, 그대에게 이자는 믿을 수 없어 그러시옵니까. 그래서 숨기는 것입니까?
소녀는, 그저. 그대를 믿지 못하는것이 아니라 그대를 위하여...
이 자를 위하여, 이 자에게 거짓을 고하고 떠나실 셈이십니까. 그간의 약속들도 거짓이었습니까? 겨울의 끝자락을 붙잡고, 봄이 올적까지. 이 자의 손을 잡겠다던 약속을요. 손을 놓으실 생각이십니까?

매는 제 손을 내려보았다. 새하얀 손 끝에, 언젠가 과거의 연인의 피가 묻었고, 이름모를 요괴들과 어느 신의 피가 묻었었다. 이 손으로 당신의 손을 잡아도 될까요. 이리도 붉어진 손으로, 닿기만 해도 바스러질듯 깨끗한 당신의 손을. 그저 잃기만 했던 손으로. 또다시 그대를 잃는다면. 그렇다면 차라리 소녀는-

무언가 말하려던 찰나, 연인이 제 손을 잡았다. 서늘한 온기가 손을 타고 흘렀다. 연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손은 너무도 따스하여. 언젠가 가슴에 박혔던 비수가 천천히 녹아내리고있었다. 매는 녹아내린 조각을 한방울, 두방울 떨구며 저도 모르게 더듬더듬 말을 꺼냈다. 그간 있었던 여덟번의 반복을. 그대를 구하기 위한 여정을. 하지만 반복할수록 상황은 악화되어만갔고, 이제 정말 마지막 방법만이 남았다고. 더는 없다고. 

허면 그리 가지요. 이야기를 다 듣고난 연인은 담담히 말했다. 지옥불의 신이란 자에게서 책을 얻어내 확인하고, 그마저도 없거든. ......없거든, 그저 순리를 받아들이지요. 그대에게 더 고생을 시키고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사옵니다. 그저 지금까지 해준것만으로도. 고생하셨나이다. 그는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겨울밤사이 쌓인 눈송이와 같이 고요하게 자신의 마음을 감싸주었다. 그대의 마지막까지 함께 가겠사옵니다. 매는 연인의 손을 꼭 잡았다.

둘이서 함께 마지막에 도달했다. 지옥불의 신을 상대하는것은, 이전보다 어렵지 않았다. 이미 한번 상대해봤던 경험과- 혼자가 아닌 둘이었기에. 책을 얻었다. 둘은 함께 주저앉아, 떨리는 손으로 책을 살폈다. 혼이 조각나, 바스라지는 이를 다시 기워낼 수 있는 방법. ...태어난지 백일이 되지 않은 영혼으로 실을 자아 아흔 아홉수를 꿰면.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매는 책을 세번을 다시 살피고, 제 여우불로 재도 남기지 않은채 태웠다. 잠시 제 연인을 보았지만, 그 또한 책을 태워버리는 것에 동의하고있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없는데. 끝인데. 매는 그저 연인을 꼭 안고, 아무 인사의 말도 건네지 못한채 그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너무도 지쳐있었다. 그의 파편위에 제 동백 비녀를 내려놓으며, 매는 중얼거렸다.

"마지막. 마지막으로 그대와 함께- 끝을 맞이하겠사옵니다."


아홉번째 되돌림. 눈을 뜬 매는 제일 먼저 제 연인을 찾아갔다. 함께 휴가를 내어, 가고싶은 곳이 있사옵니다. 연인은 잠시 의아해했지만 긍정의 표시를 내보였다. 주인어르신께 들러, 휴가를 내었다. 주인어르신, 이리 되어 송구하옵니다. 어찌 그리 되었는지는 묻지 말아주시옵소서. 주인장은 그저 묵묵히, 공녀의 선택이 모쪼록 좋은 결과를 얻길 바라오. 서툰 기원을 건넸다.

연인과 함께 간곳은 제 고향집이었다. 몇백년이 흘러 초가집은 이미 자연의 일부가 된지 오래였다. 마당 벽은 오래전에 허물어져 나무들의 휴식처가 되어있었고, 천장의 반은 어디로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집을 보고자 온것은 아니었기에 상관은 없었다. 꽃은 피지 않았으나, 파릇한 동백나무가 그들을 맞이했다. 어머니께, 정인을 소개하고싶었사옵니다. 매는 나지막히 중얼거리며 웃었다.

인사를 끝낸 뒤에는 아사율님에게 향했다. 도중에 연인은 제 몸상태를 알아차렸다. 부서지는 소리가 점차 커지고있노라고, 이미 몇번은 들어왔던 담담한 고백이었지만 언제나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은 어디를 갈까요. 바다를 갈까요? 여행은 꽤나 충동적으로 흘렀다. 넓은 호수가 보고싶사옵니다. 고요한 곳은 어떨까요. 한적하고, 사람이 거의 없는- 단둘이 보낼 수 있는 곳이 좋겠사옵니다. 허면 그리하지요. 바람결에 꽃잎이 떨어져내리듯, 둘은 발걸음에 몸을 맡겨 이리저리 떠돌았다.

어느 이름모를 곳, 가만히 앉아 연인에게 제 무릎을 내어준채 머리를 쓸어주었다. 꽤나 천천히 떨어지던 모래시계는 어느새 아주 조금 남아, 사르르, 하고. 마지막을 알렸다. 제 정인이 마지막 말을 끝내고 눈을 감고, 영영 져버렸을 때. 매는 제 여우구슬을 꺼냈다. 조금 금이 간 구슬을 보던 매는 웃으며 바스라진 제 연인의 위로 손을 뻗어, 구슬을 쥔 손에 힘을 줘 금을 키웠다. 쩌적- 쩌저적, 하고 조각나는 소리가 정적을 깼다.

그대와는 어디까지고 함께 하기로 하였지요.
그대가 마지막을 맞이한다면, 그 길은 소녀도 함께이옵고. 그대가 형체를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면 소녀또한 그리 할것이옵니다. 긴 겨울, 이리 잠들어있도록 하지요. 언젠가 이 겨울이 지나고, 눈 사이 흰 매화꽃이 피어오르듯이 우리도 다시 피어오를것이옵니다. 그대의 곁이라면 어느 겨울이라도 따스할테니. 다시 만나게 될 봄을 기다리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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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명이가 아사율에게 돌아가 홍매화 백매화로 나뉘기 위해서, 모란각을 잠시 떠나는 시점으로 잡았습니다. 서로 마음을 확인한지는 열흘째가 되었고, 명이가 아사율에게 떠나는 날이에요!)






     평안하시나이까. 소녀, 매이옵니다.

     이리 인사를 올리는 것은 그대가 보기에는 꽤나 이상한 일일지도 모르겠사옵니다. 소녀가 이 서신을 쓰는 시각은 밤이오나, 곧 아침이 되면 소녀의 손으로 그대에게 건네어질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대는 모란각을 떠나자마자 이 서신을 펼쳐볼수도 있고, 혹은 기나긴 여로끝에 묵게된 어느 이름모를 여관방에서 휴식을 취하며 이 서신을 펼쳐볼수도 있겠지요. 어느쪽이든 소녀의 손으로 직접 그대에게 전해드린 서신이건대, 이리 첫인사에 소녀의 이름을 다시 적는것은 어찌보면 의미없는 일일듯도 하옵니다.
    
     소녀의 휴가도 곧 끝이 나옵고, 그리되면 소녀는 다시 모란각에서 일을 시작하겠지요. 아직 향은 돌아오지 않아 일이 다소 걱정이 되긴 하오나, 어쩌면.. 아주 어쩌면 머지않아 향이 돌아올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사옵니다. 간밤에 창고를 잠시 정리할적에, 민들레의 꽃잎주머니를 다루었사온데, 그중 하나가 어쩐지 다른 느낌이 들어 안을 살피어보니 민들레가 아닌 국화가 잘못 들어가있었사옵니다. 다른 느낌이 들었던 것이 혹여 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신이 나 꽃차를 끓여보았으나 향을 느끼지는 못하였지만... 모란각의 바깥과 안, 첫층과 다섯째층을 다닐 적에 조금씩 다른 기운을 느끼고 있사옵니다. 어쩌면, 이 서신을 적고난 후 자고 일어날적에 비녀에서 매화향을 다시 맡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옵지요. 그대가 떠나기 전 조금이라도 기쁜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다면 좋겠사오나. 그것까지는 욕심이겠지요?

