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적 다음은 해적인가? 아니지, 하적이라 하여야하나. 제 앞의 푸른 옷에 푸른 두건을 한 이는 품에 낀 주머니에서 뚝뚝, 돈을 한푼 두푼 떨구고 있었다. 저한테 칼을 겨눈 자세는 좋게 보아도 이류 고수로도 보기 힘들었으나, 실제로 그 검이 휘둘리는 소리는 전혀 달랐다. 초보자가 휘두르는 고수의 검이라, 심지어 그 초보자는 악인이고. 이보다 무시무시한 조합이 있을까. 한 합 한 합, 도끼날로 빗겨낼때마다 야옹이가 딸랑딸랑, 아프다 비명을 내질렀다.
참아, 네 죽거든 이 주인도 죽는단다. 아무런 생각을 하며 때를 기다렸다. 이내 수로채는 저보다 상대가 무공은 더 배운 듯 해도 약한 이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검을 크게 휘둘렀다.
네 지닌 것은 단도이지, 장검이 아니거늘. 빈틈을 놓치지 않고 도끼가 크게 호를 그렸다. 억, 단말마의 비명이 터진 후에 쓰러진 이는 당연하게도 상대였다. 두울. 읊조리며 깃발을 줍는 이의 손도 너덜너덜, 낡았다. 그마저도 금창약이 지나가자 본래의 투박하고 자그마한 손으로 돌아왔다. 피곤하구만, 쉬어야지- 느릿느릿, 품에서 산딸기를 꺼내 우물거리는 모습은 평소와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