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겨울, 조금은 추운 날이었다. 그날도 아리는 누군가의 부탁을 받아 간단한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평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하루였지만 변화는 콜헨 마을의 한 가운데에 우뚝 서있었다. 아리는 가만히 서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보는 커다란 나무에, 반짝이는 전구들. 색색의 천이 이리저리 엮여있고, 신기한 장식물들과 꼭대기에는 반짝이는 별. 처음보는 그것을 한참을 구경하고 있는 아리에게, 말을 건 것은 케아라였다.

"예쁘지?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만든 트리야. 너희한테도 연락했으면 좋았겠지만, 새로 만든 너희 아지트는 마을 밖에 있으니까..."
"트리? 그게 뭐야??"
"아리는 트리가 뭔지 몰라?"
"응! 우리 고향엔 저런거 없었는데. 처음봐!"
"그래? 트리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장식품이야. 위에 별도 달고, 리본이나 저런 공이나. 여러가지로 장식하는거지."

아리는 눈을 빛냈다. 테일이나 이델이 곁에 있었다면 보나마나 지금 생각하고 있는게 뭐든 관두라고 말렸겠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아리 뿐이었다. 무언가를 한참 생각하던 아리는 이내 고마워, 케아라! 하고 인사를 하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


그날, 아리가 아지트에 도착한것은 저녁시간을 훨씬 넘어 밤이 다 되어갈 즈음이었다. 다녀왔어! 하고 아리가 기운좋게 외치자 바로 테일의 반응이 이어졌다.

"늦었잖아, 멍청아! 너 저녁 없다."
"엩. 내 저녁!!!"
"굶어."

아리가 울먹이자 탁자에 앉아 제 무기를 점검하고있던 이델이 부엌쪽을 눈짓해보였다.

"따로 챙겨뒀으니 걱정마라. 그보다 이 시간까지 밖에 있었으면서 저녁도 안먹고 들어온건가."
"응! ...아, 맞다! 이거 봐, 다들!"

아리는 박수를 쳐 시선을 모으더니 아지트 밖에서 무언가를 들고 들어왔다. 정확히는 마법을 사용해 띄워 가져왔다는 표현이 적합할 것이다. 그것은 아지트의 천장에 닿을 듯 말듯 한, 커다란 트리 용 나무였다. 테일과 이델은 황망한 시선으로 트리를 보다가, 서로를 돌아보고는 다시 아리쪽을 보았다.

"이거 봐! 이게 트리라는 건데, 크리스마스에-"
".......??? 너 그건 대체 어디서. 아니 왜. 아니. 그래. 저 놈을 이해하려고 한 내가 바보지."
"-장식을 막 여기에 꾸미고, 별도 반짝반짝!-"
"그래서 저걸 우리가 꾸미자는건가."
"응! 그러려고 사왔어! 잡화점에 갔는데 아엘언니가 안판다길래. 로체스트에 가면 있을거래서 잠깐 다녀왔어!"
"이건 대체 무슨 멍청이지. 너 시간하고 돈이 남아도냐? 그거 살 돈이 있으면 아직 덜 갚은 아지트 구매비나 변상해."
"-그러니까 셋이 같이 꾸미면 완전 재미있을거야!"
"이델. 저 자식 내 말 하나도 안듣고있지. 썰어버려도 되지."
"참아라."

낫으로 손을 뻗으려는 테일을 간신히 만류하고, 이델은 아리쪽을 돌아보았다. 아리는 이미 아지트의 한 구석, 벽난로 근처에 트리를 옮겨두고는 이리저리 둘러보며 만족스러운 위치를 잡았는지 혼자 고개를 주억거리며 뿌듯해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장식물은 내일 사오려고 하는건가."
"응?"
"트리를 꾸밀 장식물 말이다. 별이라던가, 전구라던가."
"아, 그거 말인데 직접 만들려고! 트리가 무지무지 비싸서 돈이 없었어!"
"..........그러니까 지금. 가진 돈을 전부 트리를 사는데 써버렸다는."
"??? 응!"