     참으로 기쁜 열흘이었사옵니다. 그 밤이 떠나고 낮이 찾아오고, 소녀가 그대의 손을 잡은 후로 벌써 열흘이나 지난것이 참으로 신기하옵니다. 눈을 감으면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건대, 그대가 없었더라면 어쩌면 그 일들은 꿈이 아니었을까 생각하였을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지난 열흘은 마치 따스한 봄날, 흐드러진 꽃나무 아래 누워 낮잠을 청하는 듯 참으로 평온하고 행복하였사옵니다. 소중한 정인이 생긴것이 이리 행복한 일일줄은 미처 알지 못하였으니 아직도 소녀는 삶에서 배울 것이 많겠지요.

     그대는 소녀에게, 이 여행길이 얼마나 걸리게 될지 스스로도 알지 못하기에 아주 조금을 기다려야 할수도, 혹은 수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할수도 있다 하셨지요. 소녀는 실은 그때 그대에게 여행길에 소녀를 데려가달라 청하고 싶었사옵니다. 이리 따스한 손길을 알지 못하였을때의 기다림은 소녀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사옵니다. 그저 문을 닫고, 언젠가 상대가 문을 두드릴때까지 소녀의 집 안에서 그저 상대가 피워낸 꽃에 물을 주고있으면 되는 것이었지요. 하오나 그대의 따스함을 알고나서는, 그대에게로의 문은 사라진지 오래이옵니다. 그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저 집안에 앉아, 빈 길을 바라보며 계속하여 그대를 기다리려 생각하니 참으로 막막하고 가슴 한켠이 서늘하여. 그대를 그저 기다리는 일보다는 함께 가는 일이 나을까 생각하였사옵니다.

     하오나 그대는 그저 여행을 가는것이 아니지요. 그대는 아마 아사율님께로 돌아가 아사율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될것이옵니다. 소녀가 뵈었던 아사율이라면 그대를 용서하고 이전과 같이 대하리라 생각하였사오나, 그렇지 아니하여 어떤 상황이 오게 되더라도 그대는 이전과는 다른 선택을 하겠지요. 그 길은 소녀가 함께할수도 없고, 함께하여서도 아니되는 오로지 그대의 몫이라 생각하였사옵니다. 소녀가 아사율님과 인사를 나누게 되오는 일은, 그보다 먼 미래에 이루어지겠지요.

     그 끝나지않던 밤, 그대는 소녀의 소중한 이를 지키겠다 약조한 바 있었지요. 또한 그대는 아사율님께 다녀오겠다 말하였던 때에 언제가 되건 돌아오겠다 하였사옵니다. 그 약조들을 믿고 소녀는 이곳 모란각에서 기다리겠나이다. 계절이 지나, 고요한 봄에서 더운 여름이 오고. 건조한 가을을 지나 그대와 함께하는 따스한 겨울이 올때까지. 부디 평안하소서. 소녀의 소중한 정인. 소녀의 신. 유일한 소망. 봄보다 따스한 겨울. 무명. 그대와 다시 만날 그날을 기다리겠나이다. 언제나 그대의 한 손을 소녀가 잡고있음을 잊지마시옵소서.





     새하얀 종이위에 이리저리 붓이 춤을 추며 글자를 새기었다. 매는 마지막 온점을 찍고, 붓을 내려놓았다. 제 소중한 이에게 건네는 서신이었으니 기왕이면 더욱 어여쁜 종이에 어여쁜 글씨체로 적고싶었지만, 제가 할수있는 최선의 어여쁨은 이정도가 다였다. ......알아볼 수 있을 정도면 되었지. 애써 스스로를 다독인 매는 먹이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곱게 접어 봉투에 서신을 담았다. 봉투를 봉하여 제 머리맡에 두고나서야 기지개를 한번 펴고, 문득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늘에는 어둠이 가득했지만 반쯤 차오른 달이 그 끝에 걸려있었다. 매는 저와 같은 건물 안에 있을, 잠을 자지 않는 제 정인을 떠올렸다.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옵니까.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옵니까. 어쩌면 그대도 소녀처럼 저 달을 보고있을런지. 그렇다면 우리는 같은 달 아래에 있으니, 함께 있는 것이겠사옵니다. 후후, 조금 웃은 매는 손을 모아 제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소녀의 곁에, 함께 머물러주어 감사하옵나이다. 소녀에게, 참으로 소중한 애정을. 그 마음을 소녀에게 주시어 감사하옵나이다. 이 계절이 돌아올적까지, 부디 무명님을 부탁드리겠사옵니다. 소녀도 이 마음과 함께 그대를 기다릴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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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가 천년을 살면, 여우의 신인 천호의 자리에 도전할 자격이 주어진다고 들었단다.


     언제 들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오래전, 한 나이 많은 동족에게 들은 이야기였다. 그녀는 제 어머니의 친우라 했고, 어머니의 성품-꽃을 사랑하고, 생명을 귀히 여기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을 지녔던 이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동족들을 찾아왔을 때의 매는 참으로 어리고 순진했고, 다름을 숨기지 못하는- 혹은 숨기지 않는 그 모습에, 동족들 사이에서는 금세 소문이 나돌았다. 몇 십년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떠돌다, 매가 지쳐갈 무렵 도착한 어느 동족들의 마을에서. 제 어머니를 안다 하였던 그녀는 매를 보살펴주곤 하였다. 어느날의 매가 동족들의 멸시와 제 스스로의 궁금에 참지 못하고 이렇게 이치를 거스르고 살아도 되는가, 후회할적에. 그녀는 매에게 조곤조곤 제가 알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네가 지금 괴로워하는 까닭은 네 본성은 구미호이나 신과 같이 다른 것을 수호하고, 귀히 여기는 일을 하고싶어하기 때문이니. 차라리 천년을 살아 신이 되거라. 네가 여우의 신이 된다면, 그 누구도 네게 어리석다 말하지 못할것이 아니냐. 천년을 살거라.

     제가, 신이 될 수 있다. 제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무언가를 수호하고, 그로부터 기원을 받고. 제가 무언가를 소중히 여기는 그 마음이 거짓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는, 그런 이가. 매는, 제가 신이 되면 그리 될것이라 의심치 않았다. 대답은 바로 나왔다. 천년을 살겠사옵니다. 살아서, 여우의 신이 되겠사옵니다. 소녀가 여우의 신이 되거든 누구도 소녀나, 소녀의 어머니를 함부로 말하지 못할것이지요. 그리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매는 지금까지 살아왔다. 백귀야행의 밤을 맞이하였던 해가, 천년으로부터 갓 반백년이 남은 때였다.






"...처음의 그대는, 소녀가 가장 바라던 모습이었사옵니다."


     매화목의 신. 저처럼 검은 빛이 아니라, 머리칼 한올부터 발 끝까지, 봄을 휘감은 듯한 빛. 향이 없어도 저에게서 향이 난다는 기분은 어떤 느낌일까. 어쩌면 자신은 코가 무뎌져, 향이 나는지조차 모른채 향에 잠겨있을 것이다. 매는 마치 갓 알을 깨고 나온 새끼 새와도 같았다. 그저, 눈으로 당신을 좇고. 혹여 저를 불러주진 않을까, 제가 필요하다 해주지 않을까. 후에 어쩌면, 어쩌면 제가 신이 된다면. 저 고운 이처럼 될 수 있는걸까. 그런 생각은 그와 친우가 되고, 밤이 찾아오고. 끝나지 않는 밤이 이어지며 결국 친우의 모습이 본래대로 돌아왔을때엔-

     그 열흘밤동안 매는 그간의 900여년의 삶에서 배운 것 만큼이나 많은 것을 배웠다. 제가 항상 천년을 그리며 바라던 신의 모습은, 완벽하고. 스스로에 대한 고민이 존재하지 않는 온전한 믿음과. 제가 수호하는 것에 대한 아낌없는 애정. ...하지만 제가 본 신은 어떠하였는가. 제 선택을 후회하면서도 한 발자욱을 내딛지 못하고, 어딘가 계속해서 위태롭고. 마치, 손끝에 내려앉은 눈송이처럼. 온기에 닿으면 어느순간 사라져버릴듯 하여 계속해서 마음을 졸였다. 어쩌면, 제가 온기를 건네는 것을 그만두어야 할것인가, 고민하다가도. 내리는 눈송이를 보면 저도 모르게 손을 뻗고마는 아이처럼, 그렇게 계속해서 손을 뻗었더랬다.

