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되고 싶었다.



1.


-어머니, 어머니! 보세요! 소녀가 숲에서 꽃을 따왔습니다!

   어린 여우가 품속 가득 이름 모를 붉은 꽃을 따 왔을 적에, 어머니는 웃으며 제 머리를 쓰다듬고는, 그 꽃을 화병에 담으며 어여쁘구나, 칭찬을 하셨다. 지금은 언제였던지도 기억나지 않을, 참으로 어리던 시절이었다. 여우는 칭찬이 기뻤다.

   숲속의 것을 잔뜩 가져오면 어머니가 좋아하신다. 처음으로 배운 것이었다. 여우는 새 꽃을 따왔다. 열매를 따왔다. 어여쁜 돌을 주워오고, 붉은 나뭇잎을 주워왔다. 어머니는 무엇 하나 버리지 않고, 꽃 장식을 만들어주시고, 열매를 맛좋게 요리해주시고, 돌과 나뭇잎으로 장식을 해주셨다. 여우는 쓰다듬이 기뻤다.

   어느날, 제가 힘이 더욱 강해졌을 적에. 여느 날처럼 숲속을 구경하다가 고목나무 밑에서 작은 토끼굴을 발견했다.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어린 생명들이 한가득 꼼질대고 있었다. 숲속의 것. 어머니가 종종 요리해주셨던 토끼. 어린 여우의 눈이 반짝였다. 여우는, 제 손톱을 꺼내들었다. 꼼질거리는 생명들은 전부 여우의 손에 죽었다. 아직 따스한 시신들을 품에 가득 안고, 여우는 신이 나 웃었다. 어머니가 칭찬을 해주실것이다. 쓰다듬어주실것이다. 오늘 저녁은 따뜻한 토끼요리겠지.

-어머니, 어머니! 보세요! 소녀가 숲에서 토끼들을 잡아왔습니다!

   그때 제 품의, 어린 생명들의 싸늘한 주검을 본 어머니의 얼굴이 어떠하였던가. 여우는 단 한번도 그리 무서운 어머니를 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불같이 화를 내시고, 내 너를 잘못 가르쳤구나, 어찌 이리 저항도 못하는 무고한 아이들을 그저 재미를 위해 죽이라 하였느냐, 생명이 귀한 줄을 모르고, 어찌, 어찌. 그 날 여우는 다시 없을 정도로 혼이 났고, 탈진할 정도로 울었고, 울면서 토끼의 시신들을 하나하나 묻고 무덤에 꽃을 바쳤다. 함께 무덤을 파며, 어머니는 조곤조곤 이르셨다.

-아가. 우리는 그 생이 필연적으로 다른 이의 희생을 요구하는 이들이건대, 희생을 당연시 여기고 그 본성에 따라 행하면 언젠가 분명 큰 화를 입을것이다. 네가 이리 행한것은, 이 어미가 그저 너를 오냐오냐하고 생의 중요함을 가르치지 못하였기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몰라 이리 행한것이겠지. 다시는 생명을 재미로 해치거나, 저항 않는 이를 죽이지 않겠다고 약조해다오. 그래주겠느냐?
-예, 소녀, 소녀가, 히끅, 잘못하였사옵니다, 부디, 소녀를, 흐윽... 미워하지 말아주시어요, 어머니...

   그날 이후로는 생명의 정기를 흡수하여 죽일 적에, 어머니는 생명의 명복을 위해 기도하라 일렀다. 여우는 그대로 따랐다. 여우에게 있어, 어머니는 유일한 가족이고 신이었고 하늘이었다. 감히 거스를 수 없는, 당연한 하늘의 이치. 여우는 의심조차 품지 않았다. 사냥을 할 적에는 온전히 다 자란 것을, 정기와 고기를 먹을 적에는 감사와 명복의 기도를. 놀이를 위하여 무언가를 사냥하는 것은 아니되고, 다른 이들의 생을 소중히 여기라. 그리 하면 어머니는 칭찬을 해주시었다. 그저 그것이 기뻤다.





2.


    여우가 제가 동족들과는 다르구나, 깨달은 것은 아주 후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세상구경을 할 즈음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여우는 집을 떠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더랬다. 그러다 저와 같은 구미호들을 만났고, 여우는 어머니 외의 동족을 만났음에 참으로 기뻐하였으나.

-쟤는 대체 뭘 하는거지?
-이상한 녀석이야. 식사를 먹기 전엔 무슨 기도도 한다지.
-겁쟁이, 고작 이런 사냥도 못하고. 우리 무리에서 썩 꺼져!

    꽃과 자연을 사랑하고, 생존 이외의 살생을 금하는 구미호. 동족들에게 별종이라 불리었다. 여우는 되려 그들이 이상했다. 어찌 재미를 위하여 인간의 간을 빼먹고, 어린 동물들을 사냥한단 말인가. 그저 사냥으로 고기를 먹고 정기를 흡수하여도 충분한것을. 하지만 대부분의 동족들은 그리 살았고, 그들은 여우가 틀리다 했다. 어찌하여? 소녀는 어머니의 말대로 살았을 뿐이온데. 여우는 물었지만 답하는 이는 없었다. 그제야 여우는 처음으로, 제 삶에 대한 궁금증이 들었다. 어찌하여 인간의 간을 먹으면 아니되옵니까? 사냥을 해 정기를 흡수하는것과, 간을 취하는 것은 무슨 차이옵지요? 배가 고파 사냥을 하는것과, 놀이를 위하여 사냥을 하는것은요? 소녀는 저 토끼를 쫓고싶사온데, 어찌하여 쫓으면 아니되옵니까? 물음은 많았지만, 대답해줄 어머니는 없었다. 여우는 그저 어머니가 생전에 해주었던 말을 짜맞추어, 대답을 기워낼 뿐이었다. 인. 의. 예. 지. 삶. 목숨. 존중. 배려. 여우는 어머니가 틀리었다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동족들에게 섞이지 못한 여우는 홀로 떠돌았다. 이리저리, 바람따라 물길따라. 그러다 모란각의 이야기를 들었다. 여우는 모란각으로 와 직원이 되어, 매梅가 되었다.





