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나를 기억해달라 하지 말걸 그랬다.
오랫동안 묶여있던 머리는 그 흔적이 그대로 남아, 꽤나 구불거렸다. 쪽지를 주워드는, 니알라의 부름을 받고 걸어가는.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
새끼손가락이 아파왔다. 살아있을때, 그 손에 실반지가 있었더랬다. 당신이 만들어줬더랬다. 소원을 빌라고. 작은것은 이루어질거라고. 실은 소원보다는 당신에게 무언가를 받은것이 기뻤다. 소중한 이에게 받은 선물이라서. 끊어져야 소원이 이루어진다기에, 그럼 소원이 이루어지면. 끊어진 반지는 로켓에 넣어 가지고다닐거라고. 첫번째 소원은 무엇이었는지, 당신은 기억하고있을까?
당신과는 꽤 많은 대화를 나누었지만, 그 중 어느것도 당신을 제대로 본 것은 없었던것도 같다. 당신은 나와 대화할때 어떤 표정을 지었더라. 어떤 목소리였더라? 무슨 생각을 했을까. 들었던 말들 중, 진심이 담긴것이 있었을까. 우리는 대화를 나누긴 했을까? ......그저 말의 오고감일 뿐이었을까.
이사나- 아니, 양춘희라고 했던가. 춘희. 다시 중얼거려도 동대륙의 이름은 꽤나 어려웠다. 봄, 여름, 겨울. 당신은 오래도록 아팠다고 했다. 이곳에서도 항상 약이 두주먹은 되었다. 처음에 볼때부터, 항상. 유리같다고 생각했다. 투명히 속이 비쳐- 속에는 흔들흔들. 촛불이 일렁였다. 촛불의 빛은 푸른빛. 작지만, 분명한 불빛이. 그 불빛이- 촛불이 아니라, 제 속을 태우는 지옥불이었을까?
이제는 제 손에도, 당신의 손에도. 우리가 주고받았던 마음은 남아있질 않았다. 자신이 주었던 소망도, 당신이 주었던 소원도. 이 길이 너무도 험해 오던길에 다 떨어뜨려버렸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당신은 내게서 소망을 받긴 했을까, 당신이 내게 준것은 소원이기는 했을까. 제 손을 내려봐도 아무것도 없었다. 남은것은 그저 죽어, 바닥이 비치는. 아무것도 남지않은 손. ......당신은, 자신처럼 돌아오지도 못할것이다. 봉인구의 속으로 그대로 사라져버려,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있잖아요, 춘희님. 당신은 마지막에 무슨 생각을 하셨어요? 차라리 죽질 그랬니, 전부 죽으렴. 하고 생각하셨나요? 아니면 그 손길 마지막에. 다른 생각이 섞였나요?
우리가 오래전, 단 것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던 때를 기억하나요? 그때 저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저는 이사나님을 기억해요. 하지만 그게 춘희님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때에 보았던 당신은, 어쩌면 즐거워보였던것도 같았는데.
......그럼에도 당신과의 만남과, 그 모든 주고받음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뭐라고 말할까요. 미련하구나, 멍청하네. 조소를 날릴까. 어이없다는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볼까. 그도 아니면, ......
잘가요, 내 친구. 이사나. 춘희. 당신을 알게된것을 후회하지 않아요. 당신이 원하던대로- 모두 죽게 하지 않아서 미안해요. 당신의 곁에, 영도님과 다른분들 외에. 누구도 더 보내지 않아서. 부디, 모든것을 깨끗이 잊어버리고. 다음생에는 아주아주 건강하게 태어나주세요. 잔병치레 한번 안하고, 약한번 먹지 않고. ......그리고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아주아주 행복하게. 오래도록 살아주세요. ...이건 약속이 아니라 부탁이에요.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