     눈길을 뗄 수 없는, 그런 이였다. 검고 하얀 그가 그 기나긴 밤동안, 어둠에 휩쓸려 사라질까봐. 그 짙은 어둠속으로 사라져버릴까봐 부러 그를 붙잡고 이런저런 약조를 내걸었더랬다. 간밤동안, 소녀의 소중한 이를 지켜주시어 감사하옵니다. 소녀 또한 매를 지킬터이니, 이 밤이 끝날때까지 지켜주시옵소서. 제 자신을 무엇보다 소중히 지켜달라는 그 부탁을, 저조차도 하늘의 뜻에 맡겨두었던 그 청을 들어준 것이 너무나도 기뻐, 드디어 시간이 흐르고 빛이 돌아왔던 그 때에. 당신의 옆에 앉아 그 아름다운 축제의 빛을 내려다볼적에는 실은 너무도 눈이 부셔 눈을 감았더랬다. 지상의 빛이 아니라, 제 옆의 이와 그저 살아 돌아온 것이 너무도 기뻐서. 그 행복을 어찌하지 못하고 차라리 눈을 감았었다.

-모처럼의 휴가가 아니십니까. 하고픈 것이 없으십니까?

     제가 하고싶던 것은 실은 이미 이룬 상태였다. 저는 그 밤에서 온전히 빠져나오기를 빌었고, 제 소중한 이가 또한 온전히 빠져나오기를 빌었다. 어쩌면, 그와 함께 앉아 평화를 만끽하며 그 밤은 참 길었지요, 하고 실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랐었다. 그 당시의 저는 꿈같은 일이리라 생각했었지만, 이렇게 꿈이 눈앞에 펼쳐져있는 상태에서는. 지금이 낮이든, 밤이든. 먼곳에서 축제를 하든, 일상을 보내든. ...주위에 꽃이 아니라, 메마른 황야가 펼쳐져있다 하였어도.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지. 정말로 이상한 일이었다. 언젠가부터 눈앞의 이는 제게 어느것보다 우선되는 존재였다. 꿈에서, 상대가 매화 비녀를 빼앗아갈적에. 비녀보다도 먼저 그 붉은 매화 한송이에 손이 갔던 일을 기억했다. 향이 실은 제게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에, 제 삶에서 아껴왔던- 혹은 제가 아낀다고 생각하였던 마음조차 허상이 아닌가 하였던 때에. 그때에도 남아있던 당신의 향을 기억했다. 저는 꽃이 되고싶었다. 꽃이 되지 못하거든, 차라리 꽃에 파묻히고싶었다. 그게 자신의 염원이었거늘, 지금은 그저 소중한 이와 함께 있는 것 만이 염원이었다.





"지금의 그대도. 소녀가 가장 바라는 이 이옵니다."


     그가 어딘가로 떠날지, 머무를지를 고민하고있다 하였을 적에. 매는 문득 그에게 자신을 남기고 싶었다. 머물러준다면야 저로서는 더 바랄 일이 없었겠으나. ....혹여, 떠나게 된다면. 저를 기억할만한, 무언가를. 그 선물을 고르는 일은 꽤나 어려웠다. 그간의 선물은 그저 찻잎이나, 좋은 술이라던가. 아니면 상대가 좋아할 것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그는 향을 즐기지도 못하고. 부채는- 그에겐 이미 소중한 가족으로부터 받은 것이 있지 않았던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기뻐할지.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것이 부적이었다. 그대가 어디에 있든, 누구와 있든. 부디 건강히, 무탈히 지내달라고. 부적을 사자 검은 색의 작은 주머니를 덤으로 주었다. -주머니는, 따로 생각해둔 것이 있었다.

     본래는 향을 담는데 사용하는 향 주머니라 하였다. 속에는 마른 꽃잎과 기타 향을 내는 것들이 조금 들어있었다. 속의 것을 탈탈 비우고, 부적을 넣으니 꽤나 크기가 잘 맞았다. 새하얗고, 구석에 매화 자수가 새겨진. 그에게는 부적과 함께, 제 일부를 건네고 싶었다. ......제, 본래의 이름을.

     예전에 모란각에 와 처음 직원이 되고싶다 청할적에, 주인장에게 제 이름을 건네주고. 직원으로서 불릴 이름으로 혹 원하는 것이 있냐는 물음을 받은적이 있었다. 제 중심을 주시옵소서. 매라 불리고 싶사옵니다. 그리하여 백매화라는 이름을 건네고 매라는 이름을 받았었다. 아가, 매화야. 네가 태어날적에 흐드러진 흰 매화가 마치 눈처럼 흩날렸단다. 어머니의 웃음을 제 쪽진 머리에 고이 꽂아넣고. 천년이 되면 모란각을 떠나며 돌려받자, 다짐하였었다.

     어쩌면 그 다짐은, 비녀에서 매화향이 나기 시작하면서부터 흐려졌을지도 모른다. 매는 제가 천년을 살아 신이 되면 제 목숨보다 소중한 누군가를 수호하고. 그로 부터 기원-혹은 애정을 받고. 제가 그를 소중히 여기는 그 마음을 거짓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엇하러 반백년을 더 기다려야만 하는가? 저는 신은 아니었지만, 이미 원하던 모든 것을 갖추지 아니하였는가. 저는 여전히 구미호일 뿐이었지만. 소중한 이도, 애정도, 확신도. 그저 허상이 아니라, 눈앞에 전부 존재하지 않은가?

     매는 제 눈앞의 이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제일 부럽던 이였다가, 제 친우였다가. 친우가 아니었다가. 다시 친우였다가. 어느덧 소중한 이가 되어있었다. 당신에게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당신의 손을 잡았다. 





"...하오면, 소녀는 겨울의 끝자락을 붙잡겠사옵니다. 한손에는 그대의 손을 잡고, 나머지 손으로는 겨울을 붙잡아. 그대가 녹아 사라지지 않도록 잡고 또 잡겠나이다. 소녀는 더이상 꽃이 피는 봄을 바라지 않사옵니다. 그대와 함께하는 이 겨울이 제게는 봄인것을요. 언젠가 결국 시간이 흘러 봄이 찾아와, 우리가 작별을 고하는 날까지. 영영 놓지 않겠사옵니다."















(*이 아래는 후기..입니다)


안녕하세요 오너님... 고록.. 고록 받은때가 피시방에서 게임하던 중이었는데(죄송합니다) 받고 너무 기쁘고 행복하고 막 당황하고 얼른 답을 드리고싶고 막 그래서 얼른 집으로 뛰어와서 답록을 썼습니다...... 무엇보다 어서 답을 드리고싶은 마음이 제일 커서 막 글이 좀 이상할거에요 문맥도 안맞고 뭔가 내용이 뜬금없고(아니 생각해보니까 제 연성은 원래 그랬지만)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ㅠㅁㅠ

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저도 오너님과 비슷하게 앞으로 4월이후로는 취업준비 등으로 인해 조금... 활동이 어려워질것 같습니다.... 아예 금지가 되는건 아니고, 다만 꽤 줄이게 될거에요.(죄송합니다2)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답록으로 승락을 했냐 하신다면.... 그......

[이제는 말할수있다]

       저는
      무명이
   관캐입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ㅏㅏㅏㅏㅏㅏ 무명... 아니 월영이라고 해야할까요 너무... 너무너무 좋아요....... 본계에선 한번도 말을 안했는데 왜냐면 제 지인들이 관통소리를 듣는순간 지인의 지인까지 끌고와서 관통이십니까 하고 폭죽을 터트리고 놀려댈 사람들이기 때문에...... 너무 좋아서 자려다가도 멘션오면 답하고 다음 답 올까 기다리다 잠들고 막 대화 하고싶어서 기웃거리고 막 막... 누가 친구래... 메가베스트프렌드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입니다(왈칵) 고록받고 조금 소리지를뻔했어요 아닌가 질렀던가 그 즈음에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지금 후기쓰면서 막 정신이 돌아오고있는 기분입니다...

실은 제가 고록을 먼저 쓸까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고록을 쓰지 못하고 있었던 이유(죄송합니다3)가 뭐냐면 그..

