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과 종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흰 것마다 어설피 눌러쓴 글씨가 완연하다. 끄응, 앓는 소리를 내던 이는 마침내 제 성에 조금 차는 종이를 손에 들고는 팔랑거리며 흔들었다.
"차라리 비무를 세번 하겠구만~ ……좋아하려나."
첫 일기.
이 자가 이리 일기를 쓰는 일은 까마득한 어릴적 이후로 처음이구만. 학교에서 방학동안 내오라 한, 그런 숙제들을 통틀어서 말일세. 그때엔 참으로도 쓸 일이 없어 하루를 날씨가 좋았다, 빨래를 도왔다. 동생들을 돌봤다 하는 두어줄로 일기를 채웠건만, 소소에게 보내는 교환 일기는 그리 가벼이 내용을 채울 수 있을까. 허니 내용이 혹 두서없이 뵈더라도 이해해주시게, 소소가 기뻐하여주었으면 하는 일 만은 그 어느 것보다 명확한 생각이니.
꼭 서신친구가 된 기분이 들어. 실은 별 차이가 없는듯도 하고. 이전에 현운도 서신친구를 구하지 아니하였던가? 그때엔 어쩐지 쑥스러운 기분이 들어 선뜻 하겠다 나서지 아니하였는데, 생각해보니 쑥스러움이란 쥐에겐 어울리지 않는 일이구만. 다음번에 기회가 또 오거든 그때엔 놓치지 말아야겠네.
그래서, 이번의 주제란 것은 싫어하는 것이었지? 그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생각하였네. 어쩐지 생각들이 마구 나면서도, 너무 당연한것들인가? 싶어 망설여지네만. 그래도 전부 적어주겠네!
이 자는 쓸데없는 낭비가 싫네. 아무 의미없이 돈을 바닥에 버리는 행위가 싫어. 하지만 기부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야. 기부란 것은 사람을 살리는 귀한 행동일테지. 이를테면 거지와 상인, 둘이 있다면 이 자는 거지에게 말을 걸어 돈을 주겠네. 이미 있는 자의 상술에 넘어가는 일은 그 무엇보다 싫으니.
그런 의미에서 음식을 낭비하는것도 싫어. 무림의, 식재료란 것들 말일세. 음식도. 간혹 들렀던 주점에서는, 이 것이 사람이 먹는 것인가 싶을정도로 맛이 끔찍한 것들을 터무니없는 가격에 팔더구만. 어찌 맛이 있는 것들을 가지고 그런 것을 만들 수 있는게지? 나라면 분명 세상에서 제일가는 것을 만들고싶어 안달이 날텐데.
그리고 그때문에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음식도 싫네. 무엇이더라, 투명하고 탱탱한 음식을 보았었네. 사각으로 썰었는데, 먹으니 정말로 아무 맛도 없더구만. 그것 또한 음식이란 것의 수치라 생각해. 선계의 약도 아니고, 어찌 그런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단말인가? 아무 맛 없는 음식에 비하면 차라리 맛없는 것을 먹겠어. 아, 소소가 주었던 여지가 생각나는구만. 여지를 좀 사야겠어. 가장 알이 좋은 것으로 골라, 소소에게도 나누어주고. 다른이들에게도 나눠주고. 배 곯고 다니면 안되니까.
다리 많은 벌레도 싫네. 그런 것은 이곳에 와 제대로 보기 시작하였지만… 아니, 그런것이 난신이 아니라는게 말이 되는가? 솔직히 가뭄이나 태세같은 것은 무섭지도 않네. 지네니 돈벌레니 하는 것들이 더 무서워서 말일세. 어찌 털많은 짐승은 그리도 귀여운데 다리많은 벌레들은 아니 그럴까.
이 후에는 생각나는게 없구만. 유령, 배고픔. 무어, 그런 것일까? 하지만 그런 것은 소소도 그렇고, 다른 이들도 다 싫어할테니. 그렇네, 이 일기를 쓰며 깨달았구만. 이 자는 생각보다 좋아하는 것이 아주 많은 모양이야.
소소는 어떠한가? 이 자보다 싫어하는 것이 많은가? 아니면 적은가. 어떤 것이 싫은가? 다른 이들이 싫어하는 것을 알거든 이 자도 쉬이 신경써줄 수 있을테지. 그러니, 소소가 싫어하는 것을 알게되는 것 또한 기쁜일일게야. 벌써부터 소소의 답일기가 기다려지는구만. 이런 기분으로 주고받는것이구나.
귀한 내 친우, 이 일기를 보는 오늘도 부디 빛나는 하루가 되기를.
아무리 보아도 성에 차진 않는데. 느릿하게 시선을 굴리다 마른 세수를 했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글 짓는 법이라도 제대로 배웠다면 모를까. 쓰기라도 제대로 쓰면 다행인게지. 제대로 썼나? 아~ 모르겠구만. 쥐 하나가 속에서 계속 웅성거렸다. 아, 아. 몰라, 모르겠어. 툭툭 털어내곤 종이를 곱게 접었다. 그 중앙을 끈으로 묶고, 새하얀 이름모를 들꽃 하나를 꽂았다. 꽤 그럴듯해졌네. 만족스런 표정으로 이리저리 살피다 고개를 끄덕였다.
음, 마음이 담기면 된게지, 마음이 담기면.
아까 전부터 있었지만, 마치 방금 들어온것마냥. 쥐는 호다닥 밖으로 걸음을 했다. 남겨진 방에는 종이 십수개만이 뒹굴뒹굴, 어수선하게 어질러져 그 방 안에서 벌어졌던 스스로와의 비무를 간신히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