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여기가 어디지?

벚꽃나무를 올려다보던 이디스는 문득 정신을 차렸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부모님은 어느새 어디론가 멀리 사라져버린 후였다. 잠깐 손을 놓고 주위를 구경하던 사이에 떨어져버린 모양이었다. 아마도 자신이 부모님으로부터 멀어졌으리라. 꽤나 연로한 두분은 어린 외동딸에 대한 걱정이 지대하신 분들이었다. 제가 사라졌으니 분명 크게 걱정하여 길을 샅샅이 뒤지며 헤매시겠지. 이디스는 얌전히 길 가장자리,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은 아무 골목의 입구에 가서 앉았다. 이런 처음오는 장소에서 길을 잃었다고해서 사방팔방으로 헤매면 되려 동행인과 멀어지기만 할 뿐이라는걸 잘 알고있었다. 이럴때엔 그저, 길을 잃은것을 깨달은 즉시 그 자리에 앉아 기다리는게 제일이리라.

사람들이 몇 지나갔다. 나나츠지야의 모습과 다른, 서대륙에 가까운 외형에 새하얀 꼬마아이인 이디스는 꽤나 시선을 끈 모양이었다. 누군가가 와서 물었다. 아가, 이곳에서 혼자 무얼하니?

"부모님을 기다리고있어요."
"금방 오신다고 했니? 요즘엔 나아졌긴 했지만 이쪽 골목안은 아직 위험할텐데... 이 안으로 들어가진 말으렴. 무서운 괴물이 잡아갈지도 모른단다."

네 부모님도 분명 금방 오실거야. 그는 제 갈길이 바쁜지, 그렇게 말하고는 걱정스런 눈길로 망설이다가 이디스를 한번 쓰다듬어주고 종종걸음으로 다시 걸어갔다. 친절한 사람이네, 생각하며 이디스는 골목안을 힐끔 바라보았다. 저 멀리에 붉은 등이 건물마다 달려있었다. 아, 그런 곳이구나. 이디스는 얌전히 시선을 돌렸다. 나나츠지야에서는 홍등가, 라고 불리던가. 유락. 요즘에는 확연히 줄어들었다고는 했지만, 나나츠지야는 여전히 노예업이 합법인 곳이었다. 이전에는 정말 악질적인 이들은 아무 사람을 잡아가기도 했지만, 지금은 한 신수님께서 강경히 막아서고 있다고.

문득 드는 기쁨에, 아이는 나지막히 웃었다. 원하시던대로 그들의 길을 더 정의로운 곳으로 인도하고있을 새신수님. 잘 지내고 있으실까?

2년 전의 맺음달, 아이는 부모님과 함께 여신님에게 평소처럼 기도를 올렸었다. 그날 밤 꿈은 길고도 길었다. 작은 민들레가 피고, 지는 꿈이었다. 깨어난 아이는 펑펑 울었다. 부모님이 놀라 달려올정도로 서럽게 울고는, 그 많은 약속들을 떠올리고. 과거의 이디스와 현재의 시아가 서로를 인정하기까지는 꽤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아이는, 8살의 시아와 22살의 이디스가 손을 꼭 잡고 하나가 되어서.

아니, 그래도 길을 잃는건 너무하지. 22살의 이디스는 조금 우울해졌다. 이게 다 너무 들떠서 그래. 이곳에 오면 나나츠지야의 분들을 만날 수 있을까 싶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잠깐 손을 놓은 사이에 흐드러진 벚나무들을 보고는 여기까지 와버려서- 부모님이 아주 많이 걱정하실게 분명했다. 어쩌면 다시는 여행같은건 가지 말자고 하실지도 모르지. 길을 잃은적은 그다지 없었는데. 이번생에는 아직 한번도. 전생에는......

다시 밀려오는 추억에 이디스는 땅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래, 그때 길을 잃었을때는 여신님이 손을 뻗어주셨지. -여신님처럼, 상냥한 칭칭님이. 지금보다 몇배는 막막하고, 바닥이 전부 무너져내리는것같은 좌절감속에서. 초조함에 둘러쌓여있던 자신을 도와줬었다. ...칭칭님은 어디에 있을까. 환생을 했을까? 자신처럼 기억을 떠올렸을까? 다른 이들은. 아벨님은, 나기님은, 린님은, 파타드님은, 아낙크마님은. 지금쯤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있을까. 우리는 다시 만날수 있을까?

저벅,

아주 작은 발소리가 들렸다. 햇볕을 받던 제 몸에 온통 그림자가 졌다. 눈앞에는 흰 양말과, 샌들 비슷한 모습의 나무와 끈으로 된 신발이 놓여있었다. 소리만큼이나 크기도 작다. 사람, 소녀? 고개를 들자 옷이 보였다. 나나츠지야 전통의, 화려한 꽃장식이 수놓아진 보랏빛의- 기모노, 유카타? 어느 이름이더라. 단지 예쁘다는 것만 떠올랐다. 조금 더 고개를 들자, 조금은 어둡지만 확연히 보이는. 꽤나 어려보이는 얼굴에, 이리즈나의 피부색. 양쪽으로 묶어올린 동그란 머리. 보랏빛에, 꽃은 다르지만. 손에는 우산을 들고. 환한 미소가-

소녀는 순식간에 달려들어 저를 꼭 끌어안았다. 쭈그리고 앉아있던 이디스는 엉덩방아를 찧었다. 하지만 아픔보다도, 얼떨떨함이 앞섰다. 제 품에 꼭 안긴- 제 나이또래의 작은 이리즈나 소녀. 이 꽃의 이름은 무엇이더라, 분명 투구꽃은 아니었지만.

"-이디스, 찾았다!"

그 따스한 향을 어찌 잊을까. 당신의 품은 여전히 포근한것을. 이디스는 칭칭을 마주 꼭 끌어안았다. 오래전의 마지막, 그 땅에서 헤어지기 전에 꼭 안아주었던것처럼. 그보다 이전, 민들레도 투구꽃도 활짝 피어있던 때에 서로를 지탱하며 꼭 안아주었던 것처럼. 그보다 이전, 길을 잃었던 아이가 사제의 도움으로 제 길을 되찾았던 때처럼.

보호자의 손을 다시 잡은 미아는 엉엉 울었다. 그리고 더는, 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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