  1. 제가 실은 이번이 첫 커뮤입니다(진짜로) 커뮤 비슷한건 해봤는데 정말로 커뮤를 해본건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트커는 지인들이 뛰자 재밌다 추천하길래 이번이 처음 도전을 해본건데 그래서 이런저런 실수도 좀 많이 하고... 그래서 굉장히 부족한 오너인지라... 이렇게 부족한 사람이 고백을 해도 괜찮을지 정말로 걱정이었어요... 진짜 아는거 없는 사람이라...
  2. 위에서 말씀드렸다시피, 4월정도가 되면 그때부터는 취업준비에 바쁠 것 같습니다... 물론 취업준비한다고 컴퓨터를 못하고 챙겨드리지도 못하고 이런건 아니지만 몸이나 마음이나 좀 바쁠것같아서 걱정이었어요.

저도 처음엔 진짜 아무 생각 없이 와 시리커에서 친구를 사귄대 이제 지옥의 사망플래그가 되겠구나 하하하 했는데 이게 사망플래그가 이렇게 꽂힐줄은 몰랐어요 로그 답멘은... 처음엔 로그를 주시길래 글로 답한거였는데...(이사람 아무생각없는 사람입니다 죄송합니다4) 정신차려보니까 로그 다 저장해놓고 하나하나 맨날 읽고있어 이게 어떻게된거야 했구요...(엉엉엉) 아니 분명 처음엔 와 첫커뮤다 와 신기하다 와 재밌다 하다가 어느순간 보니까 제가 로그핑퐁을 막 하고있고 위치대화하고있고 상대랑 멘션 주고받은거 막 읽으면서 멘션 기다리고 저혼자 ...? 하고 곰곰히 생각해보니까 그냥 치인거잖아 이거

아 그냥 다 거두절미하고(말이 많은 사람이라 죄송합니다5) 너무... 감사합니다...... 저희 딸이랑 잘 지내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앞으로도 부디 잘부탁드리겠습니다...(uu ) 친구야 오래오래 같이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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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이 없다는 것은, 걱정하였던 만큼 삶에 지장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온전한 눈과, 입과, 귀와 손이 있다면 생활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상대가 지나갈적에는 기척과 소리로 위치를 판단하고, 탕의 향을 준비하는 것 또한 지금의 상태로는 느긋히 온천을 즐기려는 이도 없거니와. 정 필요하거든 그저 이전에 일하였던 기억을 더듬어 아무 패를 받아다 향을 갈면 되는것이었다. 예전만큼 상대의 향에 어울릴만한 것을 골라 넣기는 어려울것이나, 그것은 그저 제 만족을 위한 것이기도 하였으니. 다만 차를 끓이는 일은 이전보다는 꺼리게 되었다. 그동안 해오던 것이 손에 남아 그럭저럭 양을 맞출수는 있으나, 혹여 향이 이전과는 다르면 어쩌지. 몇번을 꽃 차를 끓여다 불안해하는 이들에게 안겨줄까 생각하다 포기하기를 반복하니, 그 후에는 그저 제가 나서서 차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게 되었다.





    ......향이 없다는 것이 제 삶에 지장을 주지 아니한다는 것이, 되려 제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참으로 이상한 말으로 들릴지는 모르나, 매는 처음에 제가 후각을 잃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적에는. 마치 목숨만을 빼고 모든 것을 빼앗긴듯한 기분이었다. 꽃을 보아도, 다른 이를 보아도, 그 어디에서도 향을 맡을 수 없다. 이곳이 모란각이 아니었고, 동족들과 살고있었다면 이는 반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저를 해치려는 이들은 기척과 소리는 필사적으로 숨기려 들었지만, 오직 냄새만은 숨기지 못했기 때문에. 소리를 들었을 때는 이미 상대는 지척으로 다가와 제게 뛰어드는 중이었으니, 그 때가 되면 늦은것이다. 굳이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더라도, 그저 본래라면 창고의 식재료들 가운데 있는 마른 꽃들을 확인할 적에. 그곳에 남아있던 잠든 봄의 향이 더이상 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 제게 큰 지장이 되리라 생각하였는데. 무려, 제 삶에서 제가 제일 아끼는 꽃의 향을 잃은 것이 아니던가. 어째서 이리도 지장이 없는 것인가? 이리 멀쩡히 지낼것이라면, 애초에 제게 필요치 않았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제가 그동안 소중히 여기었던 마음들 또한, 겉치레일 뿐이고. 실은 별것도 아니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렇다면.
 
    혼란스러운 기분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지만. 동시에 제 상처를 더 알리고 싶지 않았다. 삶에 그다지 지장도 없는 것을, 구태여 누군가에게 이야기해 걱정을 늘릴 필요가 있는가? 제 이야기를, 오롯이 들어줄 이. ......매는, 겨울바람을 닮은 제 친우를 찾았다.





    그가, 제 상실의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말하였을 적에. 참으로 이기적이게도 매는 그 말에 위로를 받았다. 저조차도 모르는 상실의 깊이를, -혹은, 손톱으로 긁어낸 것보다 미미할지도 모르는 그 것을. 많이 힘들겠다 안되었다 위로해주는것보다는 차라리 모르겠다 말하여 주는것이 그저 고마웠다. 잠시 농을 건넬까 생각하였다. 소녀 또한 그러하옵니다. 향이 없이 얼마를 지내보니 그다지 영향을 끼치지도 않는듯 하여, 그저 이대로 언젠가 나으면 돌아올 것이고- 낫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것이려니 생각할까 싶사옵니다. 그리 말하려 생각하였거늘, 제 친우는.

    봄이 돌아올것이라 하였고. 제 마음을 거짓이 아니라 해주었다. 마치 제 속을 읽은듯이, 언제나와 같이. 매는, 그저 제 친우를 바라보았다. ...무명님은 언제나 너무하십니다. 어찌 그리 소녀의 속을 읽어보인단 말이옵니까? 구태여 소녀가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겠다 약속하지 않는다 하여도 무명님은 소녀의 말에서 거짓과 진실을 다 골라낼것만 같으니. 이리, 아무렇지 않게 알아내버리시니. 부러 투덜대는 목소리를 내고는 입을 다물었다. 잠시의 침묵 후에, 매는 고개를 깊이 숙여,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감사를 전했다.

    소녀에게, 봄을 들려주시어 감사하옵니다. 소녀의 마음을 거짓이 아니라 해주시어 감사하옵니다. 향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 해주시어 감사하옵니다. 무명님의 향이 소녀에게 봄을 되돌려주었사옵니다. ...그것이, 참으로 감사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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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줄 알았사옵나이다.

    깔깔,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매는, 제가 그 언젠가의 악몽처럼 칠흑같은 어둠 속에 서있음을 깨달았다. -아니, 온전한 어둠은 아니었다. 눈앞에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검게 땋아올린 머리에 붉은 눈. 다홍빛의 직원복. 긴 손톱을 지닌 저 자신이 서서 저를 바라보고있었다. 그 뒤에 쌓인 시체더미에서는, 언젠가와 같은 피내음이 났다.

-이리도 어리석으니, 그대는 또 약속을 어기지 아니하였사옵니까? 지키지 못할 말, 하지나 마시옵지.

    아. 거짓을 이야기한적은 없었으니 약속을 어긴것은 아니라 할것이지요? 상대의- 혹은 저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겐지. 어느새 또 악몽을 꾸는 것인가? 지끈, 머리가 아파오는 기분이었다. 매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뿌리며 제 머리를 손으로 짚었다. 이상하게도 피내음이 아주 가까이에서 나는 듯 했다. ......머리를 짚은 손을 타고, 무언가 흥건한 것이. 손목을 타고 붉은 것이 흘러내렸다. 어찌하여 이리 큰 상처가 난 것인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제 손을 살피는 매를 보고, '매'는 고개를 좌로 기울였다.

-기억이 나지 않사옵니까? 그 때, 싸움의 마지막에. 뒤로 휙- 하고. 무언가 잡아당기던 느낌을요.
"...아."

    그 마지막에, 정말로 이젠 끝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때에. 공격을 하려던 제 뒷덜미를 거세게 잡아당기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대로 끌려가, 쿵, 하고 시야가 흔들리고. 귓전의 이명과- 암전. ......결국, 저는 마지막에 그리 허무하게. 공격당해 쓰러져버렸던 것이리라. 그것을 깨닫자마자 매는 제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주저앉았다. ...걱정을, 또 시키게 되었구나.

