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지역 외 지역에서의 PK로 인해 캐릭터가 사망하였습니다. 한시간동안 접속이 불가능하며...





     "아이고-, 피곤하다..."

     헤드기어를 벗어던진 이는 양 손으로 제 눈가를 꾹 눌렀다. 앞서나가 맞고, 방어하며 반격하는 방패와 같은 일을 하기위해 부러 통각센서를 낮춰두었지만. 그 낮춘 것으로도 죽는다는 감각은 어쩔 수 없는 두통과 고통을 동반했다. 잠시 속이 울렁거려 두 동생들 몰래 화장실 가는 척을 하며 물을 틀고 속을 게웠다. 언제나처럼 투명한 위액만이 좀 나오다 말 뿐이었다.

     다들 감정적이네,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도 피곤함은 가시질 않았다. 이상하다, 게임인데. 저도 모르게 허리춤을 만지작거렸다. 그 자리에는 향낭이 하나 있었다. 붉은 빛깔에, 고운 정자 글씨가 새겨진. 그 안에는 곱게 말라 거의 향이 사라진 유채꽃과, 햇살과, 따스함과. 그리고 고운 보물들. 모아둔게 참 많았지, 생각하며 가만가만 손가락을 꼽았다.

     처음, 고양이 모양 도끼. 둘째, 제 이름이 적힌 명패. 셋째, 쥐 모양으로 조각된 자그마한 나무조각. 넷째, 부적으로 삼은 단단한 붉은 비늘. 다섯째, 붉고 고운 향낭. 여섯째, 언젠가 찾아올 행복을 담은 화관. 일곱째, 수많은 인형들. 여덟째, 친우와 주고받은 일기. 아홉째, 수많은 사람들. 열째, 종이 한 장.

     ......아. 그렇지, 종이. 그것만은 여기에서 볼 수 있었지,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향했다. 첫날부터 곱게 적어 모아둔 기록이 빼곡했다.





    ★즐거운 비무 기록! 

(12/28) 리온, 설원사형
(12/29) 단, 완샤, 도협, 소소
(12/31) 류호
(1/1) 도협, 진세화, 버들
(1/2) 은요사매, 나찰천
(1/4) 완샤, 완샤, 천랑, 천랑
(1/5) 사매, 사매, 호월문
(1/6) 리온, 세화, 흑미, 연화
(1/7) 도협, 류호, 유담, 유담, 연
(1/8) 사형, 사형, 흑미, 이안
(1/9) 도협, 세화, 세화, 연, 태평, 소하, 소하
(1/10) 연화, 연화, 연화, 태평





      1월 10일, 펜을 들어 가만히 완샤. 한 이름을 덧붙여 적는다. 완샤와는 벌써 비무만 네번이었네. 툭툭 수를 세곤 생각하다, 웃다가. 입꼬리를 내렸다가. 결국은 적힌 이름을 가벼이 툭툭 두드릴 뿐이었다.

     이 자가 몸을 사릴 필요가 무엇이 있고, 귀 공이 그리 표정할 것은 또 무언가? 제가 나가지 아니하였거든 이루어지도 아니하였을 비무인데. 그저 이쪽은 가벼이 계산하였을 뿐이었다. 완샤와 하는 비무라면 나쁘지 아니할테고. 죽더라도 만족스러운 싸움이 될 것이라고. 목숨 걸어도, 좋지 않던가. 그렇게 생각했는데.

     "......재미없었어."

     조막만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이름을 두드리며 웃었다. 그 순간만큼은 저는 회색의 소서가 아닌 흰 생쥐였다. 언제나처럼, 큰 도끼를 짊어진 채 즐겁게 웃는 무림인. 항상 즐거웠었는데, 비무. 종이를 쓸어내리는 손길은 꽤 가벼웠다.

     "이제는 더는 즐거운 비무를 할 수 없을터이지. 다시는, 다시는. ......만남도 이별도 언제나 갑작스럽고. 갑작스러워- 내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데. 쌓인 것이 많으니 빠져나가는 것도 많구나. 신기한 일일세."

     할 말이 있던가. 더 있던가? 글쎄. 흰 생쥐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더는 필요없는 이야기였다. 고요히, 은은한 유채꽃밭 사이에 잠겨 휴식이나 좀 취하고 싶을 뿐이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쉬었다 가자. 어느새 봄은 가고, 찬란하던 여름도 지나. 서늘한 가을을 조각내는 비정한 겨울이 왔으니. 겨울잠 자는 생쥐마냥 고요히 몸을 만 채 쉬었다가. 다시 또 이 날선 추위에 맞서 움직여야 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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