이델은 대답 대신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옆의 테일이 저벅저벅 걸어가 아리의 머리를 세게 쥐어박고, 왜.. 왜 때려?! 하는 아리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이델에게는 테일이 겨우 한대만 쥐어박은것도 용케 참았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잠시후 키블 내에서는 회의가 진행되었다. 회의 주제는 당연히 저 트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아리는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당연히 꾸ㅁ..."

말을 이어나가던 아리가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털썩 쓰러지고, 순식간에 아리의 뒷목을 내려친 테일이 한숨을 쉬며 이델을 돌아봤다.

"이 자식이 자꾸 말하게 두면 진짜 썰어버릴 것 같아서."
".....그래."
"하아- 그래서 이 망할 트리를 어떻게 한다."

테일은 트리를 힐끔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저 멍청이가 하필 작은 것도 아니고 저렇게 커다란 트리를 사와서는. 꾸미지 않고 그냥 두기에는 보기에 좋지 않고. 버려버릴까. ......버리긴 또. 이런저런 생각을 이어나가던 테일은 엎드려있는 아리를 힐끔 보고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저거 한대만 더 때리면 안되나. 어느새 끓여왔는지, 가만히 차를 마시던 이델이 둘과 트리를 가만히 보다가 의견을 냈다.

"아마 환불해오라고 해도 본인도 죽어도 말을 듣지 않을테고. 그렇다고 판매측에서 환불해줄 것같지도 않으니.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적당히 잘라서 땔감으로 쓰고 그 전까지는 트리로 쓰지그래."
"장식은 누가 꾸미고."

이델은 눈짓으로 아리를 가리켰다. 테일은 매우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마침 아리가 스르륵 자리에서 일어나 인상을 찌뿌리며 고개를 휘휘 저었다.

".....으, 머리야... 헉, 나 졸았어..? 나 되게 졸린가봐..!"
"쯧쯧, 저런 쓸데없는데 힘을 낭비해서 그래."
"쓸데없는데 아니거든!"
"트리 얘긴 결론 났어. 크리스마스까진 둔다. 장식은 네가 구해다 꾸민다. 크리스마스 지나면 땔감으로 쓴다. 이상."
"!!!!! 진짜?? 우리 같이 트리 막 꾸미고 하는거야?? 고마워, 테일아!!!"
"아니, 너 혼자 꾸민다고."
"이델도! 진짜진짜 고마워!!!!"
"이델. 저자식 또 내 말 하나도 안듣고있지. 역시 썰어버리는게 좋을까."
"참아라."
"와아!!!"



다음날부터 트리에 이런저런 장식들이 달릴거라는 이델의 예상과 달리,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도 트리는 여전히 장식 하나 없는 일반 나무였다. 아리는 매일같이 또 부탁을 들어주러 사방팔방을 돌아다녔고. 테일은 트리에는 관심을 끄고 언제나처럼 돈되는 의뢰를 찾아다녔다. 며칠이 지난 아침, 신경이 쓰인 이델이 참다 못해 나가려는 아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리. 그래서 트리는 대체 언제 꾸밀건가?"
"응? 아, 오늘은 안돼! 리엘 할아버지가 얼음딸기주를 가져다 달래서- 딸기주 구하러 던전 가야돼! 나중에!"
"...아니, 크리스마스가 이틀 뒤다만."
"헉..!! 그러네, 서둘러야겠어!"

말을 마친 아리는 이델이 뭐라고 더 말하기도 전에 휭하니 달려가버리고는, 그날도 저녁을 먹곤 늦게 들어와 바로 자러 들어가버려 결국 트리는 휑한 채 그대로였다. 이델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트리같은 걸 꾸미는건 전혀 제 취향도 아니었고 충분히 아리가 할 수 있는 일일테니 도울 필요도 없겠지만.
다음날 오전, 이델은 잡화점에 들렀다.