-그러게, 기회가 한번 있었을 적에 그만두시지. 무얼 하겠다고 기어이 또다시 싸움에 뛰어들어 그리 허망하게 죽으셨단 말이옵니까? -아차, 말실수를. 그곳엔 죽음조차 드나들지 못하오니, 죽은것은 아니지요. 그저 죽을정도로 다치어 기절하셨을 뿐이옵고. 어느순간 정신이 들면 회복도 가능해지겠지요.
"......"
-그대는 요괴이니, 아침이 아무리 빨리 돌아오더라도 그 전에 죽지 않을 정도로는 회복하겠지요. 그리하면 또 어리석게 싸움에 끼여들어, 또 이리 다치고. 또 소녀에게 오겠지요?
"...그 입 다무시지요."
-어머나, 무서워라. 마치 새끼 여우가 하악질을 하는 듯 하오니, 무서워서 오금이 다 저리옵니다. 소녀의 말이 틀리었사옵니까? 제 목숨하나 간수도 못하는 팔푼이 주제에.

    차라리, 그 생을 소녀에게 주시지요. 태연한 목소리에 매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그대가 누구인데 생을 달라 하시옵니까. 그대는 그저 악몽의 조각이 아니옵니까? '매'는 눈웃음을 지었다. 소녀가 누구인질 아직도 모르겠사옵니까? 소녀는, 그대의 마음 깊은 곳에 묻혀버린. 본성이옵니다. 그대가 소녀를 흙과 꽃따위로 덮어 땅 속 깊이 매장하였거늘, 그 깊은 곳에서 나오느라 애를 좀 먹었지요. 하오나 이리 애써 나와보니, 그대는 그리 어리석게 생을 낭비하고있사옵고. 참으로 속이 미어지는 일이 아니겠사옵니까?

"그 사지를 잘게 찢어 사방에 던지기 전에, 얌전히 다시 묻었던 곳으로 돌아가시지요."
-말도 험하시긴.

    생글생글 웃는 '매'를 무시하고, 매는 그저 다시 얼굴을 감쌌다. 상대가 본성이든 무어든 중요하지 않았다. 저를 먹고 제 몸을 차지할 생각이었다면- 혹은 그럴 수 있었다면, 진작에 그리 했겠지. 제가 이리 빈틈을 보였는데도 무엇하러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고 이리 말로만 속을 긁어놓겠는가? 말뿐인 상대를 신경써봐야 저만 귀찮을 뿐이었다. 그보다 중요한것은. .......아. 매는 입술을 짓씹었다. 이리 하려던 것이 아니었는데. 이러려던 것이 아니었는데. 걱정을 끼치고싶지 않았는데. 그저, 모두 함께 살 생각으로.

-거짓말.

    이전의 생글대는 목소리와 다른, 살얼음이 뚝뚝 떨어지는 듯한 소리에 매는 놀라 상대를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웃음기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상대는 매서운 표정으로 저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대. 진심은 이리 하실 생각이시었지 않사옵나이까. 혹여나 최악의 최악이 오거든. 차라리 저가 다치자고. 상대의 마음이 다치는 것보다 제 마음이 다치는 것이 그리도 중요하여서. 소중한 이들의 몸만이라도 살리려는 생각이었겠지요. 저는 살든 죽든. -아차, 또 말실수를. 죽지 않는 곳이니, 그리 계속해서 써먹을 생각이었지요. 그대의 진심은 결국 그것이 아니었사옵니까?
"......"
-소녀에게 달라니까요. 소녀는 그대처럼 그리 허망하게 생을 내던질 생각이 없사오니, 그대보다는 훨씬 잘 살아남겠지요. 어쩌면 손이 남는다면, 그대의 소중한 이 한둘정도는 구해줄수도 있사옵고. 어짜피 반쯤 내놓은 목숨, 그냥 지금 필요한 이에게 주시지요. 소녀에게요. 삶에 무어 그리 미련이 남아 그러시옵니까?
"...미련?"

    대부분의 이야기를 흘려듣고 있었으나 그 말만은 흘려듣기가 어려웠다. 미련이라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리도 계속해서 느껴지는, 이 것들을 그저 미련이라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옵니까? 매는 구태여 상대에게 웃음을 숨기지 않았다. 무얼 그리 웃으시옵니까? 미간을 찌뿌리는 상대를 무시하고, 매는 눈을 감았다.

....누군가, 울며 미안하다고 되뇌이고 있다.
....누군가, 겨울 바람과 같은 이의 향이 난다.
....누군가, 제 손을 잡아주고. 따스함이 몸을 감싼다.

"-어찌 이 모든걸 버리고 삶을 내려둔단 말이옵니까? 소녀는 그에게 거짓을 이야기하지 않기로 약조하였사오니, 죽음에 휩쓸리지 아니하겠다는 말은 결코 거짓이 아니옵니다. 그대가 평생을 속삭여도 그대에게 소녀의 삶을 내어줄 일은 없사옵니다. 다시 말하지요. 묻었던 곳으로 돌아가시옵소서. 소녀는 그저 어리석게 살터이니."
-......

    날선 말을 기다렸지만 대답은 없고 그저 앞으로 다가오는 기척에, 매는 눈을 떴다. 어느새 눈앞까지 다가온 '매'가 저를 죽일듯 날카롭게 노려보다가 휙, 손을 뻗어 제 머리에 꽂은 비녀를 빼었다. 어찌나 강하게 빼내었던지, 흰 매화 비녀사이로 고정해두었던 붉은 매화가 툭, 바닥에 떨어졌다. 흘러내리는 제 머리도 무시하고 황급히 붉은 매화를 주워드는 사이, 비녀를 든 상대는 차분히 뒤로 물러났다.

-삶이 싫으시거든, 이걸 내놓으시지요.
"대체 무슨-"
-어디, 어리석게 살아보시옵소서. 소녀는 이 비녀와 함께 묘지로 돌아가, 그대가 소녀를 부를 날을 손꼽아 기다리도록 하옵지요.

    그러니, 지금은 보내드리겠사옵니다. 악몽은, 그 말로 끝이었다.




    매는 눈을 떴다. 머리가 깨질듯이 아팠고, 온몸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도 혈향이 나지 않으니 그저 세게 부딪혀 기절하였던 것이겠지. 제 스스로를 다독이며, 매는 조심스레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며 매화향을 찾았다. 악몽의 상대가 하필 매화 비녀를 빼앗아간것이 이상하게도 신경이 쓰였다. 매화 비녀에는 무명님이 주셨던 붉은 매화가 달려있으니, 가까이에 있다면 그 향이 나지 않을리가 없는데. ....어찌하여 이리도 향이 고요한 것인가?

    끙, 소리를 내고 상체를 일으키며 머리를 짚자 부드러운 천같은 것이 닿았다. 아마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덮은 천이리라. 아무 생각없이 손으로 천을 쥐고 내리자, 천에 묻어있는 것은. 고운 약재들과 제 머리에서 흘러내렸던 것임이 분명한 피.

"......아?"

    어찌하여, 눈앞에 약재와 피가 있는데. 어찌. 향이. 이리도. 고요한것인가? 매는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제 머리맡에는, 제가 찾아 헤매던 흰 매화비녀와 붉은 매화가 얌전히 놓여있었다. ......향은, 없었다. 매는 덜덜 떨며 비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이 떨려, 자꾸만 비녀를 놓쳤다. 간신히 비녀를 손아귀에 쥐고, 매는 붉은 매화를 제 코 밑에 가져다 대었다.

     ......그저 고요한, 바람만이 흘러들어올 뿐이었다.

    삶이 싫으시거든, 이걸 내놓으시지요. 어디, 어리석게 살아보시옵소서. 새된 웃음소리가 귓전을 울리는 듯 하였다. 매는 눈을 감고 이를 악물었다. 이런, 것으로. 겨우 이런 것으로 제 삶을 포기하고 그대를 부를줄 알고. 어림없는 소리. 어찌 향이 없다하여 꽃을 꽃이 아니라 할것인가. 봄을 봄이 아니라 할것인가.
 
   소녀는 살아남을것이옵니다. ...눈 뜬 어둠속에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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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우는, 본심을 조금 내놓자면. 실은 악귀가 나올 적마다 마음 한켠에서는 아주 조금은 기뻐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저. 제 본성이 여우이기 때문에. 본래 눈앞에 도망가는 것을 보면 쫓고싶고, 약하고 다친 것을 보면 사냥을 고민하고. 어머니의 영향으로 본성은 대부분이 마음 속 깊이 숨겨졌으나, 모란각이 어둠에 잠긴 이후로는. 이곳에서 나갈 수 없다는 답답함, 제가 아끼는 향들이 점차 사라져가고 혈향으로 가득할 적에 속에서 드는 불편함, 소중한 이들이 다쳤을 때의 슬픔, 평소라면 별것도 아니었을 악귀들로 인해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다는데 대한 분노. 이런 저런 부정적인 감정들이 응어리져, 그 것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을, 악귀 사냥을 통해 몸을 움직이며 해소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제 정기를 훔쳐간 놈을 마주하였을때, 참으로 기분이 좋아서. 여우는 아주 짧은 순간이나마 치료도 잊고 날뛰었더랬다.

