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는, 본심을 조금 내놓자면. 실은 악귀가 나올 적마다 마음 한켠에서는 아주 조금은 기뻐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저. 제 본성이 여우이기 때문에. 본래 눈앞에 도망가는 것을 보면 쫓고싶고, 약하고 다친 것을 보면 사냥을 고민하고. 어머니의 영향으로 본성은 대부분이 마음 속 깊이 숨겨졌으나, 모란각이 어둠에 잠긴 이후로는. 이곳에서 나갈 수 없다는 답답함, 제가 아끼는 향들이 점차 사라져가고 혈향으로 가득할 적에 속에서 드는 불편함, 소중한 이들이 다쳤을 때의 슬픔, 평소라면 별것도 아니었을 악귀들로 인해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다는데 대한 분노. 이런 저런 부정적인 감정들이 응어리져, 그 것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을, 악귀 사냥을 통해 몸을 움직이며 해소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제 정기를 훔쳐간 놈을 마주하였을때, 참으로 기분이 좋아서. 여우는 아주 짧은 순간이나마 치료도 잊고 날뛰었더랬다.

    그러다, 악귀의 공격에 얻어맞아. 체력이 바닥까지 내려갔을 적에. 그제야 여우는 덜컥 겁이 났다. 어찌 약속을 잊을뻔 하고 이리 무모하게 굴었단 말인가. 다치지 말라, 죽지 말라 하였던 소중한 이들과의 약속을 잊고 이리도 어리석은 짓을 하였어. 어찌 제 목숨을 아끼질 않고. 상처를 줄 뻔 하였단 말인가. 악귀를 쓰러뜨린 후에, 정기를 주우며 문득 이리 쓰러진 것이 저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그 다음, 재하를 상대할 이를 고를적에. 여우는 저도 모르게 한발자욱 뒤로 물러났었다. ...마치, 저에게 선택지라도 있는 것처럼.

    결국에 전투를 하는 것은 그들 중 누군가였고, 제가 나가지 않는다면 그저 다른 이가 싸우고 다칠 뿐이다. 누구도 나가지 않는다면 모두가 죽음이 멈춘 이곳에서, 그저 고통을 받게 될 뿐이다. 이곳에는, 온전히 다치지 않고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섯중 둘을 고를적까지 여우는 입술을 깨물었고, 결국 마지막에 자원을 하려 하였으나. 비겁함의 벌이리라. 때를 놓친 여우는 그저 싸움을 보며 하늘에 기도를 올려야 할 뿐이었다. 결국은 둘이 쓰러지고나서야 싸움을 끝낼 수 있었지. 그를 보며 여우는 생각한 것이 있었다.

    눈앞의 이의 눈을 보고있자니, 그때의 생각이 읽힐것만 같아. 여우는 태연히 웃으며 눈을 내리깔았다. 칭찬을 바라는 듯 하시었기에 그리 하여드렸더니, 어찌 반응이 그러시단 말이옵니까? 농이 섞인 말을 한번 건네고는 그를 쓰다듬던 손을 내렸다. 수호신이 아니고서야, 어찌 태어날 적부터 누군가를 수호하기 위한 것을 모두 알겠사옵니까. 본래 태어날적에는 모두가 본성 외에는 손에 쥔 것 없이 태어나건대, 모든 이치를 바로 깨닫는다면 하늘의 상제님이시겠지요. 그저 삶을 살아가며 이리도 부딪쳐보고, 저리도 구르며 배우는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그리고는, 그제야 당신과 눈을 맞추고. 진심을 담아 미소지었다.



"...예. 소녀가 더는 거짓을 고하지 않겠다 약조하였지요. 하늘의 뜻 까지는 소녀도 알수없기에, 앞으로 한톨도 다치지 않겠다는 약조는 할 수 없사옵나이다. 그저 마지막 밤까지, 살아남겠사옵나이다. 아침이 오더라도, 죽음에 휩쓸리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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