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레나는 종종, 이 모든것이 실은 한 겨울밤의 꿈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현실도피, 비단 그러한 종류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기나긴 밤, 그리고 낮. 시간이 흐르지만 하늘조차 볼 수 없는 곳에 멍하니 앉아, 오가는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도 피곤하지도 졸립지도 않은 제자신. 때려도 아픔이 없고, 다른 존재들과 닿지도 못하고. 먹지도, 잠들지도 않는 것은 삶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자신은 죽은 존재일진대. 아니, 이미 죽었잖아. 그날, 그 밤. 만장일치. 자신마저 제 이름을 속삭였다. 나, 엘레나 로시. 내가 검정이에요. 처형당하던 순간에는 스스로에 대한 애증과 두려움, 일말의 안도감. 그러한 것들에 휩싸인채 영영 어둠속에 떨어졌었다. 그랬을거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더이상 볼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영영 만날 수 없겠지만, 그래서 너무나도 죄스럽고. 부디 너는 살았으면.
       너.
       너만은.
       제가 방금 본것이 현실이 맞는가? 엘레나는 그저 느릿하게, 아주 느릿하게. 눈을 꿈뻑였다. 종종, 이유도 없이 시야가 흐릿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스트레스, 오류. 트라우마. 혹은 다른 무엇일지도 모르지. 그때마다 아, 눈을 깜빡여야지 하고 의식적으로 하던 행동이었다. 실은 필요도 없지. 눈이 마를 일도 없는걸. 그런게 의미있는 이야기일까. 의미없었지만, 그래도. 그래도 나는 나가서 살거니까. 사람사이에 섞여서 살거니까.
        살아?
        죽은 사람이?
        제 방이 이렇게나 넓어보인 일은 오랜만이었다. 그날밤, 이 방 구석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있던 자신이 그러했다. 눈뜬 어둠속에 둘러쌓인채 몇번이고 제 죄와 마주하고있었다. 돌이킬수 없는 잘못을 끌어안은채로 아래로, 아래로. 비참하게 가라앉고있었다.
        ........그냥 눈을 감자.
        항상 잘 했잖아, 그런거.
        이런게 현실일 리 없잖아, 그렇지? 무릎을 끌어안고 속삭였다. 약속했잖아요. 우린 나가서. 나가서, 다시. 나. 내 가족도 생겼고. 친구도 생겼으니까. 바다에 가자고. 그렇지? 다같이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기로 했잖아. 그러니까 괜찮아. 괜찮을거야.



         조각난 파편이 발아래 깔렸다. 걸음마다 꽃이 피었다. 꽃밭이 한가득이었다. 봄일거야. 제 품 한가득 안긴 빛을 삼켰다.

         남은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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