    그러다, 악귀의 공격에 얻어맞아. 체력이 바닥까지 내려갔을 적에. 그제야 여우는 덜컥 겁이 났다. 어찌 약속을 잊을뻔 하고 이리 무모하게 굴었단 말인가. 다치지 말라, 죽지 말라 하였던 소중한 이들과의 약속을 잊고 이리도 어리석은 짓을 하였어. 어찌 제 목숨을 아끼질 않고. 상처를 줄 뻔 하였단 말인가. 악귀를 쓰러뜨린 후에, 정기를 주우며 문득 이리 쓰러진 것이 저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그 다음, 재하를 상대할 이를 고를적에. 여우는 저도 모르게 한발자욱 뒤로 물러났었다. ...마치, 저에게 선택지라도 있는 것처럼.

    결국에 전투를 하는 것은 그들 중 누군가였고, 제가 나가지 않는다면 그저 다른 이가 싸우고 다칠 뿐이다. 누구도 나가지 않는다면 모두가 죽음이 멈춘 이곳에서, 그저 고통을 받게 될 뿐이다. 이곳에는, 온전히 다치지 않고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섯중 둘을 고를적까지 여우는 입술을 깨물었고, 결국 마지막에 자원을 하려 하였으나. 비겁함의 벌이리라. 때를 놓친 여우는 그저 싸움을 보며 하늘에 기도를 올려야 할 뿐이었다. 결국은 둘이 쓰러지고나서야 싸움을 끝낼 수 있었지. 그를 보며 여우는 생각한 것이 있었다.

    눈앞의 이의 눈을 보고있자니, 그때의 생각이 읽힐것만 같아. 여우는 태연히 웃으며 눈을 내리깔았다. 칭찬을 바라는 듯 하시었기에 그리 하여드렸더니, 어찌 반응이 그러시단 말이옵니까? 농이 섞인 말을 한번 건네고는 그를 쓰다듬던 손을 내렸다. 수호신이 아니고서야, 어찌 태어날 적부터 누군가를 수호하기 위한 것을 모두 알겠사옵니까. 본래 태어날적에는 모두가 본성 외에는 손에 쥔 것 없이 태어나건대, 모든 이치를 바로 깨닫는다면 하늘의 상제님이시겠지요. 그저 삶을 살아가며 이리도 부딪쳐보고, 저리도 구르며 배우는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그리고는, 그제야 당신과 눈을 맞추고. 진심을 담아 미소지었다.



"...예. 소녀가 더는 거짓을 고하지 않겠다 약조하였지요. 하늘의 뜻 까지는 소녀도 알수없기에, 앞으로 한톨도 다치지 않겠다는 약조는 할 수 없사옵나이다. 그저 마지막 밤까지, 살아남겠사옵나이다. 아침이 오더라도, 죽음에 휩쓸리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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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우가, 모란각에서 일을 한지는 올해로 백오십해가 되어갔다. 그간 모란각에서 여우는 참 많은 일을 겪었더랬다. 꽃과 관련된 신, 요괴들을 볼적마다 그 빛깔이 곱고 참으로 향이 좋아, 매번 인사를 건네곤 하였다. 달고 좋은 것. 아름다운 빛깔. 그러다보니 여우는 어느새, 꽃이 지고나면 그 향이 사라지는것이 참으로 아쉬워 꽃이 가장 고울적에, 따다 모아 곱게 말린 후 차를 끓이곤 하였다. 따뜻한 차 위에 마른 꽃을 얹으면, 물기를 머금어 그 빛깔이 다시 고와지는 것. 여우는 마치 제 손으로 꽃에게 생을 다시 부여한 것 마냥, 그 오만한 기분이 퍽 좋았기에. 차를 나르는 일을 가장 즐겼다.

    그때에, 무어라 이야기를 나누었던가. 꽃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의 말에 손님이 꽃이 들으면 울 이야기이노라, 하며 아사율을 보았었지. 그저 살랑살랑, 부채로 가린채 웃는 그녀를 보며 저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어, 다급히 변명을 덧붙였더랬다. 그 이야기는 별 것 아닌 막을 내리었지만, 여우는 혹여 제 말이 그 붉고 고운 이의 기분을 상하게 하였을까 싶어. 제가 가장 선망하는 이의. 그리하여 여우는 그녀에게 인사를 받을 적에, 속으로 뛸듯이 기뻐 어쩔줄을 몰라하였다. 어쩌면 기쁜 심정이 조금은 새어나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그녀가 제게 도움을 청할 적에는, 꿈결을 걷는 기분에 참으로 기뻤다. 제가 꽃에게 도움이 될 수 있구나.
 
   빛은 참으로 향기롭고 향은 고와, 아. 매화를 선물받았을 적에는. 매화목이 여전히 꽃을 피우는 한 결코 시들지 않고 향을 피울, 봄이 지나고 여름이 가고, 가을, 겨울이 지나도. 언제나 아름다울 매화를. 여우는 매화를 품에 넣으면 바스라질까 두려워 고민끝에 제 비녀의 매화장식 사이에 꽂았더랬다. 여우는 언제나 꽃이 되고 싶었다. 그게 아니거든, 꽃에 파묻히고 싶었다. 제 손에 들어온 꽃이, 시들지 않을 꽃이 생겨났음에 여우는. 기쁘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리하여 여우는 그녀에게 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을 주었고. 그리고.

....그건, 상대가 그저 제가 아끼는 매화이기 때문이었나?

    여우는 어느 순간, 그녀에게 동백꽃차를 대접하고. 꽃 향에 든 제 기억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동백. 어머니.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세상에 나온 후, 여우는 단 한번도 동백꽃을 보며 제 어머니의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저 이 꽃을 좋아한다 말하면 될 것을. 어찌 그 꽃에 든 기억까지. 여우는 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꺼리는 편은 아니었다. 자랑스럽고 상냥한, 허나 동족들은 이상한 자이다 말하던 어머니. 여우는 제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는데엔 망설임이 없었다. 하지만, 제 중심이 매화이듯, 어머니의 중심이 동백꽃이었음을. 제 중심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임을. 그것을 말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별종. 이제는 언제 들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 말을, 제 입으로 말할 적에는 일종의 자조도 섞이었을 터였다.

-주어진 것 아닌 바깥에서 그를 찾은 것은 전혀 나쁜게 아니란다.

    그 단정한 목소리로, 다름이 무어가 나쁘냐고. 제 어머니의 꽃에 고개를 끄덕이고, 제 이름에도 칭찬을 해주는 이. 그런 이가 저를 친우와 같이 여겨버렸다 말하였을 적에. 여우는 혹여 저가 꿈을 꾸고있는 것이 아닌가 몇번을 의심하였더랬다. 긍정의 목소리는 떨리었고, 가슴은 두근두근 뛰었고. 그때 만큼은 향도, 붉은 빛깔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그저 보이는 것은, 당신의 웃음. 그리고 따스함. 그와 동시에,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알수없는 기분이 마음을 옥죄이고도 있었다. 이 기분을 무어라 칭하던가. 미안함. 송구함. 죄책감. 그것들이 마음 한켠을 쿡쿡 찔러대고 있었다. 처음, 그녀에게 다가갔을 적에. 여우는 그녀의 향과 빛깔밖에 보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 빛에 눈이 익숙해지고, 그 향에 코가 익숙해지고 나니. 그다음은 그저 아사율이었다. 그제야 아사율과 눈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그 기분은, 조금은 기쁘고. 굉장히 송구하고. 그러면서도 그녀와 눈을 마주한것이 기뻐서. 그래서 어쩌면 그녀에게 고해성사를 하였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당신을 볼적에 매화가 떠올라 무언가를 더 해주고 싶었으나. 지금은 그저 아사율이라고. 지금의 당신은 저에게 그저 아사율이 되었고, 그 것이 너무나 기쁘다고.