"안녕, 무슨일이야?"
"트리를 꾸밀 장식을 사러왔는데. 부담스럽지 않은걸로."
"트리? 요새 트리 장식 찾는 사람이 많네. 역시 크리스마스라 그런가?"

아일리에는 가게 한켠에 놓인 장식이 든 상자를 보여주었다. 무난한 리본과 공, 별장식, 양말장식 등 다양한 종류가 들어있었다. 장식 자체의 양이나 질은 나쁘진 않았지만, 문제는 가격이었다. 아일리에가 가격을 말하자, 이델은 인상을 조금 찌뿌렸다.

"가격이 과한데."
"이정도 양에 이정도 가격이면 적당하지, 뭘. 당신들은 하나같이 왜 그렇게 비싸다고 하는건질 모르겠단말야."
"아무리 그래도. ...잠깐, 당신들?"
"왜, 당신 길드의 두 아가씨들 말야. 그 좀 평판 험한 애랑. 맨날 이것저것 부탁 잘 들어주는 애. 둘다 그저께랑 그그저께에 하나씩 와서는 장식값을 묻던걸. 하나는 가격 듣더니 미쳤다고 그 돈을 내냐고 질색하면서 돌아갔고. 다른 하나는 한참 고민하다가 돌아갔는데. 그러고보니 왜 셋이 같이 안오고 하루씩 따로 와서 묻는거야?"
"그런가."

이델은 장식을 한번 더 보고는, 요즘 유난히 바빠보이던 아리와 평소보다 더 돈되는 의뢰를 찾던 테일을 떠올렸다. 비싸기는 하지만 어느정도라면야 못 낼 가격도 아니고. 셋이 처음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인데, 이정도는. 이델은 이내 마음을 굳혔다.

"흠. 다는 곤란하고. 일부만 사는것도 가능하겠지."
"물론이지."
"-히히, 친구야, 뭐 사고있어?"

이델이 괜찮은 장식들을 고르는 사이 다가온 리엘이 이델이 품에 들고있는 상자 속에 고심히 고른 장식들을 구경했다. 와, 트리 장식! 친구야, 트리를 꾸미려는거야?? 언제나처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눈으로 이델을 빤히 바라보던 리엘은 상자에서 장식들을 전부 멋대로 꺼내더니 원래의 상자에 던져넣었다.

"지금 뭐하시는-"
"친구들은 돈 없댔어! 가난해! 히히, 그러니까 필요없는것까지 살 필욘 없어. 아마 안사도 충분할거야!"
"...안사도 충분하다?"

아일리에의 말에 따르자면 먼저 온 둘 다 결국 장식을 사지는 않았다. 여기에서 비싸다고 사지 않은 둘이 로체스트까지 가서 사올리도 없을테고. 리엘이 장난기가 좀 많긴 하지만... 이델의 머릿속에 설마 리엘이 이런 쓸데없는 일에까지 거짓말을 할리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장난을 쳐서 뭔가 득을 얻을 것도 없어보이고. 이델은 고개를 끄덕였다.

"흠.. 알겠습니다."

이델은 그대로 구매하지 않고 아일리에의 아쉬워하는 표정과 리엘의 장난기 어린 손인사를 뒤로 한 채 잡화점을 나왔다. 길드 아지트에 도착해보니 여전히 트리는 휑했고, 아무도 없었다. 역시 사오는게 나았을까. 생각하던 이델은 리엘의 말을 다시 떠올리고는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둘이 돌아오기 전에 뭔가 트리 장식 외의 깜짝 선물이라도 준비해볼까, 하는 생각을 문득 했다.깜짝 선물? 그 둘한테 줄만한 게 뭐가 있지? 습관적으로 고민거리가 있을 때마다 차를 끓이러 주방에 들어간 이델은 문득 며칠 전 자신이 팔기위해 낚아온 타티크와 눈이 마주쳤다.

