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구구, 낡은 신음을 내며 본성 구석에 아무렇게나 드러누웠다. 거지꼴을 한 채 본성 구석에 당당히 자리잡고있는 무뢰배를 보는 이들의 시선은 꽤 곱지는 않았다. 누군가는 본체만체 신경도 쓰지 아니하고 걸음을 옮기고, 누군가는 정파의 무림인이 체신머리 없다며 혀를 끌끌 차고 지나갔다. 또 누군가는, 제가 덮은 붉은 빛깔에 금실로 正자가 새겨진 담요를 보곤 어디서 얻었냐며 물음을 건네고 가기도 했다. 내쫓지 않는게 어딘가, 되려 이정도로 말이나 시선만 던지고 지나칠 정도면 참으로 배려심 넘치는게지. 잠시 눈을 감고 잠들듯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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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언니!
멀리서 들리는 카랑카랑하고 고운 목소리에 그녀는 눈을 떴다. ...매미야? 중얼거림에 또 빼액, 매미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더 가까이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또 버릇처럼 불러버렸더니. 난리 치겠구만. 느긋한 표정으로 헤드기어를 벗자 눈앞의 조막만한 여자아이가 잔뜩 뿔이 나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매미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언니는 책도 안봤어? 매미는 완전 징그럽고, 벌레에다가 시끄럽다고 했단말야! 앞으론 선이라고 불러준다며!"
"아이고, 그래, 언니가 미안해. 응? 우리 귀여운 선이를 누가 매미라고 불렀을까. 종이접기 해줄게, 화 풀자."
"다음에는 절대로절대로 용서 안할거야, 그리고 난 토끼 접어줘! 학도! 기린도!"
저번에도 다음에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단 말을 들은듯 한데. 그 다음이란 것이 참으로 길구만. 생각하며 쿡쿡 웃다 문득, 아직도 남은 롤플레잉 말투에 고개를 휘휘 저었다. 익숙해지기도 어려웠지만, 익숙해지고나니 오히려 떼어놓기가 더 어려웠다. 이러다 아르바이트중에 말투가 나오면 좀 웃길텐데.
"-니, 언니. 무슨 생각해?"
제 손을 잡아당기는 기분에 내려다보니, 아이는 눈을 꿈뻑이고있었다. 아, 미안. 짧은 사과에도 어쩐지 아이는 뚱한 표정을 짓다가 툭, 말을 뱉었다.
"또 그 게임 생각해? 사... 사... 사전... 신? 그거."
"사신전기-."
"그래, 사신정기! 언니 맨날 그것만 해! 아르바이트 갔다오면 그거 하거나, 아니면 책보거나. 옛날에는 맨날 나랑 놀아줬는데. 율이오빠도 학교간다고 맨날 바쁘고. 옛날에는 양이랑 유랑, 다들 맨날 놀아줬는데..."
어느새 시무룩한 표정이 된 아이가 중얼거리는 소리에, 끙 소리를 내며 아이를 안아들었다. 언니오빠들 이야기해서 화났어...? 하고 눈치를 살피는 아이의 이마에 쪽, 뽀뽀해주고는 기분좋게 미소지어보였다. 많이 외로웠구나, 내 동생. 외로웠지. 언니가 항상 미안해. 제 목에 박힌 응어리 대신 입밖으로 낸 것은 언제나와 같이 장난으로 포장한 말 뿐이었다.
"정기가 아니라 전기. 우리 선이, 벌써 초등학교도 다니는데 자꾸 햇갈리면 어쩌지? 경찰 되려면 그런 시험도 본대. 사신전기 라고 말해보세요~ 했는데 사신정기, 라고 해서 떨어지면 어쩌지? 안되겠다, 우리 선이 앞으로도 숙제 검사 언니한테 맡아야겠다."
금세 또 아이는 빼앵 매미처럼 울음소리를 냈다. 아이고, 시끄럽기도 하지. 종이 학 열개쯤은 접어줘야겠다. 문득 나찰천의 말이 떠올랐다. 일상을 소중히. 일상이 뭐 별거 있나? 그냥 사는게 다 일상인 것을. 호북 본성 구석에 담요를 덮은채 잠들어있을 이도, 제 집에서 동생을 보듬보듬 해주는 이도. 언제나처럼 참으로 보잘것 없고 작은 일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