    
    아사율이었으나, 매화목의 신인 '아사율님'은 아니었던. 그의 낮고 고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 감히 묻겠습니다. 매님께서 친우가 되신 것은 매화목의 향에, 그 꽃잎에 이끌리시었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감히  당신을 멋대로 중히 여겨 이자가 멋대로 내비춘. 향도, 색도 없는 그 진심이란 것에 이끌리시었기 때문입니까. 여우는 문득 눈을 들어- 물기로 조금은 흐려진 시야로. 그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제 친우를 삼킨 이라고 생각하였다. 그 다음은 제 친우를 영영 없애버린 이라고 생각하였다. 헌데, 지금은. 지금은? 결국 그 물음끝에 여우가 알아낸 것은. 제 앞에 있던 이는 저에게 아침 인사를 건네었고. 제게 웃어주었으며. 제 어머니의 삶을 중한 것이라 말해주었고. 저같은 여우에게 매화가 잘 어울리는 이름이구나, 하였고. 저에게 진심을 내보인. ......결국은. 결국에는. 결국 제 눈앞의 이는 아사율이 아니던가. 제 친우가 아니던가.

"......소녀는. 예. 처음에는. 향에 끌리었지요. 그 향이 너무나 어여뻐 눈길을 주지 아니할 수가 없었사옵니다. 하온데, 향은 금세 코에 익숙해져 어느새 없던 것처럼 되어버리지요. 그런데도, 매화향이 사라진 후에도 소녀는 그대에게서 향을 맡았사옵니다. 그 향은 이상하게도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마음을 파고들어, 세상의 어떤 향과도 어울리지 않고. 코끝에서 사라지지 않았사옵니다. 색 또한 마찬가지이옵니다. 처음 눈길이 갔던 붉은 것은 어느새 사라지고, 그저 아사율이란 색이 마음자락에 남았지요."

    그리고 그 향이, 그대에게서 나고있고. 그 색이 그대를 감싸고 있사온데. 어찌 이것이 향도 색도 없다 하겠사옵나이까. ....소녀는 그 색과 향을 지닌 이와 친우가 된 것이옵니다. 담담히 대답하며, 여우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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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되고 싶었다.



1.


-어머니, 어머니! 보세요! 소녀가 숲에서 꽃을 따왔습니다!

   어린 여우가 품속 가득 이름 모를 붉은 꽃을 따 왔을 적에, 어머니는 웃으며 제 머리를 쓰다듬고는, 그 꽃을 화병에 담으며 어여쁘구나, 칭찬을 하셨다. 지금은 언제였던지도 기억나지 않을, 참으로 어리던 시절이었다. 여우는 칭찬이 기뻤다.

   숲속의 것을 잔뜩 가져오면 어머니가 좋아하신다. 처음으로 배운 것이었다. 여우는 새 꽃을 따왔다. 열매를 따왔다. 어여쁜 돌을 주워오고, 붉은 나뭇잎을 주워왔다. 어머니는 무엇 하나 버리지 않고, 꽃 장식을 만들어주시고, 열매를 맛좋게 요리해주시고, 돌과 나뭇잎으로 장식을 해주셨다. 여우는 쓰다듬이 기뻤다.

   어느날, 제가 힘이 더욱 강해졌을 적에. 여느 날처럼 숲속을 구경하다가 고목나무 밑에서 작은 토끼굴을 발견했다.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어린 생명들이 한가득 꼼질대고 있었다. 숲속의 것. 어머니가 종종 요리해주셨던 토끼. 어린 여우의 눈이 반짝였다. 여우는, 제 손톱을 꺼내들었다. 꼼질거리는 생명들은 전부 여우의 손에 죽었다. 아직 따스한 시신들을 품에 가득 안고, 여우는 신이 나 웃었다. 어머니가 칭찬을 해주실것이다. 쓰다듬어주실것이다. 오늘 저녁은 따뜻한 토끼요리겠지.

-어머니, 어머니! 보세요! 소녀가 숲에서 토끼들을 잡아왔습니다!

   그때 제 품의, 어린 생명들의 싸늘한 주검을 본 어머니의 얼굴이 어떠하였던가. 여우는 단 한번도 그리 무서운 어머니를 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불같이 화를 내시고, 내 너를 잘못 가르쳤구나, 어찌 이리 저항도 못하는 무고한 아이들을 그저 재미를 위해 죽이라 하였느냐, 생명이 귀한 줄을 모르고, 어찌, 어찌. 그 날 여우는 다시 없을 정도로 혼이 났고, 탈진할 정도로 울었고, 울면서 토끼의 시신들을 하나하나 묻고 무덤에 꽃을 바쳤다. 함께 무덤을 파며, 어머니는 조곤조곤 이르셨다.

-아가. 우리는 그 생이 필연적으로 다른 이의 희생을 요구하는 이들이건대, 희생을 당연시 여기고 그 본성에 따라 행하면 언젠가 분명 큰 화를 입을것이다. 네가 이리 행한것은, 이 어미가 그저 너를 오냐오냐하고 생의 중요함을 가르치지 못하였기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몰라 이리 행한것이겠지. 다시는 생명을 재미로 해치거나, 저항 않는 이를 죽이지 않겠다고 약조해다오. 그래주겠느냐?
-예, 소녀, 소녀가, 히끅, 잘못하였사옵니다, 부디, 소녀를, 흐윽... 미워하지 말아주시어요, 어머니...

   그날 이후로는 생명의 정기를 흡수하여 죽일 적에, 어머니는 생명의 명복을 위해 기도하라 일렀다. 여우는 그대로 따랐다. 여우에게 있어, 어머니는 유일한 가족이고 신이었고 하늘이었다. 감히 거스를 수 없는, 당연한 하늘의 이치. 여우는 의심조차 품지 않았다. 사냥을 할 적에는 온전히 다 자란 것을, 정기와 고기를 먹을 적에는 감사와 명복의 기도를. 놀이를 위하여 무언가를 사냥하는 것은 아니되고, 다른 이들의 생을 소중히 여기라. 그리 하면 어머니는 칭찬을 해주시었다. 그저 그것이 기뻤다.





2.


    여우가 제가 동족들과는 다르구나, 깨달은 것은 아주 후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세상구경을 할 즈음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여우는 집을 떠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더랬다. 그러다 저와 같은 구미호들을 만났고, 여우는 어머니 외의 동족을 만났음에 참으로 기뻐하였으나.

-쟤는 대체 뭘 하는거지?
-이상한 녀석이야. 식사를 먹기 전엔 무슨 기도도 한다지.
-겁쟁이, 고작 이런 사냥도 못하고. 우리 무리에서 썩 꺼져!

    꽃과 자연을 사랑하고, 생존 이외의 살생을 금하는 구미호. 동족들에게 별종이라 불리었다. 여우는 되려 그들이 이상했다. 어찌 재미를 위하여 인간의 간을 빼먹고, 어린 동물들을 사냥한단 말인가. 그저 사냥으로 고기를 먹고 정기를 흡수하여도 충분한것을. 하지만 대부분의 동족들은 그리 살았고, 그들은 여우가 틀리다 했다. 어찌하여? 소녀는 어머니의 말대로 살았을 뿐이온데. 여우는 물었지만 답하는 이는 없었다. 그제야 여우는 처음으로, 제 삶에 대한 궁금증이 들었다. 어찌하여 인간의 간을 먹으면 아니되옵니까? 사냥을 해 정기를 흡수하는것과, 간을 취하는 것은 무슨 차이옵지요? 배가 고파 사냥을 하는것과, 놀이를 위하여 사냥을 하는것은요? 소녀는 저 토끼를 쫓고싶사온데, 어찌하여 쫓으면 아니되옵니까? 물음은 많았지만, 대답해줄 어머니는 없었다. 여우는 그저 어머니가 생전에 해주었던 말을 짜맞추어, 대답을 기워낼 뿐이었다. 인. 의. 예. 지. 삶. 목숨. 존중. 배려. 여우는 어머니가 틀리었다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동족들에게 섞이지 못한 여우는 홀로 떠돌았다. 이리저리, 바람따라 물길따라. 그러다 모란각의 이야기를 들었다. 여우는 모란각으로 와 직원이 되어, 매梅가 되었다.





3.


    모란각에서는, 여우는 특이한 별종이 아닌, 그저 매였다. 친절한 직원이었고, 인간들에게도 퍽 상냥히 굴었다. 여우에겐 당연히 그리 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를 따르지 않으면, 아니될것만 같았다. 생명에 대한 예의를. 상대에 대한 존중을. 말을 할 적에는 세번을 고민했고, 혀에서 또다시 한번을 고민하였다. 그리하여 나온 옳은 말들. 바른 말들. 여우는 여전히 어려 가끔 실수도 하였지만, 꽤 제 생각을 포장할 줄을 알았다. 여우는 옳은 것에 집착했고, 제가 틀리다 생각이 되면 반드시 사과를 하여야만 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누구에게나 정을 주었다. 정을 주고, 정을 준 상대가 떠나는 것을 수차례 보았지만 그또한 신경쓰지 않았다. ...신경쓰지, 않은 척 하였다.

