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명이가 아사율에게 돌아가 홍매화 백매화로 나뉘기 위해서, 모란각을 잠시 떠나는 시점으로 잡았습니다. 서로 마음을 확인한지는 열흘째가 되었고, 명이가 아사율에게 떠나는 날이에요!)






     평안하시나이까. 소녀, 매이옵니다.

     이리 인사를 올리는 것은 그대가 보기에는 꽤나 이상한 일일지도 모르겠사옵니다. 소녀가 이 서신을 쓰는 시각은 밤이오나, 곧 아침이 되면 소녀의 손으로 그대에게 건네어질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대는 모란각을 떠나자마자 이 서신을 펼쳐볼수도 있고, 혹은 기나긴 여로끝에 묵게된 어느 이름모를 여관방에서 휴식을 취하며 이 서신을 펼쳐볼수도 있겠지요. 어느쪽이든 소녀의 손으로 직접 그대에게 전해드린 서신이건대, 이리 첫인사에 소녀의 이름을 다시 적는것은 어찌보면 의미없는 일일듯도 하옵니다.
    
     소녀의 휴가도 곧 끝이 나옵고, 그리되면 소녀는 다시 모란각에서 일을 시작하겠지요. 아직 향은 돌아오지 않아 일이 다소 걱정이 되긴 하오나, 어쩌면.. 아주 어쩌면 머지않아 향이 돌아올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사옵니다. 간밤에 창고를 잠시 정리할적에, 민들레의 꽃잎주머니를 다루었사온데, 그중 하나가 어쩐지 다른 느낌이 들어 안을 살피어보니 민들레가 아닌 국화가 잘못 들어가있었사옵니다. 다른 느낌이 들었던 것이 혹여 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신이 나 꽃차를 끓여보았으나 향을 느끼지는 못하였지만... 모란각의 바깥과 안, 첫층과 다섯째층을 다닐 적에 조금씩 다른 기운을 느끼고 있사옵니다. 어쩌면, 이 서신을 적고난 후 자고 일어날적에 비녀에서 매화향을 다시 맡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옵지요. 그대가 떠나기 전 조금이라도 기쁜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다면 좋겠사오나. 그것까지는 욕심이겠지요?

     참으로 기쁜 열흘이었사옵니다. 그 밤이 떠나고 낮이 찾아오고, 소녀가 그대의 손을 잡은 후로 벌써 열흘이나 지난것이 참으로 신기하옵니다. 눈을 감으면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건대, 그대가 없었더라면 어쩌면 그 일들은 꿈이 아니었을까 생각하였을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지난 열흘은 마치 따스한 봄날, 흐드러진 꽃나무 아래 누워 낮잠을 청하는 듯 참으로 평온하고 행복하였사옵니다. 소중한 정인이 생긴것이 이리 행복한 일일줄은 미처 알지 못하였으니 아직도 소녀는 삶에서 배울 것이 많겠지요.

     그대는 소녀에게, 이 여행길이 얼마나 걸리게 될지 스스로도 알지 못하기에 아주 조금을 기다려야 할수도, 혹은 수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할수도 있다 하셨지요. 소녀는 실은 그때 그대에게 여행길에 소녀를 데려가달라 청하고 싶었사옵니다. 이리 따스한 손길을 알지 못하였을때의 기다림은 소녀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사옵니다. 그저 문을 닫고, 언젠가 상대가 문을 두드릴때까지 소녀의 집 안에서 그저 상대가 피워낸 꽃에 물을 주고있으면 되는 것이었지요. 하오나 그대의 따스함을 알고나서는, 그대에게로의 문은 사라진지 오래이옵니다. 그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저 집안에 앉아, 빈 길을 바라보며 계속하여 그대를 기다리려 생각하니 참으로 막막하고 가슴 한켠이 서늘하여. 그대를 그저 기다리는 일보다는 함께 가는 일이 나을까 생각하였사옵니다.

     하오나 그대는 그저 여행을 가는것이 아니지요. 그대는 아마 아사율님께로 돌아가 아사율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될것이옵니다. 소녀가 뵈었던 아사율이라면 그대를 용서하고 이전과 같이 대하리라 생각하였사오나, 그렇지 아니하여 어떤 상황이 오게 되더라도 그대는 이전과는 다른 선택을 하겠지요. 그 길은 소녀가 함께할수도 없고, 함께하여서도 아니되는 오로지 그대의 몫이라 생각하였사옵니다. 소녀가 아사율님과 인사를 나누게 되오는 일은, 그보다 먼 미래에 이루어지겠지요.

     그 끝나지않던 밤, 그대는 소녀의 소중한 이를 지키겠다 약조한 바 있었지요. 또한 그대는 아사율님께 다녀오겠다 말하였던 때에 언제가 되건 돌아오겠다 하였사옵니다. 그 약조들을 믿고 소녀는 이곳 모란각에서 기다리겠나이다. 계절이 지나, 고요한 봄에서 더운 여름이 오고. 건조한 가을을 지나 그대와 함께하는 따스한 겨울이 올때까지. 부디 평안하소서. 소녀의 소중한 정인. 소녀의 신. 유일한 소망. 봄보다 따스한 겨울. 무명. 그대와 다시 만날 그날을 기다리겠나이다. 언제나 그대의 한 손을 소녀가 잡고있음을 잊지마시옵소서.





     새하얀 종이위에 이리저리 붓이 춤을 추며 글자를 새기었다. 매는 마지막 온점을 찍고, 붓을 내려놓았다. 제 소중한 이에게 건네는 서신이었으니 기왕이면 더욱 어여쁜 종이에 어여쁜 글씨체로 적고싶었지만, 제가 할수있는 최선의 어여쁨은 이정도가 다였다. ......알아볼 수 있을 정도면 되었지. 애써 스스로를 다독인 매는 먹이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곱게 접어 봉투에 서신을 담았다. 봉투를 봉하여 제 머리맡에 두고나서야 기지개를 한번 펴고, 문득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늘에는 어둠이 가득했지만 반쯤 차오른 달이 그 끝에 걸려있었다. 매는 저와 같은 건물 안에 있을, 잠을 자지 않는 제 정인을 떠올렸다.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옵니까.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옵니까. 어쩌면 그대도 소녀처럼 저 달을 보고있을런지. 그렇다면 우리는 같은 달 아래에 있으니, 함께 있는 것이겠사옵니다. 후후, 조금 웃은 매는 손을 모아 제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소녀의 곁에, 함께 머물러주어 감사하옵나이다. 소녀에게, 참으로 소중한 애정을. 그 마음을 소녀에게 주시어 감사하옵나이다. 이 계절이 돌아올적까지, 부디 무명님을 부탁드리겠사옵니다. 소녀도 이 마음과 함께 그대를 기다릴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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