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디스에게 밤하늘에 대한 기억 중 떠오르는 것이 있냐고 한다면, 그녀는 아마도 몇살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까마득한 옛날의 기억을 떠올릴것이다. 어느날 밤 잠이 오지않아 뒤척이는 아이를, 어머니가 손을 잡고 함께 집밖으로 나섰다. 하늘과 땅 가득 채운 어둠과, 그 사이로 산산히 부서져 반짝이는 별빛. 어머니의 따스한 손. 어쩌면 그것은 현실이 아닌, 그저 아이의 꿈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영영 알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이디스는 어둠은 좋아하지 않았지만, 밤은 싫어하지 않는 편이었다. 고요하고, 누구의 발소리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에서. 종종 작은 창문의 창살 틈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때의 눈부셨던 밤의 기억을 떠올리곤 했다. 하지만 별이 보이지 않는 구름낀 밤에는 그저 방의 한 구석에 웅크리고 누워 잠을 청했다. 빛이 없는 어둠은 그저 끔찍했다. 노예이던 시절, 수도없이 아무 천으로나 가려졌던 눈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이디스는 제 눈을 가리는 손길을 끔찍히도 싫어했다. 그 감정은 어둠에까지 영향을 미쳐, 어둠속에서는 저도 모르게 손발의 족쇄를 잡아당겼다. 손발목에 상처가 남자 또다시 어둠속에 갇히는 벌을 받고, 그러면 다시 손발에 상처를 냈다. 몇번이 반복되자 상처들은 흉터로 자리잡았다.
자신이 자유를 얻은 후 어느순간, 밤이 사라지고 밝은 낮만이 지속되었다. 처음에는 어둠이 사라져서 기뻤다. 잠이 들때도, 깨었을때도 밝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날의 밤이 떠오르고, 아름다운 달과, 별과, 밤을 보고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다지 신경쓰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여신님께서 돌아오신다면, 당연히 함께 돌아올 밤이었다. 언젠가는 볼 수 있겠지. 생각하며 잊었다. 그리고 계속 잊고있었다.
아낙크마가 정화를 받아주지 않겠다며 거절하던 날, 어린 아이들이 치료를 받을때 인형을 곁에 두듯 자신을 곁에 둔 날이 있었다. 무릎에 얌전히 앉은 채 문득 심심해져 그의 머리칼을 쥐고 놀았다. 신수의 머리카락은, 오래전 여신님과 함께 자취를 감춘 밤하늘이었다. 밤하늘이 제 손 한줌에 온전히 담기는 느낌은, 퍽이나 신기한 기분이어서. 저도 모르게 그에게 예쁘시네요, 하는 칭찬을 건넸다. 칭찬이라기보다는 감탄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 말에 아낙크마는 고개를 숙여 밤하늘의 장막을 제게 비춰주었고, 장막 사이로 비치는 햇빛과. 손을 뻗으면 닿는 별빛들. 흔들릴때마다 반짝이는 꿈의 파편들. 이디스는 멍하니, 신수가 제게 비춰준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문득 이런 밤하늘이라면, 빛 만큼이나 여신님께서 내린 은총이 아니냐고. 그런 비슷한 감상을 말했던 것도 같다.
아낙크마는 자신을 도와준 기억이 없다고 했다. 그러니 제게 받을 보답도 없다고. 하지만 아낙크마는 제게, 여신님을 구출하기 전까지는 볼 수 없는 밤하늘을 보여주었다. 또한 자신을 토닥여주고. 자신에게 새로운 관점을 비추어주고. 받은 도움이 너무나 많았다. 이디스는 고개를 저었다.
"저를 지켜봐주시겠다고 하셨고, 지켜봐주시고 있으시잖아요. 제겐 그것으로도 차고 넘치는 도움이에요. 정말로요."