3.


    모란각에서는, 여우는 특이한 별종이 아닌, 그저 매였다. 친절한 직원이었고, 인간들에게도 퍽 상냥히 굴었다. 여우에겐 당연히 그리 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를 따르지 않으면, 아니될것만 같았다. 생명에 대한 예의를. 상대에 대한 존중을. 말을 할 적에는 세번을 고민했고, 혀에서 또다시 한번을 고민하였다. 그리하여 나온 옳은 말들. 바른 말들. 여우는 여전히 어려 가끔 실수도 하였지만, 꽤 제 생각을 포장할 줄을 알았다. 여우는 옳은 것에 집착했고, 제가 틀리다 생각이 되면 반드시 사과를 하여야만 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누구에게나 정을 주었다. 정을 주고, 정을 준 상대가 떠나는 것을 수차례 보았지만 그또한 신경쓰지 않았다. ...신경쓰지, 않은 척 하였다.

-모든 생에는 끝이 있는 법이니, ...너무 신경쓰지 말거라. 이 어미는 행복한 삶을 살았고, 그 끝에 너를 두었으니 미련은 없단다. .....이 어미가 죽은 후에, 오래 슬퍼하지 말고. 행복한 기억들을 떠올려다오.
-예, 그리, 그리 하겠사옵니다, 어머니.......

    정을 준 상대가 떠나갈적에, 어찌 하여야 하는가? 마음에 남겨진 빈 방을, 그 허전함을. 어찌 달래야 하는가? 여우는 그 또한 어머니의 말을 짜맞추었다. 여우는 그저 웃으며 행복했던 기억을 끌어안고, 빈 방의 문을 영영 잠갔다. 상처와 허전함은 조금 남았지만, 그 방법은 꽤나 나쁘지 않았던 듯 하였다. 상대에게 방을 주고, 빈 방을 걸어 잠그고. 그저 반복하였다. 어느 방은 컸고, 어느 방은 작았지만. 어렵지 않았었다. ....어렵지, 않았사온데.





0.
꽃이, 피었사온데.

-지난 밤, 무사히 보내시었는가.
-내 매화목을 관장하는 아사율이란다. 그대의 이름을 물어도 되겠는가?
-...어쩌면, 내 감히 저도 모르는 사이 그대를 친우와 같이 여겨버린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매화향이 가득 나던, 붉은 매화꽃이 핀 방이 있었다. 매화는 여우의 중심이었고, 어머니로부터 받은 소중한 꽃이었다. 여우는, 매화목의 신을 본 순간 그녀를 아주 좋아하게 될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시야에 들어오는 어느 하나가,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다. 매화목의 신은 저의 이름을 칭찬하였고, 제게 매화꽃을 선물하였고. 함께 차를 마시었으며. -또한 친우라 불러주는 이였다. 여우는 속절없이 매화향에 빠져들었다.

    .....그 때에, 기분이 어떠하였던가. 제 친우가 실은 무명, 이라 하는. 아사율의 동생이었고. 아사율의 흉내를 내었을 뿐이었다는 사실을 들었을 적에. 매화향만 남은채 텅 빈 방을 보고 여우는 참으로 화가 많이 나, 무명의 멱살이라도 잡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여우의 속에서는 물음이 들었다.

    그대가, 진짜 아사율을 본 적도 없건대. 무엇에 대한 화를 내는것인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친우를, 사라지게 한 것에 대한 화인가? 그리하다면 그저 친우가 먼 길을 떠난것과 무엇이 다른가?

     여우는. 세번을 생각하였고. 한번을 다시 생각하였다. 저는 '아사율'을 친우로 대하였고, 어쩌면 시간을 되돌려 처음으로 돌아간다 하여도 아사율에게 말을 걸고. 그녀와 차를 마시고. ...또다시 정을 주었을 것이다. 그게 진짜 아사율이 아닌, 아사율의 탈을 쓴 무명이라 하여도. 제 친우는 그저 멀리 떠난것이다. 여우는 그리 마음을 다잡으며 매화향의 방 문을 닫았다. 이제는 그저, 문을 잠그면 되는 일이었다.

"...미안합니다."

    문틈새로, 소리가 흘러나온 기분이었다. 어찌 그 말을 하였단 말인가. 이제는 그저 잠그기만 하면 되는것을. 전처럼, 그저 잠그기만 하면. 어찌하여. 그리 정중히 고개를 숙여 제게. 미안하다고. .......꽃은, 떨어져버렸사온데.

"......"

    여우는, 고개를 숙였다. 툭, 한방울. 두방울. 저도 모르게 떨어진 눈물이 멈출줄을 몰랐다. 제 얼굴을 가릴줄도 모르고, 그저 선 채로. 제 친우였던 이 앞에서, 여우는 숨죽여 울 뿐이었다.


'자캐 > 백매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심의 조각  (0) 2018.08.10
여우는 꽃을 보았다.  (0) 2018.08.10
여우는 꿈자락을 쥐었다.  (0) 2018.08.10
여우는 매화나무 근처에 앉았다.  (0) 2018.08.10
여우의 꿈  (0) 2018.08.1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