"나쁘진 않군."

생각해보니 자신이 타티크를 낚아온건 수십마리가 되어갔지만, 셋이 먹은건 단 한번, 그것도 타티크를 구매했던 상대가 오랜만에 이런 좋은 품목을 구해 기분이 좋다며 해체해서 팔기 전 세명이 먹을 수 있는 정도의 양을 떼어주었길래 그걸 가져와 요리해 먹은게 전부였다. 그때도 꽤나 맛있어서 좋아했는데. 타티크 한마리의 양이 좀 어마어마하긴 했지만 적당히 포로 썰어서 말리거나 한다면 두고두고 먹을 수 있을테고. 이델은 부엌 한 구석의 칼을 들었다.


******


한참이 지나서야 타티크의 해체를 끝낸 이델은 그제야 둘이 오늘 언제 돌아올지를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녁을 안먹고 와야 할텐데, 슬슬 저녁 시간이라 연락을 해두어야 할 것 같았다. 적당히 요리를 위한 준비를 하면서 이델은 길드 전용 통신기에 연락을 남겼다.

-이델 : 둘 다 오늘 언제 오나.

조금 후에 먼저 대답이 온것은 테일이었다.

-테일 : 바빠 말걸지마
-이델 : 아주 늦게 오는게 아니라면 저녁은 먹지 말고 들어와라.
-테일 : ㅇ
-이델 : 아리도 이걸 보는대로 연락해라.

"나 왔어어!!!! 그리고 저녁 안먹었어!!"

직후, 밖에서 쾅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아리의 외침이 들려왔다. 생각보다는 이르군. 이델이 고개를 슬며시 내밀어보니 웬 거대한 상자에 뭔가를 잔뜩 담아 둥실둥실 띄워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상자 속에 담긴 것은. .....아무리 봐도 폐허에서 자주 보던 항아리와 못먹는 호박들이었다. 이델은 미간을 찌뿌렸다.

"그건 뭐지."
"짜잔! 트리 꾸밀거야! ......헉, 이델 그거야말로 뭐야?! 엄청 커!! 고기야?!"

...저런걸로 트리를 꾸민다고? 의문스러워 하면서도 이델은 타티크, 라고 대답했다. 우와! 타티크!! 아리는 신나하면서 바닥에 상자 속에 든 물건들을 꺼내들었다. 항아리에 호박들. 그리고 에르그 결정이 종류별로 열개 남짓 씩. 에르그 결정이 저렇게나 쌓여있다니, 그가 보면 꽤나 좋아하겠군. 이델은 무심히 그런 생각을 했다.
아리는 항아리를 들고는 집중을 했다. 이델은 저 포즈를 전에 몇번 본 적 있었다. 항아리 등의 잡 물건을 회복용 에르그로 바꾸는 작업이었다. 쨍, 하는 깨지는듯한 소리와 함께 항아리가 붉은 빛의 하트모양 보석들로 변해 바닥을 나뒹굴었다. 뭔가 생각이 있는 듯 하니 알아서 꾸미겠군. 이델은 수고해라, 라는 말을 남기고는 다시 요리를 하러 들어갔다.
아리는 전날의 리엘이 해준 조언을 떠올리고있었다. 트리 장식을 보다가, 가격이 너무 비싸 시무룩 해서는 차라리 에르그 결정으로 꾸미는게 더 반짝이고 이쁘겠다.. 하고 중얼거리고 있는데 이를 들은 리엘이 그거 좋은 생각이라며 동의를 해온 것 이다. 그리고는 회복용 에르그가 제일 색도 예쁜 빨강에 하트모양인데 이건 가까이만 가도 생명체에게 흡수되어버리니 꾸미는데 쓰질 못한다고 투덜거리자 리엘이 그럼 흡수가 안되게 하면 되지! 하고는 순식간에 개량된 마법을 내놓았었다.역시 리엘 할아버지는 대단해! 아리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에르그 하나를 주워들어보였다.