-모든 생에는 끝이 있는 법이니, ...너무 신경쓰지 말거라. 이 어미는 행복한 삶을 살았고, 그 끝에 너를 두었으니 미련은 없단다. .....이 어미가 죽은 후에, 오래 슬퍼하지 말고. 행복한 기억들을 떠올려다오.
-예, 그리, 그리 하겠사옵니다, 어머니.......

    정을 준 상대가 떠나갈적에, 어찌 하여야 하는가? 마음에 남겨진 빈 방을, 그 허전함을. 어찌 달래야 하는가? 여우는 그 또한 어머니의 말을 짜맞추었다. 여우는 그저 웃으며 행복했던 기억을 끌어안고, 빈 방의 문을 영영 잠갔다. 상처와 허전함은 조금 남았지만, 그 방법은 꽤나 나쁘지 않았던 듯 하였다. 상대에게 방을 주고, 빈 방을 걸어 잠그고. 그저 반복하였다. 어느 방은 컸고, 어느 방은 작았지만. 어렵지 않았었다. ....어렵지, 않았사온데.





0.
꽃이, 피었사온데.

-지난 밤, 무사히 보내시었는가.
-내 매화목을 관장하는 아사율이란다. 그대의 이름을 물어도 되겠는가?
-...어쩌면, 내 감히 저도 모르는 사이 그대를 친우와 같이 여겨버린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매화향이 가득 나던, 붉은 매화꽃이 핀 방이 있었다. 매화는 여우의 중심이었고, 어머니로부터 받은 소중한 꽃이었다. 여우는, 매화목의 신을 본 순간 그녀를 아주 좋아하게 될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시야에 들어오는 어느 하나가,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다. 매화목의 신은 저의 이름을 칭찬하였고, 제게 매화꽃을 선물하였고. 함께 차를 마시었으며. -또한 친우라 불러주는 이였다. 여우는 속절없이 매화향에 빠져들었다.

    .....그 때에, 기분이 어떠하였던가. 제 친우가 실은 무명, 이라 하는. 아사율의 동생이었고. 아사율의 흉내를 내었을 뿐이었다는 사실을 들었을 적에. 매화향만 남은채 텅 빈 방을 보고 여우는 참으로 화가 많이 나, 무명의 멱살이라도 잡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여우의 속에서는 물음이 들었다.

    그대가, 진짜 아사율을 본 적도 없건대. 무엇에 대한 화를 내는것인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친우를, 사라지게 한 것에 대한 화인가? 그리하다면 그저 친우가 먼 길을 떠난것과 무엇이 다른가?

     여우는. 세번을 생각하였고. 한번을 다시 생각하였다. 저는 '아사율'을 친우로 대하였고, 어쩌면 시간을 되돌려 처음으로 돌아간다 하여도 아사율에게 말을 걸고. 그녀와 차를 마시고. ...또다시 정을 주었을 것이다. 그게 진짜 아사율이 아닌, 아사율의 탈을 쓴 무명이라 하여도. 제 친우는 그저 멀리 떠난것이다. 여우는 그리 마음을 다잡으며 매화향의 방 문을 닫았다. 이제는 그저, 문을 잠그면 되는 일이었다.

"...미안합니다."

    문틈새로, 소리가 흘러나온 기분이었다. 어찌 그 말을 하였단 말인가. 이제는 그저 잠그기만 하면 되는것을. 전처럼, 그저 잠그기만 하면. 어찌하여. 그리 정중히 고개를 숙여 제게. 미안하다고. .......꽃은, 떨어져버렸사온데.

"......"

    여우는, 고개를 숙였다. 툭, 한방울. 두방울. 저도 모르게 떨어진 눈물이 멈출줄을 몰랐다. 제 얼굴을 가릴줄도 모르고, 그저 선 채로. 제 친우였던 이 앞에서, 여우는 숨죽여 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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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메... 많이... 아껴요....ㅠㅁㅠ... 진짜진짜 멘션으로 보내려고했는데 길어서 급히 이걸로 썼습니다... 가독성... 나쁘다... 멘션... 슬프다... 140자...)







"-저때문에 마음쓰지 마시고 쉬셨으면 좋겠습니다."

    유메와 마주한 매의 눈동자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다가 시선을 맞추지 못한채 아래로 향했다. 여전히 소매를 꼭 쥔 채, 무언가. 유메에게 건넬 말을. 무언가 좋은 말을. 유메의 마음을 돌릴 말을. 떠올리려다가 생각이 멈추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란말인가? 친우에게, 그저 좋은 말만 하여 무얼 하려고. 다 필요 없다. 문득 절로 벌려진 입이 멋대로 속의 단어를 내뱉았다.

"......요괴에. 좋고 나쁨이 대체 어디에 있답니까."

    한번 나온 말은 멈출줄을 몰랐다. 평소의 말투와는 다른, 화로 가득 찬 말투였다. 퉁명스럽고, 상냥하지 않은. 이를 악물은듯 한, 물기가 서린듯한. 매는 그저 말을 이었다.

"애초에 우리의 탄생이 기쁨이 아니었을진대, 가족이 아니면 태어남을 축복하긴 커녕 또 태어나지 말아야 할것이 생기었다며 수근대지요. 대체 누가 좋은 요괴이옵니까. 좋은 요괴라는 것이 있기는 하옵니까? 그것은 누가 정하는 것이옵니까. 구미호가 살생을 금하고 본성을 외면하면 좋은 요괴이고, 본성대로 사냥을 하면 나쁜 요괴이옵니까? 하오면 소녀는 좋은 것입니까, 나쁜 것입니까?"

    소녀는 유메님이 그저 좋은 요괴인듯 하기 때문에 친우관계를 맺고자 하려는 것이 아니옵니다!! 매는 소리쳤다. 좋은게 무어란 말인가. 입바른것, 보기 좋은것. 그런것을 따질 것이라면 요괴 자체가 나쁜 것이니 애초에 제 숨통을 끊었어야 마땅한 것이 아닌가.

"차라리 소녀에게. 처음부터 친우가 되지 못할 것 같았다 말을 하여주시지. 어찌하여 마음자락을 내보이고는 매정히 닫으려 하시옵니까? -예, 소녀 또한 악몽을 꾸었사옵니다. 참으로 두려운 것이 다시는 보고싶지 않아, 괜찮다 괜찮다 하면서도 꿈에서 깨었을 적에 온 몸이 떨렸사옵니다!! 하온데, 그게 대체 다 무슨 상관이랍니까. 유메님이 칼을 하나 들고있었는데, 모르는 이가 갑자기 부딪혀 와 떨어뜨려 칼이 바닥에 튀어 소녀의 다리에 생채기가 났사옵니다. 대체 그게 누구의 탓입니까. 그것도 유메가 칼을 단단히 잡지 못한 탓이라 하실 생각이시옵니까? 아닙니다. 피하지 못한 소녀의 탓이지요!!!! 억지라고 생각되시옵니까? 지금 소녀의 생각이 그렇사옵니다."

    말도 안되는, 어린아이같은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매는 알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좋은 요괴. 나쁜 요괴. 친우. 악몽. 백귀의 밤. 전부 부글부글 끓어올라, 멋대로 뒤섞여 입밖으로 토해지는 말들. 매는 여전히 어리고 어리석었기에. 제 생을 살아가기 바쁜 요괴였기에. 결국은 똑같이 이기적인 요괴인지라. 말을 멈추고 숨을 고르다가, 다시 나온 목소리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차라리. 제가 마음에 들지 않아 친우가 되고싶지 않다 말해주세요. 이대로는, 소녀는 절대 납득하지 않고 영영 유메를 쫓아다닐 것이옵니다."

    매의 온 몸이 떨려왔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것 같은 느낌을 꾹 참고, 매는 그저 소매를 쥔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것은 제 도박이었다. 꽃점을 치는 기분이었다. 친우가 된다. 되지 않는다. 된다. 되지 않는다. 된다. 되지 않는다- 유메의 대답을 기다리며, 그저. 마음속 꽃잎을 하나 둘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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