"으음, 색은 좀 덜이쁜데..."

리엘이 가르쳐준대로 만든 에르그는 회복은 전혀 불가능한 대신 만져도 흡수가 안되는 종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속의 기운이 빠져나가니 일반 에르그처럼 팔지는 못하겠지만. 아리는 잡화점에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던 거미줄을 엮어 만든 실로 결정을 하나씩 붙여 트리에 매달았다. 트리는 어느새 은은한 빛을 내는 전구들을 단 것 처럼 스스로 반짝이고 있었다.
만족스럽게 바라보던 아리는 주방에서 점차 맛있는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것을 깨달았다.

"이델, 트리 다 꾸몄어, 그리고 엄청 맛있는 냄새 난다!!"

아리가 주방 문 앞에서 얼굴만 빼꼼히 내밀어 구경해보니, 간단한 샐러드와 회 종류는 이미 완성된 상태였고 스프가 끓고 있었다. 쉴새없이 스프가 타지 않게 불조절을 하며 이델은 다른 고기를 다듬고 있었는데, 모양이나 두께로 봐서는 메인 요리는 스테이크 종류인 듯 했다. 스프의 불을 줄여가던 이델이 맛을 살짝 보고는, 주방 출입 금지라 문밖에서 눈만 반짝이던 아리에게 손짓했다. 아리는 신이 나 달려들어갔다.

"아무것도 만지지 마라."
"알아, 안다구! 우와! 스프! 나 배고파! 저 토막은 안구워??"

이델은 맛을 보라는 의미에서 아리에게 국자를 내밀었다. 아리는 조금 스프를 떠 마시고는 맛있다는 의미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테일이 아직 언제 온다고 알려주지 않았으니. 늦게온다면 다 식을거다. 어짜피 에피타이저를 먹은 후 메인 요리를 시작할테니 테일이 오자마자 굽기 시작해도 늦지 않아."
"힝, 배고픈데... 테일이는 언제와아.....?"
"저녁을 알아서 먹으란 말이 없었으니, 아마 곧 들어오겠지."

이델은 국자를 든 채 한입만 더.... 하고 빤히 스프를 바라보는 아리의 손에서 국자를 빼앗고 다시 부엌 밖으로 내보냈다. 이내 밖에서는 테일아아아아 빨리 와아아아아.... 하는 앓는 소리같은게 들려왔다. 이델은 못들은 척, 고기를 구워 그릇에 담기만 하면 되게 준비한 후 나머지를 정리했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테일아!!! 하는 아리의 반기는 목소리가 들린건 그때였다. 이델이 밖에 나가보니 언제나처럼 피곤함과 돈을 벌었다는 만족감이 섞여 조금은 풀린 표정을 지은 테일이 여어, 하는 짧은 인사를 하고는 의자로 가 털썩 앉았다.

"뭐야, 엄청 맛있는 냄새가 나는데. 이델, 오늘 저녁은 뭐야?"
"타티크다."
"타티크?? 저번에 팔았던 사람한테 또 팔았어? 크, 오늘도 오랜만에 진미 맛좀 조금 보려나?"
"아니, 팔지 않고 그냥 조리했다. 오늘은 양이 남아돌테니 먹고싶은 만큼 먹어도 된다."
".......??? 한마리를 다??"
"그래."
"미친."
"빨리 저녁먹자!!! 나 배고파서 당장이라도 죽을거같아아...."
"...좀 기다렸다가 쟤 죽은 다음에 저녁 먹으면 내 양이 좀 더 많아지지 않을까."
"엩."
"농담이야. 먹고싶으면 빨리 가서 이델을 도와서 상을 차리던가?"
"!!! 테일이 똑똑해!"

피식 웃는 테일을 뒤로 하고, 아리는 신이 나 이델을 따라 부엌에 들어갔다. 메인 요리도 완성이 되고, 둘이 에피타이저를 하나씩 들고 나오는데 의자에 앉아있던 테일이 어느새 트리 앞에 서서 뭔가를 하고있었다. 상에 음식을 내려놓으며 이델이 힐끔 보니, 낫으로 차원의 틈을 열었는지 허공에서 고심하며 무언가를 뒤적거리다 꺼내 트리에 달고, 다시 뒤적거리다 트리에 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테일이 달고있던 것은 꽤 고급스러워보이는 장식물 들이었는데, 귀족이나 쓸 법한 고급 천의 리본이나, 금색의 병정 조각, 오색의 지팡이 조각 등, 이델이 잡화점에서 본 장식물보다 몇배는 비싸고 좋은 질의 것들이었다. 대체 어디에서 저런 걸.마지막으로 테일은 별모양 장식을 트리 꼭대기에 달려고 손을 뻗었다가 멈칫했다.

"........"
"내가 달지."
"....시발, 내가 안닿아서 너한테 주는거 아니거든?? 이거 진짜 귀찮아서 너한테 맡기는거다?"
"......그래."

마지막으로 별을 달자, 트리는 콜헨 광장에 있던 그 것보다 훨씬 더 멋져보였다. 에르그 결정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반사해 장식들이 더욱 고급스러움을 뽐냈고, 종류도 다양해 나쁘지 않았다. 셋은 탁자에 마주앉아 트리를 잠시 구경하고는, 그제야 꽤 늦은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테일아, 근데 저 장식들 무지 이쁘다! 어디서 산거야???"
"사기는, 의뢰 가서 돈 대신 뜯어온거야. 귀족 새끼들은 하여간에 돈이 썩어 빠지니 얼만지도 몰라서는 저걸로 가져가겠다고 하니까 더 좋아하던데? 저거 다 팔면 의뢰비의 1.5배는 나올걸. 크으, 오랜만에 호구같은 의뢰인 한분 모셨네."
"1.5배?"
"몰라, 흥정 잘 하면 그정도 나올거고. 못해도 천은 나오지 싶어?"
'....지금 천만이 넘는 가격의 장식으로 트리를 꾸민건가.'
"근데 저 에르그 결정들은 뭐냐. 네가 붙여놓은거야?"
"응! 이쁘지!! 저거 폐허랑 얼음동굴이랑 가서 잔뜩 주워왔어!"
"전구 대용은 되겠네. 난 또, 돈 모아서 어디 가서 거지같은 장식이나 사올줄 알았더니. 나중에 결정 팔면 뭐, 트리값 반은 하겠는데."
"응? 결정들은 리엘 할아버지가 쓸데 있다고 하길래 나중에 싸게 팔겠다고 했는걸. 도움받은것도 있고!"
".....이 새끼는 진짜 호구인가."
"이델, 나 이거 더 먹을래!"
"스테이크? 부엌에 양을 나눠 잘라둔 게 있다. 굽는 방법은 아까 봤겠지."
"응!!"
"요리를 쟤한테 맡겨도 될... 아. 뭐. 쟤가 먹을거니 괜찮겠네."
"설마, 말 그대로 굽기만 하는거니. 이 고기들도 아리가 구운거고, 괜찮을거다."
"......."
"....이건 내가 옆에서 보고있었으니 아무 문제 없다. 아리는 불 조절만 했어. 그러니까 그런 의심스런 표정으로 보지마라."
"그.. 래...... 아니. 잠깐. 타는 냄새 나는데."
"-이데에에에에엘!!!"
"......"
"풉. 수고!"

이델은 황급히 부엌으로 뛰쳐들어갔다. 테일은 천천히 타티크 스테이크를 조금 잘라 그 맛을 음미하며 부엌에서 들려오는 소란을 감상했다. 오래간만에 맞이하는, 시끌벅적하고 즐거운 크리스마스였다. 이런것도 나쁘진 않네. 테일은 건배하듯 물잔을 들어올려보였다.

"...메리 크리스마스, 멍청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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